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식 변호사]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주기동 부장판사)는 최근 대한민국의 사회단체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해 북한의 공식적인 사실 확인을 받아 법원 판결의 사실인정의 기초자료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재판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소위 '동의보감 사건'이라 하여 2001년에 재판이 시작되어 약 5년간 세간의 이목을 집중한 저작권사건에서 이 방법이 동원됐다.
이 판결은 또 저작권법 분야에서도 짚어 볼 대목이 적지 않아 소개한다.
먼저 원심판결인 서울중앙지법판결 내용부터 살펴보자.
원심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01가합 173)은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허준의 동의보감을 번역한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자라고 보았다.
원고는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를 대리한 중국 심양시 조선족문화예술관으로부터 북한판 동의보감의 대한민국내 출판권을 설정받아 북한판 동의보감을 대한민국 실정에 맞게 수정한 여강판 동의보감을 출판하였는데, 피고 김모씨가 북한식 약제의 명칭을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하고, 일부 누락된 부분을 수정, 추가하며, 북한의 한문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할 수 있게 대역본으로 만드는 등으로 북한판 동의보감을 무단으로 이용하여 법인판 동의보감을 출판하였으므로, 이는 원고의 출판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판결의 주요 골자다.
항소심인 서울고법판결은 그러나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효력이 대한민국의 주권범위 내에 있는 북한지역에도 미친다는 전제아래,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자는 북한의 '보건부동의원(현재 고려의학과학원)'으로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는 단지 북한판 동의보감을 출판한 출판사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원심판결과 달리 판단한 것이다.
서울고법판결은 또 가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원고가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로부터 중국 심양시 조선족문화예술관을 통하여 북한판 동의보감의 독점적인 출판권을 설정받았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다 중국 심양시 고려민족문화연구원이 북한측에 판권관리를 제의하고, 북한의 저작권 사무국은 출판지도국,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평양공증소를 통하여 관련서류를 작성하여 주고, 고려민족문화연구원은 원고에게 북한판 동의보감의 판권관리를 위임한 사실에 따르면, 원고는 고려민족문화연구원을 통하여 북한측으로부터 피고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위임받은 것으로서, 이는 신탁법 제7조 소정의 소송을 목적으로 하는 신탁에 해당하여 무효이고, 원고가 독점적 출판권을 설정받았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없다고 판시하였다.
결과는 원고 패소 판결.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무엇보다도 북한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해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효력은 대한민국의 주권범위 내에 있는 북한지역에도 그대로 미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 데 의미가 있다.
또 북한판 동의보감의 저작권자가 누구인지를 우리나라 저작권법에 따라 판단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사회단체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 대한 사실조회를 통하여 북한의 공식적인 사실확인을 받아 법원 판결의 사실인정의 기초자료로 사용한 최초의 사례라는 데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차후의 유사소송에서도 참고의 가치가 높은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서울고법판결 전문은 리걸타임즈 자료실 참조.
법무법인 다래 대표변호사(yscho@darae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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