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산업부 초대 통상분쟁대응과장 공모에 지원해 임용된 정하늘(42) 외국변호사는 첫 출근하던 날의 기억을 지금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처음 출근한 세종시 산업부 청사의 정 변호사 책상에 그날 저녁 제네바로 떠나는 비행기표가 놓여 있었던 것.
정 변호사는, 지금은 고인이 된 이용환 당시 담당국장이 "임관 인사 다닐 시간에 연말에 상소심 구두심리가 벌어질 제네바에 미리 가봐라. 현장에 가서 일주일간 집중해서 수산물 1심 판정을 뒤집을 논리를 고민해봐. 그게 너가 여기 온 이유다"라고 제네바행을 채근하며 의욕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변호사는 "1심에서 우리 정부가 패소한 한-일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은 담당과장으로 갓 부임한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였다"며 "다행히 이듬해 4월 상소심 판정에서 1심 판정을 뒤엎고 우리 정부가 사실상 승소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고 말했다. WTO 상소기구는 2019년 4월 11일, 1심 당시 일본 측이 제기한 4개 쟁점(차별성 · 무역제한성 · 투명성 · 검사절차) 중 일부 절차적 쟁점(투명성 중 공표의무)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쟁점에서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고 한국 정부의 수입규제조치가 WTO 협정에 합치한다고 판정했다.
정 변호사는 이외에도 한국이 당사국이 된 40건의 WTO 분쟁 중 11건을 담당과장으로서 실무를 수행한 주인공으로, 미국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문제 삼은 한-미 세탁기 분쟁에서도 지난 2월 WTO로부터 위법 판정을 받아냈다. 우리 정부는 정 변호사가 통상분쟁대응과장으로 부임한 지 한달 후인 2018년 5월 미국이 수입 세탁기에 대해 부과한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했다.
그런 정 변호사가 만 4년 2개월의 통상분쟁대응과장 근무를 마치고 '독립 중재인(independent arbitrator)'으로 데뷔한다. 정 변호사는 "공직에 진출하기 전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사건의 중재인을 맡아달라는 요청 등을 받은 적이 있는데, WTO 분쟁 등 그동안 익힌 많은 분쟁 케이스 경험을 토대로 독립 중재인으로 활동하려고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했다. 정 변호사는 대한상사중재원(KCAB)과 말레이시아에 있는 AIAC, 러시아와 태국, 우쿠라이나 중재센터, CIADR 등 여러 국제중재기관에 중재인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산업부 근무 당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되는 투자자중재(ISDS) 대응 태스크포스의 일원으로도 참여했다.
정 변호사가 독립 중재인으로 활동하기로 하자 많은 중재변호사들이 그의 뛰어난 역량에 공감하며 기대를 나타냈다. 정 변호사가 산업부 과장으로 임용되기 전 법무법인 세종에서 같이 근무하기도 한 전재민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정 변호사는 무역분쟁의 최고 전문가"라며 "그 점이 5년 전 산업부가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법무법인 피터앤김의 한민오 변호사도 "그는 국제통상법과 중재실무에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며 "날카로운 리걸 마인드와 디테일에 강한 그가 국제중재인으로서 많은 선택을 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한일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 상소심의 구두심리에 참석했던 박지은 영사도 "제네바에서 고독한 검투사처럼 일본을 상대하던 멋진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정 변호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어려서 교환교수로 미국에 체재한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한 정 변호사는 한국에서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뉴욕주립대를 거쳐 일리노이대 로스쿨(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College of Law) JD 과정을 마치고 워싱턴 DC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으로 임용되기 전 법무법인 세종에서 10년간 외국변호사로 근무했으며, 청해부대 법무참모로 군복무를 마쳤다. 정 변호사는 최근 국제법질서연구소(System for International Law and Order L.L.C., SiLO)를 설립, 연구업무를 함께 수행한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