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송받기보다 용서 구하고 싶은 심정"
"환송받기보다 용서 구하고 싶은 심정"
  • 기사출고 2005.10.13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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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담 대법관, 퇴임사서 법관생활 35년 참회 눈길사건 당사자들 배려 소홀했던 일 들며 아쉬움 토로
35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는 유지담 대법관이 참회록이라고 해야 할만한 내용의 퇴임사를 남겨 화제가 되고 있다.

◇유지담 대법관이 10일 대법원..
유지담 대법관은 10일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잘했다고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고 잘못한 일들만 생각나다"고 운을 뗀 뒤, "환송해 주는 여러분을 뒤돌아 볼 면목조차 없이 떠나게 돼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말로 퇴임사를 시작했다.



특히 그가 아쉬웠던 대목으로 회고한 내용들은 대부분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부분에 관한 것이어 더욱 눈길이 간다.

그는 "법적 분쟁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하여 마땅히 했어야 할 봉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또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사법부 독립의 침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저 자신의 부족함에 있기 때문이어 사법권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고, 법관과 법원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등의 당연한 말조차 남기고 갈 자격이 없음을 솔직히 고백한다"며, "사건 당사자들의 입장을 헤아려서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주며 신속하고 공정하게 결론을 내려 주는 것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법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주장하는 말을 자세히 듣거나 써낸 글을 끝까지 읽는 것을 가지고도 마치 시혜적인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또 "당사자의 처지를 전혀 고려함이 없이 저의 편의만을 생각하여 재판기일을 정하고, 연기신청을 받아주는 데는 인색하면서 직권으로 재판을 연기하기는 거리낌없이 했다"며, "충분한 기록검토와 휴식을 취한 후 맑은 정신으로 재판에 임하겠다고 항상 다짐하고는 이를 실천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곤한 몸으로 재판에 임하여서는 당사자의 주장이 장황하다고 탓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아쉬워 했다.

그는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의 의미를 제 나름대로 해석한 나머지 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기도 하고 사건 당사자들의 편의를 배려하는데도 소홀했다"며, "이론을 연구하고 판례를 숙지하기 위한 노력만큼 사건기록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사실을 파악하는데 정성을 쏟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게 했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그는 "법복을 입고 법대 위에 앉아서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의 권위는 그 법대 아래에 내려가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 당사자의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그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정성을 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권위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당연히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까다로운 절차규정의 준수만을 지나치게 고집한 나머지 실체적 정의의 실현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한 적은 없었는지, 그래서 사법적 절차에 접근하는데 익숙하지 못한 서민들의 보호를 소홀히 한 적은 없었는지 두려운 마음 금할 수 없다"며, "무엇보다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권력에 맞서 사법부 독립을 진정코 외쳤어야 할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는 침묵하였으면서 정작 사법부에 대한 경청할 만한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때 이를 외면한 채 '사법권 독립'이라든지 '재판의 권위'라는 등의 명분으로 사법부의 집단이익을 꾀하려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는 움직임에도 냉정한 판단을 유보한 채 그냥 동조하고 싶어 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대법관은 "환송을 받기보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고, "앞으로는 저와 같이 후회스런 말만을 남기면서 법원을 떠나는 법관이 한분도 없기를 기원한다"고 퇴임사를 맺었다.

유 대법관은 경기 평택 출신으로,국립 체신고와 고려대 법대를 나왔으며, 사법시험 5회에 합격했다.

1970년 대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전주지법 정읍지원장,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 부산 · 대전 ·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남부지원장, 울산지법원장 등을 거쳐 2000년 10월 대법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