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산업재해를 입어 요양 중인 택배 배송기사( '쿠팡맨')에게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5월 31일 쿠팡이 "택배 배송기사 이 모씨에 대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를 부당해고로 판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노위를 상대로 낸 소송(2017구합83799)에서 쿠팡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씨가 피고보조참가했다.
이씨는 2016년 9월 3일 오후 3시쯤 부산에서 택배 배송업무를 하던 중 배송차량 화물칸에서 20kg가량의 배송물품을 들고 땅으로 내려오다가 넘어져 오른쪽 십자인대 파열 등 상해를 입어 산재 인정을 받았다. 이씨는 이 업무상 부상으로 요양 중이던 2016년 10월 1일경 근로계약을 갱신하여 기간을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로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쿠팡이 기간만료 11일 전인 2017년 3월 20일 이씨에게 '근로계약은 3월 31일 기간만료로 종료된다'는 취지의 통보를 하자,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구제를 신청했다. 부산지노위에선 구제신청이 기각되었으나, 중노위가 "이씨에게는 정당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근로계약 종료 통보는 근로계약의 갱신거절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으므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지노위의 기각 판정을 취소하고 쿠팡에 이씨의 구제를 명하는 판정을 내리자 쿠팡이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 피고보조참가한 이씨는 2015년 9월부터 6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해왔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2007두1729 등)을 인용,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는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근로자로서의 신분관계가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나,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될 때에는 사용자가 이에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가 이씨와 맺은) 근로계약과 원고 회사의 택배 배송기사 채용공고의 내용은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이씨에 대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 전 1년간 원고 회사의 택배 배송기사를 포함한 계약직 직원의 계약갱신 비율은 90%를 상회하는데, 이 갱신 비율에 근로자의 사정으로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더하여 보면, 오히려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는 것이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원고 회사와 이씨 사이에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이씨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쿠팡이 택배 배송기사를 모집하는 채용공고에는 '쿠팡 본사 계약직 6개월 근무 후 업무평가를 통해 계약 연장 또는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또 쿠팡은 근로계약 갱신에 관한 절차와 기준인 '정규직 전환 및 계약 연장 Process 및 기준 안내'를 마련하여 택배 배송기사 등 계약직 근로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했는데, 이 기준은 근로계약 갱신의 절차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근로계약 갱신의 심사기준과 세부적인 판단 방법도 마련하고 있으며, 일정기준을 충족한다면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쿠팡은 분기별로 택배 배송기사들을 평가하여 평가 결과를 근로계약 갱신 심사에 반영했으며,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의 갱신에 관한 절차와 기준을 설정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재해를 입은 근로자 보호에 관한 근로기준법 23조 2항 본문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1조의2의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이어서 근로제공이 어렵다는 사정은 갱신거절의 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씨가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이었던 사정으로 3차 근로계약의 기간 배송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근로계약 종료 통보 당시 배송업무를 할 수 없는 신체상태였다는 점은 그 자체로 근로계약 갱신거절의 합리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이씨가 3차 근로계약의 기간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원고 회사는 분기별로 이씨에 대해 평가하고 있었으므로, 근로계약 갱신에 관한 평가가 불가능하였다고 볼 수 없고, 원고 회사의 계약갱신 비율을 고려하면, 과거 이씨의 분기별 평가 결과도 갱신거절의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이씨에 대한 근로계약 종료 통보는 근로계약의 갱신거절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봄이 옳다"고 판시했다.
근로기준법 23조 2항 본문에 의하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질병의 요양을 위하여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11조의2에 의하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신청한 것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그 밖에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처우를 하여서는 안 된다.
법무법인 율촌이 쿠팡을 대리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