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법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하여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해 보겠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명 다음날인 8월 23일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지명 후 처음으로 밝힌 소감이다. 이 후보자는 평소에도 사법부 불신에 대한 우려와 사법의 신뢰 회복, 재판의 발전을 위한 소신을 적극 피력해왔다.
국회 인준을 받아 이 후보자가 차기 대법원장으로 임명되면 사법부의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그의 사법관(司法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글이 있어 소개한다.
법에 관한 사고가 깊고, 많은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이 후보자는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변호사회가 발간한 <계룡법조> 제12호에 기고한 시론, "인문학의 광장에서 법관의 길을 묻는다-Franz Kafka의 미완성 소설 『소송(Der Prozess)』을 읽고서-"에서 법과 재판에 관한 깊이 있는 의견을 밝혔다.
잡지 6쪽의 장문의 글에서, 이 후보자는 카프카의 시선을 빌어 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갈파하고, "최고법원이 정치적으로 부과된 당시의 지배적인 정서에 조응하게 되면 법원조직은 결국 냉정하고 지속적인 숙고를 혐오하는 군중들의 열정을 포함할 수도 있는 그때그때의 선동이나 폭주하는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게 되고, 광기가 질주하더라도 제동을 걸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 후보자는 "국민이 법원에 대하여 진실이 모욕당하고 정의가 살해당하는 아수라장으로 인식하는 사태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면서 사법에 대한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등 사법의 신뢰와 재판의 권위가 무너져 내려 뿌리부터 흔들리는 참담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며 "지금 우리 사법은 신뢰를 잃어가는 심각한 지경에 놓여 있다"고 꼬집었다.
이 후보자는 이 글에서 법원이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경청'과 '공감'을 제시했다. 이 후보자는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라는 홈스(Oliver Wendell Holmes, Jr) 대법관의 말을 소개하며, "소송관계인과 공감하는 것은 그들의 법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반문하고, "법률제도가 가진 결함으로 비록 소송관계인의 법감정을 만족하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법감정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거나 최소화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공정, 충실한 심리, 신속한 재판이 관건"
이 후보자는 "국민과 소통을 통하여 무너진 사법의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비록 멀기는 하지만 조금씩 다가가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길은 있다"며 "사법의 본질적인 영역인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에 기초한 신속한 재판의 실현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 아닐까"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의 구체적인 주문이 이어진다.
"재판절차에서 무엇이 정의에 적합한 해결인지는 결코 법관이 그 법적 권한에 기초하여 일방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송관계인 사이에 법정 변론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고 소송관계인과 법관 사이의 상호작용적인 대화적 논의를 통하여 그 협동작업의 결과로 서서히 확정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판결이 법적으로 정당한지도 그 실질적인 내용이 실정법적 기준과 관련하여 설득력 있는 적절한 이유로 뒷받침되고, 사회 일반의 정의, 형평 감각에 의해서도 공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재판의 절차 과정이 소송관계인의 대등하고 주체적인 참여하에 공정하게 대화하는 논의의 장을 보장하면서 전개되고 법적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하는 절차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재판에서는 당사자에게 그가 말하고 싶은 바를 다 하게 하고, 법관은 이를 충분히 음미하여 공평한 입장에서 숙려한 다음에 판단을 내려야 하며, 그 결정에서는 그러한 판단을 내린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설명해야 한다. 재판은 패소자를 설득하여 승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므로 법관은 언제나 당사자를 설득하여 수긍하게 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당사자를 설득하여 재판에 승복하도록 하는 작업은 법관에게 경청 과정에서는 참을성과 정신적 긴장을 요구하고, 판단과 결정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는 과정에는 머리를 쥐어짜는 노력을 요구하는 힘든 작업이다."
"외관상으로도 중립, 공정해야"
이 후보자는 사법의 정치화 논란과 관련해서도,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구체적인 재판내용의 공정, 재판절차의 적정은 물론 외관상으로도 중립적이고 공정한 법관의 태도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며 "법관은 특정한 정치적이나 가치적인 입장에 지나치게 강하게 관련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하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후보자는 "법관 자신은 공적인 의무로서 적어도 자문자답의 형태로 자신이 가진 판단기준의 객관화에 노력하고, 직무상 독립과 중립성의 외관을 유지하는 요청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사법 철학을 타인의 비판과 검토에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