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속으로']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21일 2심 선고…법조 안팎서 비상한 관심
얼마전 부친상을 당한 변호사 친구의 상가에 갔을 때의 일이다.조문객중엔 특히 판,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이 많았다. 법조3륜이 모처럼 진솔한 얘기를 나눴다. 박용성 · 용오 전 회장 등 두산그룹 일가에 대한 재판 얘기로 모아졌다.
요즈음 형사재판에선 유무죄 판단 못지않게 구속 · 불구속재판의 신병(身柄) 결정, 집행유예냐 실형이냐, 몇년 형이냐는 등의 양형(量刑)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1심에서 용성 · 용오 · 용만 3형제 등 관련 피고인 전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던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도 2심 선고를 앞두고 또한번 형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선고 일시는 7월21일 오전 10시 10분. 열흘 남짓 후면 항소심 결과가 나온다.
286억원의 회사돈을 횡령하고, 2800억여원의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된 두산의 용성 · 용오 전 회장에게 1심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벌금 80억원도 들어있다.
박용만 전 부회장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이 선고됐다.
그러자 검찰의 '봐주기 수사'에 이은 '솜방방이 처벌'이라는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2심 재판으로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이 1심에서의 집행유예 선고를 비판하며, '사법부의 위신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대법원장의 재판권 침해 논란'과 함께 과연 2심에서도 주요 피고인들에게 1심대로 집행유예가 유지될 지, 아니면 1심과 달리 실형이 선고될 지를 놓고 법조 안팎에서 갖가지 전망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날 상가에서 만난 법조인들도 이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2심 판결에 대한 시원스런 전망을 내놓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은 죄 만큼의 벌'을 내려야 하는 형의 양정(量定)이 원래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지만, 발언의 당사자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조인들도 2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법원장의 발언 내용과 맞물리며 또한차례 논란이 불가피할 것이란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한 변호사는 "(담당재판부가) 집행유예 사안이어 1심과 마찬가지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대법원장의 발언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반대로 1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하자니 대법원장의 말 때문에 형이 무거워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담당재판부가 원래 형의 양정 등에서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평소 소신대로 판결을 내려도 대법원장 발언에 영향을 받았다는 말을 듣게 됐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이와관련, 기자는 대법원장의 발언 내용이 알려진 지 얼마 안 돼 과연 대법원장 말대로라면 1심에서 주요 피고인에게 어떤 형이 선고됐어야 하는 것이냐고 한 중견 법관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 명료했다.
"물론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라는 뜻이었겠죠."
"그러면 피고인이 항소할 경우 2심은 어떻게 되나요."
"항소기각해서 원심을 유지하는 거죠. 이어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해 재벌 총수 일가의 수백억원 횡령행위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 한다는 의미 아니었을까요."
그의 이같은 해석이 어디까지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대법원도 대법원장의 발언이 알려진 후 논란이 확산되자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법원장의) 평소지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대법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은 가운데, 2심 선고가 가까워 오면서 판결 결과가 또한번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법리적으로만 따지면, 항소심 재판부의 선택 범위는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무죄에서 법정최고형까지 어떤 내용의 형을 선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피고인만 항소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으면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이 적용돼 1심 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하지만 피고인과 검찰이 모두 항소한 이 사건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얼마전 보석으로 풀려난 정몽구 현대 · 기아차 회장의 경우를 들며 집행유예를 점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보석허가와 판결의 선고는 전혀 다른 사안이기 때문에 정 회장 케이스는 두산 사건과는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불구속재판의 원칙'상 정 회장을 풀어 주고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지 정 회장에 대한 유무죄 판단과 양형이 나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두산 사건은 1심에 이은 2심 선고가 임박해 있어 유무죄 여부와 구체적인 양형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2심은 사실심의 최종심이다.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가 아니면 대법원에 상고하더라도 형량에 대해선 더이상 다툴 수 없다. 의미가 작지 않다. 2심 형량대로 사건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2심 형량은 크게 ▲(1심보다) 감형 ▲항소기각(원심 형량 유지) ▲1심 취소, 실형 선고 ▲실형선고 및 법정구속 등의 범주로 나눠 예상해 볼 수 있다.
집행유예의 유지냐, 아니면 실형선고 또는 실형선고 후 법정구속이냐가 핵심 포인트다.
전에는 항소하면 1심보다 형을 깍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얼마전부턴 꼭 그렇지도 않다.
항소기각하며 1심의 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집행유예 등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며 법정구속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최근들어 달라진 형사법정의 풍경이다.
형법 51조에 따르면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야 한다고 '양형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두산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여기에다 여론, 대법원장의 발언,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도 어떤 형식으로든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두산측 변호인중 한 사람은 "1심 판결문을 들여다 보면 두산 사건이 밖으로 알려진 것처럼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1심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이 2심에서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6월30일에 있은 결심공판에서 1심때와 똑같은 형을 구형했다. 이런 경우를 '원심 (구)형량 유지'라고 부른다. 용성 · 용오 전 회장에게 각각 징역 6년, 용만 전 부회장에겐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법조 주변에선 보통 구형량의 2분의1 이상에서 형이 선고되면 검찰도 큰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형은 물론 참고사항이다. 재판부가 검찰의 양형 의견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구형 아래 두산 3형제에게 모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를 선고할 때만 붙일 수 있다. 형법 51조의 '양형의 조건'을 참작해 정상참작 사유가 있을 때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유예기간은 1년 이상 5년 이하.
이제 항소심 재판부가 이들의 죄값을 저울질할 차례다.
최후 진술에서 피고인들은 죄를 뉘우치고 있으며, 횡령한 돈을 회사에 변제한 점 등을 내세우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2심 판결 결과가 다시한번 주목된다.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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