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수 변호사]
[황도수 변호사]
  • 기사출고 2004.05.11 11: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
우리 나라는 법치주의 국가이다.

국민의 생활관계는 힘있는 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미리 정해진 ‘법’에 의하여 공평하게 규율된다. 그 때 그 때 힘있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힘없는 자를 함부로 취급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황도수 변호사
이런 좋은 제도가 우리 나라에서 행해진 게 벌써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모든 국민들의 생활관계가 법에 따라 규율된 지 50년이 지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법을 모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예 법에 관심이 없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한 나머지 법의 무지를 오히려 자랑하는 측면까지 있어 보인다.

그리고는 '법은 힘있는 자의 편'이라고 하면서 법을 혐오한다. 가능하면 법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아직도 일제시대의 ‘순사’와 ‘감옥’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소박한 법감정인 것 같다.



그러니 사기꾼들이 판을 칠 수 밖에 없는 일 아닌가. 국민들의 법에 대한 이같은 태도는 사기꾼들에게 더 없는 호재로 작용한다. 친분관계를 이용하여 영수증 한 장 써주지 않고 현금을 받아 챙기는가 하면 사업을 같이 하자며 재산을 넘겨 받아서 떼어먹은 뒤, 나중에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법망을 피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뒤늦게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형사 고소에다 민사소송을 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들이 잘못했다는 입증자료를 제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해보았자 상대방이 부인하고 나오면 그만이다. 영수증 한 장 없이 빌려간 돈을 받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피해자들은 ‘법은 힘있는 놈들의 편’이라고 애꿎은 법만 원망한다. 판, 검사와 변호사등 법조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도매급으로 불평을 늘어 놓는다. 사실은 법은 예나 지금이나 공평하게 사실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필자는 변호사를 하면서 이런 딱한 경우를 수도 없이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예방책을 알려주어 보지만 비슷한 하소연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우리 국민들의 법의식 자체가 선진화되기 전엔 의뢰인의 이런 푸념과 불평을 좀 더 들어야 할 것 같다.

한편, 컴퓨터에 대한 의식변화는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1980년대 후반에 286컴퓨터로 문서편집을 하며 신기해 하던 때로부터 30년도 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녀노소의 손에는 제각각 핸드폰이 들려져 있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참으로 신속한 적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하고도 적극적인 자세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법없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 지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법 없이도 살 사람'만 찾아 헤매야 할까.

'법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아쉬울 따름이다.
◇황도수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법학박사(헌법학)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연수했습니다. 27회 사법시험에 합격,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역임했습니다. 1999년 11월부터 율경종합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 공법학회와 헌법학회 이사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단행본 '헌법재판실무연구' 등이 있습니다.

본지 편집위원(dshh@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