2015년 6월 26일 미 연방대법원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5:4 박빙의 판결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결혼은 한 국가의 사회적 질서의 이정표"라면서 "동성커플이든 이성커플이든 이러한 원칙을 존중하는 데 차이가 없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미 연방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에 앞서 거의 30년 전 동성커플에 대하여 미국 법원에서 법적 지위를 최초로 인정한 사건이 있었다. 1989년 뉴욕주 최고법원(New York State Court of Appeals)이 선고한 Braschi v. Stahl Associates Co.사건이다[74 N.Y.2d 201(1989)].
동성커플도 퇴거시킬 수 없어
Braschi는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임차인 Blanchard와 그가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 10년 이상 동성커플로 지내왔다. 뉴욕주의 임차인 보호법제(크게 보아 rent control과 rent stabilization로 차임 규제 수단이 나뉘어 있다)에 의하면, 임차인이 사망한 경우 임대인은 임차인의 '배우자나 가족 구성원(a surviving spouse or family members of the tenant)'을 주택에서 퇴거시킬 수 없다[Section 2204.6(d) of New York State’s Rent and Eviction Regulations]. 차임 규제 대상 주택의 경우 시가보다 상당히 낮은 차임을 적용받고 인상률도 제한되므로 위 법을 적용받는지가 주거안정과 직결되는 문제인 셈이다. 뉴욕주 최고법원은 전통적이고 법적으로 인정된 가족관계만이 위 임차인보호법제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원심판결을 깨고 정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장기적 관계를 맺은 동성커플이라면 임차인 보호법제에서 규정하는 가족의 개념에 포섭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역사적인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의 단초에는 동성커플의 임차권 보호 이슈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택임대차와 상가임대차의 임차기간 보장, 차임 통제는 오랜 기간 동안 사회적 과제가 되어왔다.
국보위 시절 법 제정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 구성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른바 ‘국보위’)에서 급조하여 1981년 3월 5일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 · 시행할 만큼 국민의 주거권 보장은 정당성이 부족한 정권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였다. 국보위 입법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있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법원이 축적한 판례를 통해 법리가 다듬어지고 여러 차례에 걸친 개정을 통해 주택임대차에 관한 법률관계를 규율해 왔다.
반면 상가임대차는 주택임대차에 비하여 아직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한 채 진화 또는 변화 중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지 20년 만인 2001년 12월 29일 제정되어 2002년 1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시행된 역사의 길이만 따져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절반에 불과하다. 내용도 큰 폭으로 바뀌면서 아직까지 계속 탈바꿈 중이다. 여러 차례 개정 중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2015년 5월 13일 개정 법률에서 도입한 권리금 회수기회 보장 조항과 작년 10월 16일 개정된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 연장 조항을 들 수 있겠다.
계약갱신요구기간 10년으로 늘려
작년 개정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이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대폭 늘어났고(개정 법률 시행 후 체결된 임대차계약부터 적용된다), 임대인의 권리금 지급 방해금지기간을 임대차 종료 3개월 전부터 6개월 전까지로 늘렸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이처럼 지난 몇 년 사이 대폭 개정되고 있다는 점은 상가임대차 관계에 대한 법적 규율 요청이 강화되고 있으며 아직 이에 관한 법률관계가 안정되지 못하다는 사회적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지난 몇 년 동안 삼청동, 연남동, 경리단길, 서촌 등 수많은 핫플레이스들이 부침을 거듭하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지난 1월은 많은 희생자를 낳으며 강제수용절차를 통한 재개발사업의 문제점과 권리금보장 이슈를 사회적 화두로 전면 부상시킨 용산참사 10주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도시정비사업의 공공관리제가 도입되었다).
상가임대차에 관한 법률관계는 이러한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앞으로 상당기간 임차인 보호를 중시하는 쪽으로 발전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건물소유자의 재산권 침해와 지속적으로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상가임대차 법률관계는 주거권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보호가치가 높다고 보기 힘든 영업권과 재산권의 충돌 문제라서 법익 침해의 양상이 보다 첨예하게 전개될 것이다.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보다는 보다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가임대차 법률관계의 경우 주택임대차보다 적용 지역에 따라 규율이 세분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보증금액에 따라 서울특별시, 과밀억제권역, 광역시, 그 밖의 지역으로 적용대상을 구분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즉, 서울특별시는 6억 1,000만원, 과밀억제권역과 부산광역시는 5억원, 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등은 3억 9,000만원 그 밖의 지역은 2억 7,000만원으로 법률의 적용을 받는 보증금액의 상한을 규율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만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에는 도저히 같은 대상으로 볼 수 없는 상권이 혼재되어 있다.
상권 활성화 VS 상권 쇠퇴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될 만큼 상권이 활성화되는 지역이 있는 반면 상권 자체가 쇠퇴해 임차인 보호 규정이 시장을 왜곡하여 상권 활성에 장애가 되는 지역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러한 부작용 사례를 주로 언급하며 법률 자체의 정당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며 조화로운 법률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큰 틀은 법률에서 정하더라도 규제의 적용 강도 등 세부적인 내용은 지자체장에게 위임하여 지역의 특성에 맞게 법적인 규율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규제뿐 아니라 상가건물 소유자에 대한 일정한 유인 제공 방안도 규제에 대응하여 제공할 수 있도록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갈등을 줄여나가면서 상가임차인 보호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점진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정원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wjeong@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