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변호사 국제기구 진출 르네상스 만들자""중장기 계획, 꾸준한 도전 바람직"
"한국변호사들이 국제기구에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얼마 전부터 아시아 지역에 국제기구가 많이 설립되고 있는데, 한국변호사들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2012년 아시아개발은행(ADB) 내 신탁펀드로 설립된 신용보증투자기구(CGIF)의 법률총괄임원(GC)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진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한 한국변호사로, 국제기구 근무라는 독특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CGIF 법무실에서의 역할은 일반 회사의 사내변호사 업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 CGIF가 제공하는 회사채 보증과 관련, 보증 대상 프로젝트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와 관련 서류 네고, 보증의 완성까지 일체의 법률문제를 뒷바라지한다. 6월 현재 CGIF 법무실에 상주하는 변호사는 박 변호사를 포함해 모두 5명. 5년 전 박 변호사가 처음 부임한 이후 일감이 늘며 매년 변호사를 충원한 결과다.
누적 보증액 1조원 넘어
"CGIF는 아세안 10개국과 한, 중, 일 13개국 금융시장에서의 회사채 발행에 대한 보증이 주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동안 14개 프로젝트에 모두 1조원이 넘는 보증이 실행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채무불이행 등 보증과 관련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박 변호사는 이와 함께 이사회 담당이사(Board Secretary)를 겸해 CGIF 이사회 등의 지배구조, 다른 국제기구와의 공조, 재보험 등 공법과 사법이 망라된 법률 관련 이슈를 총괄하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것도 초기 자본금이 7억 달러인 CGIF의 자본 확충과 활성화를 위한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의 업무협의가 주된 목적. 그는 "한국이 경제발전과 함께 국제기구 등에 상당한 지분을 출자하고 있다"며 "이러한 노력과 위상에 걸맞게 한국변호사들이 국제기구에 적극 진출해서 많은 활약을 하기를 바란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한국은 CGIF에 중국, 일본, 그리고 ADB에 이어 4번째로 많은 15%의 지분을 출자했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CGIF는 지난달 법무법인 율촌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 이원희 영국변호사를 법무실의 다섯 번째 변호사로 채용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한국변호사도 3~4명 지원했으나 40대의 경력 있는 변호사를 선발하기로 한 방침에 따라 런던과 홍콩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 변호사가 낙점을 받았다는 후문.
박 변호사는 그러나 "변호사 등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보면 20~30번씩 트라이 해 채용된 사람이 적지 않다"며 "한두 번에 쇼부치겠다는 식으로 덤비면 곤란하고, 중장기 계획으로 꾸준히 도전해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약 1000명의 국제직원이 근무 중인 아시아개발은행만 해도 이들 국제직원의 평균 연령이 47세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국제기구 근무자들의 엔트리 나이도 보통 20대 후반~30대라고 한다.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석사,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김앤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박 변호사도 월드뱅크의 MIGA(보증기구) 법률파트의 변호사 자리에 지원서를 냈다가 탈락한 경험이 있다. 이때가 2007년으로, 박 변호사는 이후 리먼 브라더스 서울지점 GC, 한국씨티은행과 한국씨티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쳐 CGIF GC가 되었다.
한국씨티 부사장 등 역임
"김앤장에 있을 때인데, 지인이 MIGA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알려주어 지원해 최종 2명에 들고, 홍콩 가서 영어 인터뷰까지 했는데 외국인에게 밀렸어요. 하지만 두 번째 도전에 국제기구 GC가 되었으니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박 변호사는 국제기구에서의 업무능력에 관해선, "한국변호사라면 걱정할 게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국변호사들이 영어도 잘 하지만 비록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법률업무 경험과 리걸마인드만 훈련되어 있으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의견. CGIF만 해도 보증계약서 등이 주로 영국법을 준거법으로 작성되지만, 법무실의 5명의 변호사 중 영국변호사는 지난달 합류한 이원희 변호사가 유일하다. 박 변호사는 "계약서 작성 등 실무작업은 외부 로펌에 의뢰해 마무리하고, 그 중에서도 영국 로펌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박 변호사는 또 "사내변호사가 법과 경영의 교차점에서 일한다면, 국제기구 변호사는 여기에 외교가 하나 더 들어간 셈"이라며 "다양한 문화의 차이와 서로 다른 업무방식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한층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경영+외교' 교집합 추구
CGIF 초대 GC로서 법과 경영, 외교의 교집합을 추구해 온 그는 성공적으로 경력을 더해가고 있다. 그에 따르면, CGIF가 보증한 14건의 프로젝트 중 지난해 이루어진 필리핀의 지열 발전 프로젝트 채권발행건은 유로머니로부터 '2016년 아시아 베스트 프로젝트 본드'에 선정됐다. 보증 규모가 1억 4000만 달러로 단일 프로젝트로는 CGIF 보증 중 최대 규모였다. 또 한국계 기업에 대한 보증으론, 코라오(KOLAO)의 라오스 자동차산업을 위한 4000만 달러 규모의 보증이 있다. 물론 박 변호사의 지휘 아래 법무실에서 완벽하게 법적인 뒷받침을 제공했다.
"과거 50년간 아시아에는 국제기구라고 해봐야 아시아개발은행이 유일했어요. 하지만 최근 5년 사이에 아시아 지역에 일종의 국제기구 설립 붐이 일고 있어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녹색기후펀드, CGIF, AMRO(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브릭스판 월드뱅크인 NDB 등이 최근 아시아 지역에 설립된 대표적인 국제기구다. 이들 국제기구의 법무 쪽에 한국계 외국변호사들이 여러 명 나가 활약하고 있으나, 한국변호사는 박진순 변호사가 유일한 상황.
박 변호사는 아시아 지역의 잇따른 국제기구 설립을 '국제기구의 아시아 르네상스'라고 표현하고, 한국변호사의 국제기구 진출 르네상스로 발전시키자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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