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나 교량, 도로, 해상 플랫폼 구축 등 한국의 건설사, 중공업 회사들이 해외시장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해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공사가 예정대로 완성되어 보통 수조원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수많은 클레임, 국제중재 등 분쟁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건설분쟁에 특화한 국내외 법률회사들이 해결사로 나서 EPC 시공사들의 해외공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요소가 많은 건설분쟁에선 로펌의 활약 못지않게 공정지연이나 손해액 등에 대한 분석, 공사에서 발생한 흠에 대한 엔지니어링 분석을 제공하는 전문 컨설팅 회사들이 로펌을 도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7년 연속 '건설 분야 전문가 증언' 1위
리걸타임즈는 최근 리스크 줄이기(risk mitigation), 전문가 증언(expert witness), 분쟁해결 지원 등 건설 공사 등에 관련된 컨설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컨설팅사 중 한 곳인 HKA의 Benjamin Highfield 아시아태평양 대표(CEO)를 인터뷰했다. 로펌의 자문과 다르다는 전문 컨설팅사의 역할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업무를 수행할까. 1976년에 설립된 Hill International부터 시작되어 48년의 경험이 축적 된 HKA는 Who’s Who Legal로부터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년 연속으로 건설 분야 전문가 증언 서비스(Construction Expert Witnesses analysis)의 1위 컨설팅사로 선정되는 등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한국 건설사가 시공한 UAE의 바라카 원전 관련 분쟁에서도 공정지연(delay), 손해액 산정 등과 관련해 약 10년간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한국 회사의 해외 프로젝트에도 단골로 참여하고 있다. 인터뷰엔 2018년 문을 연 HKA 서울사무소의 고안호 대표가 함께 참여해 거들었다.
Highfield 대표는 먼저 "중재를 예로 들면, 로펌은 중재 전 과정을 매니징하지만,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인 HKA의 전문가들은 중재에서 제기되는 기술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제공한다"고 비교해 설명하고, HKA가 세계 최대 규모의 대관람차 프로젝트를 한국 시공사로부터 맡아 수행한 적이 있는데, 기술 이슈에 대한 전문가 의견과 함께 공기지연 분석, 이를 토대로 한 연장 비용 청구액을 계산해 제공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중재에서 우리에게 법적인 질문이나 계약에 관한 질문을 해오면 우리는 답변하지 않고 그것을 로펌, 변호사들에게 보낸다"고 선을 긋고, "그러나 그것이 기술적인 질문이면 우리가 답변할 것"이라고 거듭 차이를 두어 이야기했다.
-로펌은 법적인 측면을 담당하고, 컨설팅사는 기술적인 의견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두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이슈도 있을 것 같다.
"누가 선임했든 컨설팅사 보고서는 똑같다"
"실제로 기술적인 문제 중에 계약의 해석이 필요한 것들도 있다. 동시지연(Concurrent Delays)이 좋은 예인데, 시공사와 발주자가 동시에 지연을 초래한 경우다. 이러한 경우 HKA의 전문가들은 분석을 통해 시공사는 얼마의 지연을 초래했고, 발주자는 얼마의 지연을 발생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시공사와 발주자 중 누가 권리를 가지는가를 말하는 것은 변호사들이다. 다시 말해 시공사가 100일의 지연을 초래하고, 발주자도 100일의 지연을 발생시켰다고 치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계약을 해석하는 변호사들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숫자를 제공한다."
-구체적인 팩트, 숫자를 챙기는 컨설팅사의 역할이 로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펌과 컨설팅펌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중재에서 변호사는 시공사와 같은 당사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다. 반면 HKA와 같은 전문가의 임무는 실제로 중재판정부에 대한 것이어 편견 없이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리가 어느 한 당사자로부터 보수를 받지만, 우리의 역할은 제3자로서 중재판정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덜 전략적이며, 우리는 진실을 추구한다. 우리의 보고서는 어느 쪽 당사자가 우리를 선임했든 관계없이 내용이 똑같다. 이것은 윤리의 문제다."
-HKA는 국제중재와 같은 분쟁 절차에선 물론 중재 등이 시작되기 전의 클레임 단계 등에서도 컨설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중재가 제기되기 전의 초기단계에서 시공사를 위해 클레임을 준비한다. 이 경우는 중재 등 분쟁 절차에서의 역할과 달리 보다 유연하게 임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는 일은 중재절차에서 수행하는 것과 똑같다. 공정지연 분석과 정량(quantum) 분석, 엔지니어링 분석이 HKA가 제공하는 3가지 주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량에 금이가거나 기계 등의 구조적인 흠의 원인을 찾아내는 엔지니어링 분석이 공정지연이나 정량분석에 포함될 경우 사안이 훨씬 더 복잡해지는데, HKA에선 1천명이 넘는 전문가들 중에서 관련 팀을 만들고 팀 전체를 조정해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11차례 계약 수정
우리는 한국 고객이 중동에 건설한 LNG 터미널 케이스를 수행했고, 북아프리카에 들어선, 한국 시공사의 거대 정유시설 케이스도 수행했다. 북아프리카 정유공장 케이스는 이집트 혁명, '아랍의 봄' 혁명,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며 11차례 계약이 수정되었을 정도로 복잡하고 오래 걸린 프로젝트다.
계약이 수정될 때마다 공사가 중단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정유시설의 규모가 작아지고 몇 가지 요소가 추가되었다. 그동안 원자재값이 오르고 노동력 부족, 하청업체의 파산 등 여러 이슈가 제기되어 분쟁이 제기되었다. HKA는 계약이 수정될 때마다 계약 수정의 모든 결과를 다뤘음은 물론 원자재값 상승, 노동력 부족 등의 이슈에 관한 전문가 의견을 제공해 올 초 판정이 나 분쟁이 마무리되는 데 기여했다."
-분쟁이 생겼을 때 컨설팅펌은 누가 선정하나? 로펌인가 시공사 등 당사자인가?
"때로는 시공사가 직접 우리를 찾아와 선정하고, 때로는 시공사가 로펌에 요청해 로펌이 컨설팅펌을 추천하는데 반반이다. 한국의 시공사들은 경험이 많아 컨설팅사를 직접 선정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에선 시공사들이 경험이 적어 로펌에게 컨설팅사 선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수는 거의 대부분 시공사가 지급하는데, 시공사가 로펌에 지급하고, 로펌이 다시 컨설팅사에 지급하는 경우가 10%쯤 된다."
-HKA가 대규모 건설 분쟁의 해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실감하겠다. HKA가 컨설팅 분야에서 이처럼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HKA 전문가 1천명 넘어
"무엇보다도 1천명이 넘는 HKA 전문가들의 높은 전문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HKA는 사람을 뽑을 때부터 엄선해서 채용한다. HKA에 입사하는 게 쉽지 않다. 우리는 다양한 측면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카데믹 테스트와 시험도 봐야 한다. 아마 사람을 뽑으면서 시험을 치르는 곳은 컨설팅펌 중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HKA는 건설에 관한 전문성과 함께 법에 관한 전문성, 두 개의 자격을 요구한다. HKA의 전문가들은 공학도 출신이 많은데, 많은 전문가가 건설법 전공의 법학석사(LL.M.)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 LL.M. 학위를 따도록 권장한다. (실제로 맨체스터대 학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도시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Benjamin Highfield는 영국의 Robert Gordon대에서 건설법과 중재를 전공해 LL.M. 학위도 취득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고안호 대표는 현재 Robert Gordon대의 건설법 및 중재 LL.M. 과정을 이수 중에 있다.)
또 하나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관심, 배려다. 클라이언트 케어(client care)와 HKA 전문가들의 높은 퀄리티가 HKA를 최고의 컨설팅 회사로 만든 바탕이다."
-요즈음 컨설팅 회사의 경기는 어떤가, 일이 늘어나고 있나?
"건설 쪽은 컨설팅 수요가 좀 줄었다. 한국의 메이저 EPC 시공사들도 일이 적다. 약 10개의 한국 건설사들이 EPC 프로젝트에서 사업을 해왔다면 요즈음엔 절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단 프로젝트가 많아야 컨설팅 회사도 할 일이 늘어난다."
-한국의 로펌들 사이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전쟁으로 파괴된 시설 등에 대한 재건 수요가 상당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이러한 이슈를 다루는 세미나도 자주 열리고 있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세계 최고의 시공사들이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고, 지난 15년간 세계 시장에서 상징적인 매우 복잡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건설사들은 뛰어나고, 발주자들이 한국 건설사를 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두들 한국 건설사들이 프로젝트를 잘 해낼 수 있고 유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석유와 가스, 빌딩 건설에서 한국 건설사들이 강하다.
문제는 한국 건설사들이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와 같은 일에 의향이 있을까, 하길 원할까라는 점이다. 프로젝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에 대한 답을 모른다.
우크라이나나 다른 지역에서의 재건 프로젝트는 막대한 금액의 파이낸싱과 펀딩이 필요한데, 한국의 국제적인 펀더들은 일본이나 중국의 펀더들만큼 크지는 않다. 얼마나 많은 펀딩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동원될 수 있는가도 따져보아야 한다."
-건설 관련 컨설팅 수요가 좀 줄었다고 했는데,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컨설팅 외에 HKA는 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
상사분쟁 손해 산정 서비스도 제공
"FACD 서비스를 제공한다. E디스커버리 등 포렌직 서비스와 회사를 인수하는 경우 등의 회계 컨설팅, 계약 위반과 같은 상사분쟁에서 이로 인한 손해(commercial damage)를 산정하는 서비스다. HKA에선 FACD를 활발하게 수행하며, 특히 나라마다 규정하는 내용이 다른 E디스커버리 서비스는 해당 나라의 파트너를 선정해 파트너 회사와 협력해 제공한다. 우리는 관할별로 많은 파트너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기자는 끝으로 Benjamin Highfield에게 한국의 EPC 시공사들이 프로젝트에서의 성공적인 클레임 관리, 분쟁 대응을 위해 무엇을 신경써야 하는지 조언을 부탁했다.
건설 분야에서만 15년 넘게 컨설팅 경력이 쌓인 Highfield 대표는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기록을 보존하고, 계약관리, 공사원가관리, 노무인력관리 등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며 철저한 준비를 제일성(第一聲)으로 주문했다.
"많은 고객이 우리를 찾아오는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아무 기록도 서류도 보관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이건 잘못된 거죠. 보통 수년씩 걸리는 프로젝트에선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EPC 프로젝트는 지연되게 마련이에요. 정시에 끝나는 프로젝트는 극소수입니다. 단 하루만 공사가 지연돼도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페널티가 있어요."
Highfield 대표는 "클레임이나 분쟁의 성공적인 해결을 위해선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며 "HKA의 컨설팅 서비스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