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행정조사의 법적 성격과 현장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에 관하여는 많은 논의가 지속돼 왔다. 공정위 조사는 그 법적 성격이 행정조사로서 임의수사이나, 그 실질에 있어서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공정위의 현장조사 과정에서 피조사자 측에서 조사를 거부 · 방해하는 경우 공정거래법 제124조 제1항 제13호, 제125조 제7호 소정의 각 조사방해죄에 해당하여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법이 개정되는 등 그 실효성 확보를 위한 수단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이와 같은 공정위 조사의 법적 성격 때문에, 조사절차에서 피조사자의 절차적 권리 보장 등 절차적 적법성에 관한 논의도 계속 이루어져 왔다. 특히 지난 2020년 12월 29일 법률 제17799호로 전부 개정된 공정거래법에서는 공정위 조사의 적법절차를 강화하고, 조사 권한의 재량을 축소하며, 사건처리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전반적인 법집행 절차의 개선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몇몇 우려를 낳고 있는바, 이 글에서는 공정위 진술조서의 증거능력과 증거력에 관하여 논의해 보기로 한다.
2.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와의 유사성
학계를 비롯해 많은 공정거래 실무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공정거래 소송은 구조적인 측면과 실질적 효과에 있어 형사소송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하는 것과 같이, 공정위는 조사를 하고 있으며, 검사가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공정위도 진술조서를 작성한다(공정거래법 제81조 제5항).
검사가 수사 후 혐의가 있을 경우에 공소장을 작성하는 것처럼, 공정위도 조사 후 피조사자가 위반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심사보고서를 작성한다. 특히 공정위는 행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의결(처분)까지 하고 있는바, 이는 사실상 1심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검사의 공소장 및 공정위의 의결서는 모두 국가 공권력이 투영된 서면에 해당하여, 또 다른 국가기관인 법원에서 진행되는 형사소송 및 공정거래 소송에서 결코 가볍게 취급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형사소송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형벌이 집행되고, 공정거래 소송에서는 처분이 유지될 경우 시정명령과 함께 막대한 과징금 납부명령 등이 집행되는바, 이들은 기업 등에게 형벌 못지 않은 제재가 된다.
3. 공정위 진술조서의 법적 성격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 또는 참고인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등에 관하여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나, 공정거래법령에서는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이나 증명력에 관하여 별다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는 공정위 조사는 기본적으로 행정조사이고, 행정조사는 원칙적으로 임의조사이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의 엄격한 증거능력 등에 관한 규정이나 이론이 공정위 조사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드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정거래 소송은 형사소송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공정거래법은 형사처벌 규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는 행정처분의 대상이지만 때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 신문조서의 경우 그 증거능력 인정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규정하여,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경우 피고인이 진술내용에 관하여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능력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하지만 이에 비해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작성된 진술조서에 기재된 진술내용은 사실상 별다른 제한 없이 증거능력과 증거력이 인정되는 편이다.
공정거래 소송을 해보면, 회사 임직원이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간혹 실상과 다른 진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법원의 소송에서 회사 측에 아주 불리한 증거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10년 이상 오래 지속된 담합 사건은 쟁점과 관련된 사실관계의 양이 많을 수 있는데, 조사를 받는 임직원이 특정 시기의 세부 사항은 잘 알지 못함에도 공정위 조사관의 신문에 의해 회사에 불리한 내용의 진술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즉, 공정위 조사관은 상대적으로 관련 법령과 조사절차의 전문가인 반면, 이러한 조사를 처음으로 받는 임직원은 진술 과정에서 겪게 되는 불안, 초조, 조사자의 태도 등으로 인해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단 피조사자가 진술조서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한 경우에는 추후 종전 진술내용과 다른 사실이 발견되더라도 이를 정정하거나 번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공정거래 소송과 구조가 비슷한 형사소송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에 피고인이 수사기관 작성의 신문조서의 진술내용을 부인하거나 참고인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부동의하면 검사가 참고인을 증인신청하게 되나, 공정거래 소송에서는 이와 반대로 회사 측이 그 임직원의 진술에 오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며, 이 경우 그 임직원에 대한 증인신청을 하더라도 재판부에 따라서는 증인신청에 대한 채택을 거부하거나(공정거래 사건은 때때로 회사 외부의 제3자가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증인적격을 갖춘 자가 회사 임직원 외에 없는 경우에는, 재판부가 임직원에 대한 증인신청을 거부할 경우 사실상 회사의 입증방법이 없을 수 있다), 증인신문이 이루어지더라도 어차피 증인이 회사 임직원이라는 이유로 그 진술을 믿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공정위 소송대리인은 마치 검사와 같이, 회사 측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에서 '증인은 공정위에서 조사 받을 당시 사실대로 진술하고 조사가 끝난 후 진술내용을 다 읽어본 후 제대로 작성되었음을 확인한 후 서명하였지요'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실체적 진실 발견이 형사소송에서 매우 중요한 것처럼, 회사 입장에서는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막대한 과징금 납부명령의 적부 등이 문제되는 공정거래 소송에서도 사실관계의 정확성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공정위 조사 단계에서 작성된 진술조서가 공정거래 소송에서 증거로 제출된 경우 보다 신중하게 증거능력 및 증거력 부여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강상욱, 이언석 변호사(sangwook.kang@kimchang.com, 김앤장 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