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화증권 발행의 주관사가 기초자산 등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를 소홀히 했다가 투자자 손해의 50%를 배상하게 되었다. 유동화증권의 설계, 판매를 담당한 주관사에 투자자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의미있는 판결이다.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2018년 5월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인 CERCG캐피탈이 발행하고 CERCG 본사가 지급 보증한 이자율 5.55%, 원금 1억 5,000만 달러의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원금 1,635억원, 만기 2018년 11월 9일인 자산담보부기업어음(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ABCP)을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사모(私募)의 방법으로 발행하고 판매하는 업무를 주관했다.
ABCP 발행 당시 CERCG는 다른 자회사들이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서도 보증을 한 상태였는데, CERCG의 다른 자회사가 발행하고 CERCG가 지급 보증한 3억 5,000만 달러의 별건 회사채가 만기일인 2018년 5월 11일에 원리금 전액이 상환되지 못했다. CERCG가 위 별건 회사채의 지급유예기간(Grace Period)인 5월 25일까지도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CERCG의 수탁은행은 5월 28일, 원금 1,635억원의 ABCP가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는 CERCG캐피탈 발행 회사채에 대한 CERCG의 지급보증채무도 교차부도(Cross Default)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이 ABCP에 투자한 현대차증권이 "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이 ABCP 발행 과정에서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상대로 투자금액 상당인 491억 2,8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김앤장 · 린 vs 세종 · 지평 · 바른 · 해광
서울고법 민사18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1월 13일 "피고들은 ABCP의 발행 과정에서 합리적인 실사 내지 조사를 다하여 원고를 비롯한 ABCP 투자자들에게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투자자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책임을 50% 인정,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연대하여 현대차증권에 245억 6,4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021나2046187). 김앤장과 법무법인 린이 현대차증권을 대리했다. 한화투자증권은 법무법인 세종과 지평이,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바른과 해광이 각각 대리했다.
재판부는 "특수목적법인으로 하여금 자산유동화의 대상자산(기초자산)을 양수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하게 한 뒤 특수목적법인으로부터 위 유동화증권을 인수하여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등으로 금융시장에 유동화증권을 유통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금융기관(주관사)은 그 과정에서 기초자산 및 기초자산으로부터 유동화증권 보유자에 이르는 현금흐름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를 함으로써 투자자에게 유동화증권의 위험요인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이 그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할 투자자보호의무(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부담하며, 이러한 의무는 유동화증권이 사모의 방법으로 발행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고, "주관사가 위와 같은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위반함으로써 유동화증권을 취득한 투자자가 투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회수하지 못하거나 기대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다면 이는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위 손해는 주관사의 투자자에 대한 실사 내지 조사의무 위반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로서 주관사는 유동화증권의 매수인에게 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은 주관사로서 함께 ABCP의 발행을 전반적,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기초자산 등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를 하지 아니하였고, 그 결과 ABCP의 투자자들은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였으며, 원고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여 손해를 입게 되었으므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에게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피고들은 실사 내지 조사의무를 소홀히 했고, 특히 ABCP의 기초자산인 회사채와 관련하여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피고들은 이에 대해 "해외의 기관투자자들도 CERCG의 단기간 내 디폴트 위험을 예상하지 못하였으므로 설령 피고들이 추가적인 실사 내지 조사를 하였더라도 CERCG의 단기간 내 디폴트 위험을 예상할 수 없었고, 원고는 ABCP의 신용등급, 만기, 이율 등을 확인하고 투자결정을 하였을 뿐이라는 점 등을 이유로 피고들의 투자자보호의무 위반과 원고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①ABCP의 발행 과정에서 CERCG 측에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들이나 불명확성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이 이에 대한 합리적인 수준의 실사 내지 조사를 하지 아니한 결과, ABCP의 투자자들은 투자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할 수 있는 사항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ABCP에 투자하게 되었던 점(ABCP의 투자자들은 주관사였던 피고들을 통하지 않고는 CERCG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②특히 ABCP에 대한 투자판단에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였던 신용평가서들은 피고들의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실사 내지 조사로 인하여 그 신빙성이 제한되는 것들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여 보면, 피고들이 주장하는 사정들만으로는 피고들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 위반과 원고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단절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①원고는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 투자자이므로 충분히 ABCP에 내재된 위험을 파악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이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독자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설령 그러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였더라도 피고들의 담당자들에게 직접 문의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초자산 등에 대한 실사 · 조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도 있었음에도 만연히 피고들이 제공한 정보를 신뢰하여 ABCP를 매수하기에 이르렀던 점, ②특히 이 사건 ABCP는 중국 기업의 회사채를 유동화하여 발행한 증권으로 국내에서 생소한 형태의 금융투자상품이었으므로, 원고는 이를 매입하는 경우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점, ③금융투자상품은 기본적으로 투자원금의 회수 불가능성이라는 투자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사건 ABCP가 지급불능에 이른 것은 그러한 투자위험의 현실화라고 볼 측면도 없지 않은 점 등 원고와 피고들의 지위, 원고의 ABCP에 대한 매매계약의 체결 경위, 피고들의 실사 내지 조사의무 위반의 내용과 정도 등에 비추어 피고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