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부장, 조관행 전 고법부장 구속 관련, 영장실무 비판"실형가능성 · 여론 · 판사의 사회적 책임등 언급 이유 몰라"
조관행 전 고법부장 판사가 사건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과 관련, 현직 지법부장 판사가 법원의 영장 실무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조 전 부장에 대한 영장발부와 관련, 유감을 드러낸 글이지만, 불구속수사의 원칙 관철을 위해 경청할 대목이 적지않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의 정진경 부장판사는 10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린 '영장관련유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형사소송법은 구속사유로서 범죄에 대한 소명과 (주거부정,)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를 들고 있다"며, "이외에는 국민이 위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사유도 구속사유를 심리함에 있어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정 부장은 1989년 법관이 돼 18년째 일선법원의 법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법원내 주요 사안에 대해 자주 올곧은 소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장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오로지 위에서 언급한 사유를 갖추고 있으며, 그에 관한 소명이 충분한지만 심리하면 되는 것"이라며, "만일 법이 규정한 구속사유에 문제가 있다면 법을 개정함으로써 해결함이 정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사유 이외에) 왜 구속과 관련하여 실형가능성, 사회적 여론, 판사의 사회적 책임 등이 언급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장이 여론 등에 영향을 받아 발부돼선 안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그는 증거인멸의 염려와 관련, "부인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의자가 부인한다고 하여, 그리하여 사전에 증인을 만나 증거를 조작할 우려가 있다고 추정하여 구속함으로써 아예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피의자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헌법상의 진술거부권과 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아예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며, "법원은 피의자가 법정출석을 약속한다면 단순히 수사기관의 소환에 불응함을 이유로 영장을 발부하여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의자가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도망 및 증거인멸의 우려를 추정하여 영장을 발부하는 관행은 진술거부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는 불구속수사 원칙과 관련, "법원이 아직도 여론운운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에 안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각급 법원에서 과감하게 현재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관철할 강고한 의지를 갖춘 사람보다는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되지 않을 사람을 영장담당판사로 지정하여 법원을 운영함으로써 검찰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하였던 법원행정 책임자의 잘못에 기인한 바 크다"고도 했다.
그는 "불구속수사에는 법원칙을 지키느냐, 판사가 자의로 이를 거부하고 위법한 구속을 계속하느냐의 두 가지가 있을 뿐 절충은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부장판사의 '영장관련유감' 전문이다.
영장관련유감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그 후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불구속수사의 원칙과 그 중요성에 대하여는 그간 수차례 글을 올렸는데 또다시 이런 글을 올리게 된 데 대하여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글을 씀에 있어서 가급적 감정을 자제하려고 노력하여 왔으나, 오늘은 작심하고 쓴소리를 할 생각입니다. 법관윤리의 문제는 계속하여 토론을 해 나가야겠지만, 이와는 별개로 구속영장과 관련한 이번 소동에 대하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하 경어 생략)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불구속수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은 구속사유로서 범죄에 대한 소명과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를 들고 있다(주거부정은 본 사건과 무관하므로 논의에서 제외한다).
그런데 그 중 범죄에 대한 소명이란 소명에 불과한 것이고, 구속영장이란 피의자의 출석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청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피의자에 대한 신문이 불가능한 경우가 법의 취지에 따른 정상적인 경우일 것이므로 체포경찰관이나 피해자의 진술서 정도로도 그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이런 정도의 소명은 통상의 사건에 있어서는 갖추어져 있을 것이므로, 구속사유로서는 중요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거인멸의 염려에 관하여 보면, 증거인멸의 염려는 증인을 살해하거나 조직폭력배로서 증인을 협박하여 위증을 강제하는 정도에 이르는 것에 국한하여야 하고, 그 입증의 정도도 합리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로 검찰이 구체적으로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여야 한다. 부인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국가라는 강력한 조직에 맞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여 제출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여야 하는 피의자의 처지에서 본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 줄 사람을 찾아서 설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설사 정도를 넘어 위증의 교사에 이른다고 하더라도 영장단계에서 피의자가 위증교사까지 할 것인지를 판별하기는 불가능하며, 또 이는 검사가 반대신문과 검찰 측의 증인을 통하여 반박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위증 및 위증교사죄로 형사 처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피의자가 부인한다고 하여, 그리하여 사전에 증인을 만나 증거를 조작할 우려! 가 있다고 추정하여 구속함으로써 아예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헌법상 피의자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속의 사유로서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도망의 염려이다. 그런데 도망의 염려도 실형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도망의 염려를 추정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손바닥만 한 나라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휴전선이며, 국토의 70% 이상이 산인 우리의 경우는 국토 자체가 감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직과 가족이 있는 사람은 실형이 예상된다고 하여도 도망하지 않는 예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영장단계이므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은 필요없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적어도 우월한 증거에 의하여 도망의 염려를 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피의자들이 도망을 시도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검찰의 소환에 응하여 수사를 받았다면 도망의 염려는 없는 것으로 봄이 옳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는 국민이 위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사유도 구속사유를 심리함에 있어서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영장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오로지 위에서 언급한 사유를 갖추고 있으며, 그에 관한 소명이 충분한지만 심리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법이 규정한 구속사유에 문제가 있다면 법을 개정함으로써 해결함이 정도이다. 필자는 왜 구속과 관련하여 실형가능성, 사회적 여론, 판사의 사회적 책임 등이 언급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왜 영장심문이 7-8시간씩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다. 위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유는 형사판사가 정식의 증거조사를 거쳐 최종적인 판결을 할 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현재 각급법원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한다고 하여 증거의 분리제출을 요구하고 있고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은 증거는 아예 기록에서 배제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영장단계에서 증거능력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일방적으로 수사기관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유무죄와 실형가능성을 판단하게 된다면, 위! 와 같은 공판중심주의를 위한 노력은 대국민 쇼로 전락할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권자로부터 나오는 입법, 사법, 행정의 기능 중, 입법과 행정은 그 담당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방법을 택하면서도 사법부의 경우에는 다른 구성방법을 택하고 강력하게 판사의 신분을 보장한 것은 판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판사는 여론이 아무리 법과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고 하여도 법에 따라 판단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과거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이 검찰조사를 받다가 자살하였고, 한 광역시장도 구치소 내에서 자살하였다. 이번에도 자살하고 싶은 심정 운운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검찰조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도대체 진술거부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또는 그 충동을 느끼기까지 검찰소환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불리하게 쓰이는 증거가 대부분 수사기관에서의 스스로의 진술이라는 기막힌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현상을 조장한데 대하여 과연 판사들에게 책임이 없는 것인가? 헌법상의 진술거부권과 자기부죄금지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아예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법원은 피의자가 법정출석을 약속한다면 단순히 수사기관의 소환에 불응함을 이유로 영장을 발부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피의자가 출석 및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검찰은 다른 증거방법을 통하여 유죄를 입증하면 !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비정상적인 현상은 피의자가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도망 및 증거인멸의 우려를 추정하여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영장발부의 관행은 진술거부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법원에서 불구속수사의 원칙과 관련한 반성과 그 관철을 이야기한 지 벌써 1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법원이 아직도 여론운운하면서 현실과의 타협에 안주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각급 법원에서 과감하게 현재의 잘못된 관행을 시정하고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관철할 강고한 의지를 갖춘 사람보다는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 문제되지 않을 사람을 영장담당판사로 지정하여 법원을 운영함으로써 검찰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하였던 법원행정책임자의 잘못에 기인한바 크다. 불구속수사에는 법원칙을 지키느냐, 판사가 자의로 이를 거부하고 위법한 구속을 계속하느냐의 두 가지가 있을 뿐 절충은 없다. 도대체 해방되고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이며 당사자주의 소송구조의 가장 기본적인 틀인 불구속수사의 원칙조차 현실에 정착시키고 이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면 그와 관련하여서는 법원이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며, 그런 법원이 여론을 들어 현실과 타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원이 ! 여론을 들어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 무원칙성으로 인하여 검찰과 여론으로부터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고, 법원의 권위만 더 상처를 입게 될 뿐이다.
불구속수사의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은 우리 형사사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고 불구속수사의 원칙이 무너지게 되면 형사소송법이 예정하고 있는 당사자주의적 구조는 근저에서부터 무너지고 만다. 구속사유는 판사가 임의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인신과 관련된 것으로서 판사가 엄격히 법의 취지에 맞게 해석, 적용하여야 한다. 법과 현실이 따로 노는 이런 후진적인 형사사법의 운영에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한 때이다.
또한, 우리나라 어디보다도 법과 원칙이 엄격히 준수되어야 할 법원에서 외부 여론에 영합하여, 법원의 구성원이 구속수사를 주장하며 시위에 가담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이 법원 행정책임자의 무원칙한 타협과 편의제공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냉철하게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2006. 8. 10.
고양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정진경 올림
Copyrightⓒ리걸타임즈(www.legaltime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리걸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