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을 두고 대법원에서 쟁점이 된 건 푸시백(Pushback, 계류장의 항공기를 차량으로 밀어 유도로까지 옮기는 것)을 개시한 비행기를 탑승구로 되돌린 부사장의 행위가 '항로 변경'에 해당하는가였다. 항공보안법은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하여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면서도, 항로가 무엇인지는 정의해 두지 않았다.
대법관들의 의견은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지상에서의 이동 경로'는 항로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법에서 용어를 직접 정의하지 않는 경우 사전적 정의를 따르는 것이 옳으므로, 항로는 '공중에서의 이동 경로'로 볼 수 있다는 것. 표준국어대사전은 항로를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空路)'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항공기는 지상에서 이동했으므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로'를 변경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해당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에선 맥락에 따라 '항로'라는 표현에 지상에서의 항공기 이동 경로가 포함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 단행본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을 출간한 서울회생법원의 손호영 판사는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각자의 관점에서 '항로'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탐구하고 정의를 내리려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판결을 하는 사람이 판사인지 언어학자인지 헷가릴 정도"라며 "그만큼 판결에서 언어의 엄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갈파했다.
판사란 어떤 사람이고 판결은 무엇일까? 그는 책에서 '한계', '사람', '조율', '평균', '감정', '실수' 등 28가지 키워드를 통해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무엇을 신경쓰고, 무엇에 기대어 판결문을 쓰는지 판사와 판결의 이면을 풀어냈다.
2018년 대법원의 한 형사 판결에서 개를 감전시켜 도살하는 '전살법'이 동물보호법이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대법원은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는…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판단하여야 한다"며 판단의 기준으로 '사회 평균인'을 데려 왔다. 손 판사에 따르면, 사회 평균인은 사회 구성원의 산술 평균값에 해당하는 사람(실증적 평균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규범적 평균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법원은 전살법이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손 판사는 누군가는 반발할 수 있지만, "잔인성에 관한 논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 유동적인 것"이라는 판결문의 표현을 인용하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적 인식'이 과거와 달리 동물 생명을 보다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사회 평균인의 인식도 이와 같을 것, 즉 잔인한 방법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이 변했다는 얘기다.
손 판사는 판결도 하나의 '콘텐츠'라고 말했다. 그리고 재판은 진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Based on a True Story). 당사자의 다툼이 날 선 공방으로 이어지고, 판결은 이 모든 '이야기'를, 오롯이 정성스레 판사의 언어로 갈무리해 담는다. 손 판사는 "판결의 실제 문장을 실마리 삼아 판결의 속뜻을 탐색하고, 이를 토대로 법, 판사, 사람, 사회 등 외부까지 시선을 넓혀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았다"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판결의 '속살'에 대한 이야기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