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이긴 하지만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 이후 거듭돼 온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 부장판사)는 2월 5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2020고합718, 920).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먼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이라는 검찰 기소의 전제사실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사건 합병)이 승계작업이라는 유일한 목적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증거나 사실관계에 의하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 또한 합병의 목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및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이나 의사가 도외시된 바 없고, 오히려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 및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합병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되었다고 하더라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삼성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이 'M사 합병 추진안' 등을 검토하고 양사 합병TF 등과 협의하고 업무지원을 했으나, 삼성그룹 내에서 그나마 합병 업무를 접해본 미래전략실 자금팀이 삼성증권 IB본부의 도움을 받아 실무적 차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한다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 그룹계열사인 양사의 합병으로 인해 그룹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합병의 대략적인 절차 등을 검토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합병의 목적 · 경과 및 비율 · 시점이 부당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검사는 2015. 5. 26. 이사회 직후 공시 · 공표를 통해 합병에 관한 허위 정보(합병의 목적, 경과, 비율, 시점 등을 허위로 설명함)를 유포하였다고 주장하나, 그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공시 · 공표 내용 중 허위가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기 위한 허위 호재로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계획과 용인 개발 계획을 공표했다는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추진 계획은 이 사건 합병 훨씬 이전부터 진지하게 추진되어 왔고 당시 나스닥 상장을 위한 객관적 여건도 갖추었으며, 바이오젠의 상장 전 콜옵션 행사 및 지분 재매입은 상장의 선결조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하여 바이오젠과 협의도 되었으므로, 어느 모로 보더라도 허위 계획을 공표한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용인 개발 계획은 이건희의 지시에 따라 제일모직이 오랫동안 검토 · 추진해 온 계획으로, 사업성 검토를 거치고 자금조달 계획도 마련하여 용인시로부터 관련 인허가를 받고 파크호텔 공사 착수까지 하였고, 이후에도 경영상황 변화로 일부 조정되었으나 계획 자체는 계속 추진되었던 만큼, 이 역시 허위 계획을 공표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업무상 배임)에 대해, "무엇보다 삼성물산 이사는 삼성물산의 사무처리자로서 삼성물산(회사)에 대한 임무를 부담하므로 주주에 대한 임무를 내용으로 하는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병 필요성, 합병비율 등 공소장 기재 개별 임무위배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검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 업무상 배임죄의 손해가 될 수 없고, 달리 '객관적 · 개연적으로 기대되는 이익 상실'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회계연도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회계연도 내지 2014회계연도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회계처리하여 왔는데, 바이오젠이 보유한 권리들은 실질적 권리가 아니거나 회계상 방어권에 불과하므로, 대표이사를 포함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이사회 5인 중 4인에 대한 지명권,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의 52%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2회계연도 내지 2014회계연도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단독으로 지배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엔브렐 바이오시밀러가 유럽 판매승인권고를 받음에 따라 2015회계연도에 바이오젠의 콜옵션이 실질적 권리가 되어 지배력 판단에 반영되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으로 지배한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회계연도 분식회계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관련 증거에 비추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은 피고인 삼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탐색해나갔던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고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 법무법인 해광이 이 회장을 변호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