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한 통계가 있다. 2008~2011년 국민참여재판의 전체 무죄율은 8.4%였으나, 2011년 법관이 관여하는 형사합의 사건의 무죄율은 3.7%로, 배심원의 무죄율이 4.7% 높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같은 기간 중 14.2%로 높아진 반면, 2011년 법관이 관여하는 사건의 무죄율은 2.3%로 떨어져 무죄율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성폭행 사건에서 법관이 배심원들에 비해 여론에 더욱 민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해석할 수 있다는 유력한 견해가 있다. 실제로 도가니 사건 등의 영향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은 "소신껏 재판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하고, "애매하면 유죄를 인정하기도 한다. 차라리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고 싶다"고 말한 판사도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한 대법관은 법원에서 간행되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성폭행의 양형을 정할 때 여론에 휘둘리지 말라"고 후배 판사들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피고인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하는 한 유죄판결을 내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 임명 등의 자리에서 단골로 당부하는 말이 있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간섭보다는 일시적 · 감정적인 여론으로부터의 재판 독립이 더욱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 이인복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선고한 대법원 판결에 판사들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형사재판의 기준이 있다.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사법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법원은 선입견 없는 태도로 검사와 피고인 양편의 주장을 경청하고 증거를 조사하여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 무죄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 편집국장(jwkim@leg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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