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1층을 임차해 식당을 운영하다가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뒤 이를 모르는 건물주에게서 보증금을 받아 사용했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6월 23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17도3829)에서 이같이 판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양도 사실을 알리지 않고 채권을 추심해 받은 금전을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본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A씨는 2013년 4월 1일경부터 2014년 4월 1일경까지 인천 남구에 있는 건물 1층을 보증금 2,000만원, 월세 100만원에 임차해 식당을 운영했다. A씨는 계약 종료 전인 2013년 11∼12월경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B씨에게 식당을 넘기며 임차보증금반환채권도 함께 양도했으나 식당의 건물주인 임대인에게 채권양도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 A씨는 2014년 3월 31일경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 2,000만원 중 연체된 월세, 관리비 등을 공제한 1,146만원을 송금받아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가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종래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금전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을 위하여 이를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채권양도인이 그 금전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횡령죄에서 재물의 타인성과 관련하여 대법원 판례가 유지해 온 형법상 금전 소유권 개념에 관한 법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채권양도인이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은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채권양도인이 채권양수인에게 대항요건을 갖추어주는 등 채권양도와 관련하여 부담하는 의무는 일반적인 권리이전계약에 따른 양수인에 대한 급부의무(채무)에 지나지 않아, 이를 불이행한 것은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와 달리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기 전에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롯한 같은 취지의 대법원 판결들을 모두 변경하기로 했다.
반면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종래 판례를 변경할 경우 횡령죄에 관한 선례들과 비교하여 형사처벌의 공백과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피고인에게 횡령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그 계약의 전형적 · 본질적 내용이 아니라면, 그러한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최근 횡령 · 배임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흐름을 반영하여, 채권양도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태도를 강화하는 입장을 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