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임차인이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주가 기존 임차인에게 '신규 임차인에 재건축 계획을 고지하겠다'고 했더라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차인 A씨는 2017년 3월 건물주 B씨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건물 1층 점포를 임차보증금 8,000만원, 차임 360만원, 임차기간 2017. 5. 25.부터 2019. 5. 24.까지 24개월로 정해 임대차계약을 맺고, B씨가 이 점포에서 운영하던 커피점을 권리금 1억 1,100만원에 양수해 커피점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임대차계약 만료를 앞둔 2019년 1월 B씨로부터 건물을 매수한 C씨가 A씨로부터 '임대차계약 갱신 의사와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 체결 의사를 명확히 해 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받자, A씨에게 '수년 내에 건축물을 신축하고자 기획하고 준비 중이다. 계약갱신을 요구한다면 보증금과 월세를 각 5% 증액하되, 갱신계약 시에 철거와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하겠다. 신규 임차인과의 신규계약 시에도 철거 및 재건축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에 A씨가 2019년 5월 "정당한 사유 없이 신규임차인을 주선해 권리금을 회수하려는 기회를 방해했다"며 C씨를 상대로 1억 1,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소 제기 후 한 달쯤 지나 점포에서 퇴거했으나, C씨에게 실제로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거나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적은 없다.
사건의 쟁점은 재건축계획을 알리겠다고 한 임대인의 행위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법) 10조의4 1항 4호의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상가임대차법 10조의4 1항은 "임대인은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권리금 계약에 따라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4호에서 '그 밖에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인이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와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행위'를 들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피고가 '신규 임차인에게 재건축 예정 사실을 고지하고 신규 임대차계약 체결 시 반영하겠다'고 말한 것은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원고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피고가 상고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8월 11일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2022다202498).
대법원은 먼저 "건물 내구연한 등에 따른 철거 · 재건축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그 계획 · 단계가 구체화되지 않았음에도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에게 짧은 임대 가능기간만 확정적으로 제시 · 고수하는 경우 또는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에게 고지한 내용과 모순되는 정황이 드러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사람과 임대차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철거 · 재건축 계획 및 그 시점을 고지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제4호에서 정한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하고, "임대차계약의 갱신에 관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과 권리금의 회수에 관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3, 제10조의4의 각 규정의 내용 · 취지가 같지 아니한 이상, 후자의 규정이 적용되는 임대인의 고지 내용에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제7호 각 목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점포 등 건물 전체는 원심의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사용승인일로부터 이미 약 45년이 경과되었으며, 피고의 고지 내용은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와 신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 될 경우 '수년 내에 철거 · 재건축 계획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알리겠다'는 기본 입장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사정을 들어 피고가 신규 임차인과의 임대차 가능기간을 짧은 기간으로 특정하여 고지하려는 확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피고가 이 사건 고지를 통해, 원고의 주선으로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와 신규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수년 내에 철거 · 재건축 계획이 있음을 알리고 그와의 협의를 토대로 구체적인 철거 · 재건축 시기 및 이를 전제로 임대차계약의 내용을 확정하려는 탄력적 · 유동적 · 적극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원고가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하더라도 그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피고의 의사가 확정적으로 표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며 "고지 당시 철거 · 재건축 계획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고지가 원고와의 최초 임대차계약 체결 무렵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의 법리상 원고의 임대차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사유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당연히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각 호에서 정한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가 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와 같이 원고가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하더라도 그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피고의 의사가 확정적으로 표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상, 피고의 원고에 대한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원고가 구체적인 인적사항을 제시하면서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피고에게 주선하였음에도 피고가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어야 한다"며 "그런데 원고는 피고에게 실제로 신규 임차인을 주선하거나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에 관한 구체적인 인적사항 등의 정보를 제공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고지 내용은 원고의 요청에 따른 임대차계약의 갱신 또는 신규 임대차계약의 체결에 관하여 피고가 기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다가, 실제로 피고가 D 등과 체결한 신규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이 사건 고지 내용에 따른 건물 전체의 철거 · 재건축 계획 및 공사시점 · 소요기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상, 고지 내용과 모순되는 정황이 드러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며 "그럼에도 고지 내용이 신규 임차인이 되려는 자를 주선하더라도 그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정적으로 표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한 다음, 이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1항 단서 제7호 가목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라고 판단한 원심에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제1항에서 정한 '권리금 회수 방해행위'의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피고는 2019년 7월 D 등에게 이 점포를 임대한 후 최종적으로 건물 전체를 임대차기간 36개월로 정하여 임대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