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쿤밍 · 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lobal Biodiversity Framework, GBF)가 채택됐다. 196개 국가가 전 지구적으로 추진해야 할 생물다양성 실천목표 및 이행계획에 합의한 것이다. GBF는 2030년까지 육지와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훼손된 생태계의 30%를 복원하며,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생물다양성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의 실천목표 23개를 제시했다. 향후 당사국들은 GBF를 반영한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2024년까지 제출하고, GBF의 이행실적을 정리한 국가보고서를 2026년과 2029년에 제출해야 한다. 국가생물다양성전략과 국가보고서에는 통일된 지표를 사용하기로 했다. GBF의 이행경과를 정량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체계까지 마련한 것이다.
생물다양성 손실과 기업의 리스크
2020년을 전후로 생물다양성 손실에 관한 국제사회의 위기감이 커졌다.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는 2019년 약 100만 종의 동식물이 수십년 내로 멸종될 위기에 처했고, 인간의 활동으로 육지, 해양, 하천 생태계의 약 75%, 40%, 50%가 심각하게 변형되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엔은 2020년 '글로벌 생물다양성 보고서 5'를 펴내 국제사회가 10년 전에 합의한 20개의 생물다양성 실천목표(Aichi Target) 중 1개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G7은 2021년 'G7 2030 자연협약'을 선언하며 생물다양성 의제를 주류화하는 데 힘썼고, 결국 2022년 GBF라는 역사적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생물다양성의 손실은 기업의 리스크이다. 산림 · 습지 · 물 · 농지 등은 경제적 가치를 발생시키는 자산이다. '환경 자산'(environmental asset)은 우리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량 · 연료 · 약품 등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를 조정하며, 정신적 · 심미적 안정감과 문화적 혜택을 준다. 그리고 인간의 경제활동은 환경 자산이 제공하는 공급 · 조정 · 문화 서비스의 총체인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44조$ 가치 자연에 의존
세계경제포럼(WEF)은 2020년 전세계 GDP의 절반이 넘는 약 44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물다양성이 손실되어 생태계 균형이 훼손되면,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는 기업의 경제적 리스크도 커질 수밖에 없다.
2021년 6월 출범한 '자연-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 TNFD)는 기업이 자연 리스크를 관리하고 공시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시했다. TNFD는 기후-관련 공시 프레임워크인 TCFD의 자연 버전으로, 기업이 의사결정 시 자연을 고려하도록 하여 자본의 흐름을 자연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네이처 포지티브' 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TNFD는 기업이 거버넌스, 전략, 리스크 및 영향 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4가지 분야에서 자연 관련 이슈를 각각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TNFD는 기업의 자연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LEAP'를 제시했다. 자연과의 접점 지역을 설정하고(Locate), 자연에 대한 의존도과 영향을 측정한 후(Evaluate), 사업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하여(Assess), 이에 대응하고 보고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Prepare). LEAP는 기업의 자연 리스크가 특정한 지역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구업체는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목재를 사용하는데, 그 지역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높거나 과도한 벌채로 산림이 훼손되면, 원재료 조달에 차질이 생겨 재무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TNFD는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하에 LEAP 방법론을 통해 자연 리스크를 관리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하여 공개할 것을 기대한다.
생물다양성 공시와 실사
생물다양성 공시는 점차 의무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2024년부터 시행될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하위규정인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에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의무공시 항목에 포함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도 '생물다양성, 생태계 및 생태계 서비스' 공시기준 제정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영국, 싱가포르, 호주 등은 ISSB 기준에 따라 ESG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기업들은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에 관한 거버넌스, 전략, 리스크 관리, 지표 및 목표를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물다양성에 대한 공시는 실사(due diligence)와 연계된다. 유럽연합은 ESRS에서 "기업은 영향, 리스크 및 기회를 식별하고 중대성을 평가하는 절차를 공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ESRS 2, 50). 기업은 ESRS에 따라 자신의 사업장과 공급망에서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식별하고 중대성을 평가하는 절차를 공시해야 하는데(ESRS E4, 17), 이 때 기업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식별 및 평가 절차가 곧 실사이다(ESRS 1. 45). 기업은 유엔이나 OECD가 정한 실사 절차에 따라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의 중대성을 평가하고,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 및 기회의 중대성을 평가한 후 중대성 평가 결과 도출된 생물다양성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유럽연합 의회는 2023년 6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수정안을 채택했다. CSDDD는 기업이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실사를 할 의무를 부여했는데, 이번 수정안은 환경실사의 대상으로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 손실, 생태계 훼손, 산림벌채, 자연자원의 남용 등을 명시했다(Annex I, Part II, 1.).
2023년 6월 개정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도 같은 내용이 담겼다. OECD는 글로벌 생물다양성 목표인 GBF를 언급하면서, 생물다양성 협약에 따른 보호지역에서는 보다 엄격한 실사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부터 산림벌채 규정 시행
2023년 6월부터 유럽연합에서 '산림벌채 규정'(EUDR)이 시행됐다. EU 시장에 커피 · 고무 · 목재 등의 상품이나 파생상품을 제공하는 수출입업자 등은 사전에 모든 공급업체에 대해 실사를 하여 해당 제품이 '산림전용 또는 훼손과 무관'(deforestation-free)함을 증명해야 하고, 실사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은 상품 및 파생상품은 EU에 수출입이 금지된다. 유럽연합은 공급망실사를 통상규제에 활용하여 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산림훼손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기업도 생물다양성에 관한 국제사회의 규제와 시장의 동향을 잘 파악하여 자연 리스크에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민창욱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cwmin@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