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Law] "외국에서 혼합할 목적으로 국내에서 13가 백신 조성물 생산도 특허 침해"
[IP Law] "외국에서 혼합할 목적으로 국내에서 13가 백신 조성물 생산도 특허 침해"
  • 기사출고 2024.02.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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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2020가합591823 판결

역외침해를 목적으로 13가 백신 조성물의 성분인 13종 개별접합체들을 국내에서 생산하였다면 이를 혼합하지 않고 수출하였더라도 13가 백신 조성물 특허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0. 선고 2020가합591823).

종래에는 특허권의 속지주의 원칙상 국내에서 특허 물건을 생산한 경우에만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고 국내에서 부품을 조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특허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특허권의 실질적 보호를 위해, ①국내에서 특허발명의 실시를 위한 부품 또는 구성 전부가 생산되거나 대부분의 생산단계를 마쳐 주요 구성을 모두 갖춘 반제품이 생산되고, ②이것이 하나의 주체에게 수출되어 마지막 단계의 가공 · 조립이 이루어질 것이 예정되어 있으며, ③그와 같은 가공 · 조립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하여 위와 같은 부품 전체의 생산 또는 반제품의 생산만으로도 특허발명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예외적으로 특허발명의 실시제품이 국내에서 생산된 것과 같이 볼 수 있다고 판단하여 속지주의의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9. 10. 17. 선고 2019다222782, 222799 판결 참조, 이하 '봉합사 대법원 판결'). 이 판결은 위 대법원 판결을 적용한 최초의 후속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장현진 변호사(좌) · 오승현 변리사
◇장현진 변호사(좌) · 오승현 변리사

대상특허

이 사건 특허발명은 13가 폐렴구균 접합백신 조성물에 관한 발명이다. 접합백신은 기존 다당류 백신에 비해 우수한 면역원성을 유도할 뿐만 아니라 면역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유아에서도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접합백신의 경우 하나의 조성물에 포함되는 접합체의 가수(價數, valency)가 높아질수록 접합체 간 면역반응에 간섭이 생겨 일부 접합체에 대한 면역원성이 억제되는 '면역간섭'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백신 기술분야에서 높은 가수의 접합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기술적 과제로 여겨졌다. 이 사건 특허발명은 이러한 기술적 과제를 극복하고 13종의 폐렴구균 혈청형 모두에 대해 우수한 면역원성을 나타내는 13가 접합백신 조성물을 제공한 것에 기술적 의의가 있다.

사건의 배경

폐렴구균 접합백신은 일반적인 필수예방접종 백신보다 가격이 높으며 성인 위주의 접종이 이루어지는 '프리미엄 백신'으로, 국내외 여러 제약사들이 가수를 높인 다가(多價) 접합백신의 개발 시도를 이어왔으나 성공 사례는 거의 없었다.

국내 백신 제조회사인 B사는 프리미엄 백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대상특허의 권리범위에 속하는 13가 폐렴구균 접합백신을 개발하여 식약처 품목허가를 신청하는 한편 대상특허에 대해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대상특허가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및 대법원을 거치면서 모두 유효로 판단되면서, B사는 대상특허의 특허만료일까지 자사 백신 제품을 국내에서 제조,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사가 백신 완제품 생산키로 합의

그러자 B사는 러시아 제약회사 C사와 기술이전 및 공급계약을 맺어, ①B사는 13가 폐렴구균 접합백신의 유효성분인 개별접합체 원액 13종을 국내에서 생산한 뒤 혼합하지 않은 상태로 C사에 제공하고, ②C사는 B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개별접합체 원액 13종을 혼합하고 제형화하는 공정을 거쳐 백신 완제품을 생산 · 판매하기로 하였다.

이에 특허권자인 A사가 B사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특허권침해금지의 소를 제기했다. 위 소송에서는 B사가 외국에서 혼합하여 이 사건 특허 물질인 13가 면역원성 조성물을 생산하게 할 목적으로 13종의 개별접합체 원액을 국내에서 생산한 행위가 대상특허를 침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그밖에 B사가 C사에 백신 완제품을 공급한 행위에 대해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가 적용되는지도 쟁점이 되었으나 본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봉합사 대법원 판결의 세가지 요건을 검토한 다음, B사가 13종의 개별접합체 원액을 국내 생산한 것만으로도 대상특허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가 갖추어졌으므로, B사의 행위는 대상특허의 직접침해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B사는 봉합사 대법원 판결의 사안은 간단한 기계장치 발명에 해당하는 반면 본 사건의 대상특허는 복잡한 제조공정을 수반하는 생물학적 제제 발명에 관한 것이므로 봉합사 대법원 판결이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대상특허와 같은 생물학적 제제 발명도 특허권의 실질적 보호 필요성이 있으므로 위 법리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아 B사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 사건에서 주로 봉합사 대법원 판결의 세가지 요건 중 ①요건(특허발명의 주요 구성을 모두 갖춘 반제품 등에 해당하는지)과 ③요건(가공 · 조립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하여 부품 내지 반제품의 생산만으로도 특허발명의 각 구성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체로서 가지는 작용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다툼이 있었다.

먼저 ①요건에 대하여, 법원은 B사가 공급한 13종의 개별접합체 원액이 대상특허의 조성물을 제조하기 위한 대부분의 생산단계를 마쳐 주요 구성을 모두 갖춘 반제품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혼합 공정'만 남아

구체적으로 (1)B사가 공급한 13종의 개별접합체 원액은 B사가 국내에서 허가 받은 제품에 사용되는 것으로, 13가 조성물로 혼합했을 때 면역간섭 없이 모든 혈청형에 대해 우수한 면역원성을 나타내도록 제조되었을 것임이 분명하고, (2)대상특허의 조성물을 생산하기 위해 단지 '혼합 공정'이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B사는 대상특허의 청구범위에 기재되어 있는 '폐렴구균 백신으로 사용하기 위한 13가 면역원성 조성물'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에서 혼합, 제형화 공정을 거쳐야 하므로 ①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대상특허의 기술사상의 핵심은 '13개 혈청형 모두에 대하여' 면역원성을 가지는 조성물이라는 데 있고, 이러한 면역원성은 13종 원액을 혼합하기 전의 제조단계에서 충분히 확보되었으며, 제형화 공정을 거쳐야 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B사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또한 ③요건의 '가공, 조립이 극히 사소하거나 간단한지 여부'에 대하여, 법원은 대상특허의 청구범위와 명세서의 기재를 바탕으로 통상의 기술자의 기준에서 판단하였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1)대상특허의 청구범위에는 13가 면역원성 조성물일 것이 요구될 뿐 혼합 공정에 관하여 별다른 기술적 제한을 부가하고 있지 않았고, (2)명세서에서도 개별 접합체의 제조과정에 관해서는 각 혈청형 별로 상세하게 예시되어 있으나, 개별접합체들의 혼합 공정에 관하여서는 개략적인 설명만 하고 있으며, (3)B사나 다른 경쟁사에서 출원한 특허출원 명세서나 백신 의약품 허가에 관한 생물학적제제 기준 및 시험방법에도 혼합 공정에 관하여 별다른 기재가 없는 점에 비추어 보면, 13종 개별접합체 원액의 혼합 공정은 통상의 기술자에게 극히 사소 · 간단한 공정이라고 판단하였다.

특허법원 항소심 계속 중

이 사건은 B사가 항소하여 현재 특허법원 항소심이 진행 중이므로, 최종 결론은 기다려보아야 한다.

본 사건의 이번 판결은 봉합사 대법원 판결을 적용한 최초의 후속 사례로서, 국내에서 특허를 실시하는 것이나 다름 없음에도 불구하고 속지주의 원칙의 형식적 적용을 앞세워 특허권을 우회 · 잠탈하는 행위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최근 법원은 선택발명의 진보성을 인정한 엘리퀴스 사건, 존속기간이 연장된 특허권의 효력 범위를 넓게 인정한 베시케어 사건 등 제약 분야 특허분쟁에서 특허권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다. 신약은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이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제약 특허권을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번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로 제약 특허권에 대한 실질적 보호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장현진 변호사 · 오승현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hyunjin.chang@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