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이 12월 5일 개최한 2022년 보험실무 세미나가 보험사 및 손해사정사 등 실무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지평의 보험실무 세미나는 지난해 시작되어 이번이 두 번째다. 올 세미나에선 지평 보험팀의 배기완, 김병희, 배성진 변호사가 순서대로 "임원배상책임보험 실무 해설", "전동자전거 사용 고지의무 관련 분쟁조정결정례 해설", "실손의료보험의 쟁점–실손성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플로어의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발표내용을 순서대로 요약, 소개한다.
임원배상책임보험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개인피보험자인 기업의 임직원이 적법한 행위로 제3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거나 형사사건에 연루된 경우 그로 인해 입게 된 손해와 방어비용을 보상해 주는 상품으로, 현대 기업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보험이다. 일정 규모를 갖춘 회사가 보편적으로 가입하는 보험임에도 불구하고, 영문 약관이 사용되고 있고 판례가 많지 않아 약관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보험자에게 약관 설명의무 부과
임원배상책임보험은 경영판단의 법칙, 책임제한 법리, 회사 보상제도 등과 함께 기업 임원의 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 개발, 발전되어 왔다. 일찍이 영미에서 오랜 기간의 검토와 수정, 실험을 거쳐 만들어진 약관을 사용하고 있고, 대표적인 기업보험으로서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사이의 경제력과 교섭력이 대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원은 가계보험과 마찬가지 수준의 약관 설명의무를 보험자에게 부과하여 강력한 편입통제를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분쟁이 약관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문제되는 약관 조항의 보험계약 편입이 부정되는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다 보니, 약관 해석에 관한 법리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여러 가지 버전의 약관이 사용되고 있으나, 대체로 "부당한 행위(wrongful act)를 이유로 보험기간 중 최초로 제기된 클레임(any claim first made)으로 인해 개인피보험자가 법률적 배상책임을 부담함으로써 입게 된 손해"를 담보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부당 행위(wrongful act)', '최초로 제기된(first made)', '클레임(claim)', '손해(loss)', '개인피보험자(the insured person)' 등 담보요건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수의 법률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법, 형사사건도 포함 판결
약관에 따라서는 '클레임(claim)'의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우리 법원은 해당 약관이 정한 클레임에는 임원의 그 직무상 수행한 업무에 따른 부당행위로 인한 형사사건이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6다277200 판결).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법원은 미국의 임원배상책임보험에서 클레임의 사용 용례나 분쟁 사례에 비추어 클레임이 반드시 손해배상청구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과 보험의 가입 목적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이러한 사정을 들어 약관 문언을 확장하는 해석이 정당한지는 의문이 없지 않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은 담보 대상 부당행위의 발생 시점이 아니라 해당 행위로 인해 개인피보험자가 피해자로부터 클레임을 제기당한 시점을 담보 기준으로 삼고 있는 'claimmade-basis 보험'이다. 그렇다 보니 부당행위 시점, 클레임 제기 시점, 클레임 인지 시점 사이에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클레임 제기 이전이라도 해당 클레임을 야기할 수 있는 정황(circumstances)이 인지되는 경우가 있어, 약관은 보험계약자에게 일정 기간 내의 정황통지의무, 클레임 보고의무 등을 부과하고 해당 의무 이행 여부를 담보 조건과 결부시키고 있어, 이를 둘러싼 분쟁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특히 1년 단위로 체결되는 임원배상책임보험의 보험자가 변경되었는데 위와 같은 부당행위의 발생, 정황의 인지, 클레임 제기 등이 장기간에 걸쳐 있을 경우, 해당 보험사고가 어느 보험계약에 의해 담보되어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2020년에 종결된 D사 분식회계 사건 관련 임원배상책임보험 판결례가 위 쟁점에 관한 리딩 케이스이다.
고액의 변호사 선임계약 체결
보험은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데, 임원배상책임보험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보상 한도가 높고 방어비용이 담보되다 보니, 주요 임원이 형사사건에 연루된 경우 임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체결되기 어려웠을 고액의 변호사 선임계약이 체결되어 변호사 보수가 보험자에게 전가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보험으로 담보되는 방어비용은 적정하고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하지만, 보험자가 그러한 요건이 흠결되었음을 증명하여 책임을 면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클레임의 내용이 임원배상책임보험의 담보 대상과 비담보 대상이 혼재되어 있을 경우 실제 지출된 방어비용 중 담보 대상을 어떻게 안분(allocation)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란이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이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이며, 합리적인 선례들의 집적을 통한 법리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전동자전거 사용 고지의무
최근 개인형 이동장치(Personal Mobility) 이용이 대중화되고 그로 인한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또는 그 이후 개인형 이동장치 이용 사실을 보험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최근 조정결정 사례를 소개한다. 위 사례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전동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던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에게 그 이용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후 전동자전거로 자녀를 버스정류장에 데려다주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망한 사안이다. 보험계약자는 보험계약 체결 당시 '오토바이(50cc 미만 포함)' 운전 여부를 묻는 청약서 질문표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분조위는 청약서 질문표와 무관하게 망인이 전동자전거를 이용한 사실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자에게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고지의무의 대상인지 여부는 보험기술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데, 만약 전동자전거를 이용한 사실이 고지되었다면 '이륜자동차 운전 중 상해 미보장 특별약관'이 부가되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고지에 '중대한 과실' 없어
다만, 분조위는 망인이 이용한 전동자전거가 전기자전거와 유사하고 오토바이와는 구별되는 점, 보험설계사가 지적장애가 있고 문맹인 보험계약자에게 오토바이 운전 여부만 물었다는 점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망인에게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지 않은 데 대해 '중대한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그에 따라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았다.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사항'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의 인정 여부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다른 한편,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도 개인형 이동장치를 계속 이용하였다면 계약 후 알릴 의무 또는 위험 변경 · 증가 통지의무 위반도 문제될 수 있는데, 이는 고지의무 위반과 통지의무 위반의 경합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특히 고지의무 위반의 제척기간이 경과하여 보험자가 그에 따른 해지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 논의의 실익이 있다.
이 쟁점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경합을 인정하는 입장(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5. 17. 선고 2017나86240 판결)은 보험계약 체결 이후에도 이륜자동차를 계속 이용하는 경우는 고지의무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보험계약자가 보험가입 이후에도 이륜자동차를 계속 이용하면서 이를 보험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보험자로서는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위험 증대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 빠진 것이고 그러한 상태에서 보험계약자가 이륜자동차를 계속 이용하여 객관적으로 위험이 높아진 결과가 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반면 경합을 부정하는 입장(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2015. 5. 6. 선고 2014가단3284 판결)도 있다. 고지의무와 통지의무가 경합 적용된다고 보면 보험자는 고지의무 위반에 관한 제척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어 그만큼 보험계약자의 지위가 불안해진다는 점을 이유로 한다.
독일법은 선택적 행사 인정
이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으로 정리되어야 하겠지만, 독일 보험계약법의 해석론(Langheid/Wandt/Reusch, 3. Aufl. 2022, VVG § 23 Rn. 128)에 따르면, 보험자는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과 위험변경 · 증가 통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을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고, 보험계약자가 고의로 보험자를 기망하였다면 보험계약을 취소할 수도 있다. 통지의무의 대상인 위험의 변경 · 증가 여부는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전에 보험자에게 답변한 위험 상황을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의 쟁점
실손의료보험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가입할 만큼 대중화된 보험상품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최근 백내장 수술비 관련 보험금 청구금액이 전체 실손보험금의 10%를 초과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하고, 임의 비급여에 해당하는 치료행위가 실손의료보험에 진료비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만연해 있는 등 여러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피보험자가 상해 또는 질병으로 의료기관에 입원 · 통원 치료를 받은 경우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상하는 상품이다. 여기서 '실제 부담'의 의미가 무엇인지가 문제인데, 피보험자 본인이 직접 의료비를 출연하지 않더라도 부모나 지인 등 제3자가 의료비를 부담한 경우라면 당연히 '실제 부담'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여러 문제 상황들이 존재한다.
국가 지원 의료비의 보상 여부
'실제 부담' 요건의 의미는 실손의료보험의 성격론과 관련되어 있다. 2017년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국가유공자의 배우자가 국가로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은 사안에서 지원된 의료비도 보상 대상이라고 결정하면서, 상법이 상해보험 및 질병보험을 손해보험이 아닌 인보험으로 분류하여 생명보험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실손의료보험은 실손보상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손해보험과 성격이 다르다는 논지를 폈다. 이로 인해 초래된 혼란은 최근 법원이 실손의료보험을 '손해보험의 성질을 가진 인보험으로서 실손보상적인 부정액보험'이라고 판시하면서 상당부분 해결되었으나, 여전히 '실제 부담' 요건의 의미가 다투어지는 사례들이 많다. '본인부담 상한제 환급금', '직원복리후생제도에 따른 감면액', '군인 의료비', '지인 할인 의료비' 등의 실손의료보험 담보 여부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본인부담 상한제 환급금'에 대해서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본인부담상한제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요양급여 대상자별로 본인부담 의료비의 상한을 설정하고 본인부담금이 위 상한을 초과할 경우 초과 부분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환급해 주는 제도다. 피보험자는 일단 본인부담금을 부담한 후 초과 부분을 사후 환급받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해당 환급금 부분이 '실제 부담한 의료비'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지는 것이다.
약관 개정으로 보상 대상 제외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의 개정으로 본인부담 환급금은 보상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약관에 명시되었는데, 이러한 개정약관 하에서도 해당 약관 조항이 무효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분쟁이 잇따랐으나 최근 환급금은 담보 대상이 아니라는 항소심 판결에 대한 상고기각 판결이 내려져 분쟁은 일단락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개정 전 약관으로 체결된 보험계약을 둘러싼 분쟁은 여전히 계속 중이며, 법원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본인부담 환급금이 실손의료보험의 보상 대상이라고 판단한 사례에서 법원은 위 제도가 본인부담금 일부 보전의 성격 외에도 소득보전 차원의 현금급여의 성격을 함께 가진다는 점과 약관의 작성자 불이익 해석 원칙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본인부담 상한제는 명백히 국민건강보험 제도의 근거 법률인 국민건강보험법이 '본인부담금 경감'을 직접적 목적으로 마련한 제도이며, 환급된 금액의 범위에서 피보험자는 의료비를 실제로 부담하였다고 볼 여지는 없다. 위 제도가 간접적으로는 소득보전 기능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직접적인 목적은 의료비 부담의 경감에 있으며 '상한 초과금 환급'을 통한 '의료비 부담 해소'를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법원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 지평은 '실손 부담 요건'의 충족 여부가 다투어지는 사안에서는, '제3자가 의료비 중 일부를 부담하도록 한 법령의 내용과 목적 및 수단', '국민건강보험법상 본인부담금과 제3자 지원 사이의 직접성'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실손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손의료보험이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고 일부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전체 보험단체로 전가되는 현재의 부작용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정리=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