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협회장]
[대한변협회장]
  • 기사출고 2004.05.2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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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석 변호사님 영전에"

존경하는 유현석 변호사님

이 무슨 황망한 일입니까?

유 변호사님께서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희들에게 변호사의 기본적 사명인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박재승 회장

한평생을 올곧은 자세로 자유와 정의를 추구해 오신 구도자적 모습을 저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자에 대해서는 법과 정의의 엄정함을 가르치시고, 반면 억울하고 핍박받는 자에 대해서는 한없는 사랑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유 변호사님께서는 판사로, 변호사로 반백년 넘게 법조인으로 봉사하시면서 해박한 법률지식으로 우리나라 민사소송법과 민사소송제도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공헌하셨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와 총회의장 등을 맡아 변협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해방이후 우리 사법의 산 역사이자 증인이셨고 살아있는 백과사전이셨습니다.

작년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34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신 데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 법을 잘 모르면 유현석 변호사에게 물어보라고,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유현석 변호사님을 찾아가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함께 살았습니다.

엄혹했던 지난 유신시대 이래 군사정권 하에서도 당신께서는 야만적인 법집행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명동구국선언 사건 등 수많은 시국사건을 도맡아 변론하셨고,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야간열차로 광주로, 부산으로 달려가셨습니다.

당신께서 변론하신 그 수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숨결이 이 땅의 민주주의의 대지에 녹아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당신께서는 변협 인권이사로서 변협이 전두환 정권의 4ㆍ13 호헌조치에 대한 반대성명을 최초로 내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유현석 변호사님.

당신께서는 비단 법정뿐만 아니라, 당신의 능력과 헌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이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그 동안 한국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으로서, 평화방송 이사로서,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으로서, 경실련 공동대표로서, 민변 고문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으로서, 그리고 최근에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언론인권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봉직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과 복지, 종교, 언론 등 많은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밖에서는 그렇게 치열하신 삶을 살면서도 가정에서는 여섯 자녀의 아버지로서 누구보다도 자상하고 헌신적인 모습으로 화목한 가정을 일구셨습니다.

존경하는 유현석 변호사님

아직 이 땅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해서 하실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아직도 유변호사님의 쩌렁쩌렁한 변론이 귓가에서 맴돌고 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짐을 저희들에게 맡기고 편히 쉬십시오.

저희들이 안고 가겠습니다.

당신이 변호사로서, 인권운동가로서, 사회활동가로서 보여주신 투철한 인권의식과 진지한 삶의 자세를 본받아 이 사회가 미처 못다 이룬 과제들을 저희들이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유현석 변호사님,

당신은 비록 가셨지만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삶을 성실히,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제 더욱 밝고 찬란한 저 세상에서 영면하소서.

삼가 명복을 빕니다.

2004년 5월 27일

대한변호사협회장 박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