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내 우산인줄 알고 20만원 상당 장우산 가져갔다는데 절도 기소유예…취소하라"
[헌법] "내 우산인줄 알고 20만원 상당 장우산 가져갔다는데 절도 기소유예…취소하라"
  • 기사출고 2024.09.1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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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우산 착각 주장 비합리적이지 않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식당의 우산꽂이에서 자신의 우산과 비슷한 시가 20만원 상당의 검정색 장우산 1개를 절취한 혐으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A(당시 62세)씨가 헌법소원을 통해 기소유예 취소 결정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기소하지 않는 처분을 말하며, 검사의 기소유예처분도 공권력 행사여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A씨는 "피해자의 우산을 자신의 우산이라고 착오하여 가져간 것이어 절도의 고의가 없었음에도 검사가 절도의 고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한 기소유예처분을 함으로써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2023헌마79)을 청구했다.

A씨는 8월 9일 12:11쯤 일행 2명과 함께 강남구의 식당에 방문해 자신이 쓰고 온 검정색 장우산을 우산꽂이에 꽂아두었다. B씨는 A씨보다 30분쯤 뒤인 12:44쯤 같은 식당에 들어와 우산꽂이에 자신의 검정색 장우산을 꽂아두었다. 13:01쯤 식사를 마친 A씨 일행 중 1명이 신용카드로 식사대금을 결제했다. A씨는 자신의 우산을 우산꽂이에서 꺼내들어 잠시 살펴보았다가 다시 꽂아두고, 다른 우산꽂이에서 B씨의 우산을 꺼내들어 마찬가지로 잠시 살펴본 뒤 이를 가지고 나갔다.

경찰은 카드사로부터 식당에서 결제한 A씨 일행의 신상을 파악해 위 일행을 통해 10월 17일 A씨에게 연락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의 우산을 내 우산으로 착각하고 잘못 가져간 것이고, 오늘 연락을 받을 때까지 우산을 잘못 가지고 간 사실 자체를 몰랐다. 집에 B씨의 우산과 비슷한 우산이 많아서 착각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부터 약 3년 7개월 전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며 대학병원 신경과에 내원하여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8월 29일 "청구인의 절도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청구인과 피해자의 우산은 모두 검정색 장우산으로 그 색상과 크기 등 외관이 유사하고, 청구인의 연령 및 건강상태를 고려하면, 우산을 착각하였다는 청구인의 주장이 그 자체로 비합리적이지는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우산은 청구인의 우산과 달리 손잡이에 비닐포장이 씌워져 있기는 하였으나, 이는 사소한 부분이어서 충분히 착오할 수 있다. 한편 피해자의 우산에는 '벤츠'라는 고가의 외제차 브랜드 마크가 부착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CCTV 영상만으로는 청구인이 피해자의 우산에서 '벤츠' 마크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건 당시 청구인은 일행 2명과 함께 자신의 주거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방문한 것이었고, 청구인이 우산을 찾을 때에는 이미 청구인의 일행이 신용카드로 결제를 마친 상황이었는바, 이러한 상황에서 청구인이 우산을 절취하였다고 보기에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83도1762, 83감도315)에 따르면, 재물의 타인성을 오신하여 그 재물이 자기에게 취득할 것이 허용된 동일한 물건으로 오인하고 가져온 경우에는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범의가 조각되어 절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