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대응해 '비우호국가'의 특허보호를 하지 않는 조치를 시행하는 바람에 특허침해 피해를 봤다면 러시아와 무관한 중재재판소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유준하 외국변호사(러시아)는 6월 16일 바른 주최로 열린 '한-러 비즈니스 가능성 모색 및 사업 리스크 관리' 세미나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러시아 투자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들에게 이렇게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서방의 제재국면에서 불거진 특허 이슈는 향후 국제분쟁에서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변호사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3월 연방정부 결의를 통해 "러시아의 법인과 개인에 대해 비우호적인 조치를 취하는 해외국가와 관련된 특허권자(특허권자가 해당 국가 시민권을 보유한 경우 등록지, 주요 사업활동 장소 또는 활동으로 인해 얻는 주요 이익의 장소를 포함)에 대한 배상액은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발명, 실용신안 또는 산업디자인을 사용할 권리를 행사한 자가 관련 발명, 실용신안 또는 산업모델의 생산, 제품의 판매, 작업의 수행, 생산을 위한 서비스 제공, 작업 및 제공으로 인해 얻은 실제 수익의 0%로 한다"는 조문을 추가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48개국을 대상으로 비우호국 관련 특허 권리자에 대한 강제실시 보장을 없앤 것으로, 러시아 정부는 또 지정 상품군(현재 미정)에 대한 상표권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을 올 12월 31일까지 보호에서 제외한다는 입법수정을 추가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보유한 러시아내 유효특허는 3,951개, 등록상표는 819개에 달한다.
유 변호사는 그러나 "이는 특허침해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규정한 파리협약 제5조와 '무역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 위반되는 만큼 특허침해를 당한 기업은 한-러 투자보장협정(BIT) 관련 조항에 근거해 러시아와 무관한 재판소에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유 변호사는 또 국제물품매매계약에 관한 유엔협약(CISG)을 통한 권리구제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러시아도 이 협약의 당사자인 만큼 계약해제 등 분쟁이 발생할 경우 국제적 통용규칙과 준거법에 근거해 계약서를 기준으로 손해배상 여부를 판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러 투자보장협정 제1조는 '투자'의 대상으로 "저작권, 상표권, 특허, 산업디자인, 기술공정, 노하우, 영업비밀 및 상호권 등을 포함한 지식재산권과 영업권을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 변호사는 국제중재 판결의 인정 여부에 대해, "러시아 상사절차법(제241조 및 242조)에서 보장하는 만큼 집행력이 있다"고 말했다. 해당 조항은 ▲상사분쟁 관련 외국 중재판정은 국제조약에 따라 인정되는 경우 러시아 상사법원에 의해 집행 ▲러시아 내 동일 판결이 존재하거나 중재판정 집행기간이 만료된 경우 등을 제외하고 국제협약에 따라 진행 ▲러시아 법원에 판결문이 이관될 경우 외국어 번역 공증 및 아포스티유 필수 ▲제재대상자와의 소송의 경우 제재대상자가 러시아 법원에 소를 제기하지 않고 국제중재원의 소송금지명령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 국제중재원에서 소송심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외국법원 및 국제중재원의 판결을 승인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제재대상 제과기업 정상적 기업활동
유 변호사에 따르면, 제재대상이 아닌 오리온, 팔도, 롯데 등의 제과기업은 러시아에서 정상적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러시아와의 해상 및 항공물류가 실무적으로 가능한 만큼 미국이나 유럽의 제재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라면 현재에도 러시아와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물류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을 경유하는 제3국 교역을 통해 통관서류 이슈를 해결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대금 지불 등 외환거래는 제재에 포함되지 않은 Primsotsbank 같은 은행을 통해 가능한데, 거래시 제재대상자에 포함되어 있는 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한국의 경우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가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은행의 L/C 발행 및 통관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세미나에서 국민대 유라시아학과의 이상준 교수는 러시아의 재정상황은 견고한 편이며, 디폴트 가능성도 크지 않은 만큼 냉철한 진단과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만큼 에너지와 식량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기회로 삼는 전략적 판단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으로, 이 교수는 러시아 정부와 국민을 구분하는 협력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했다. 러시아 문학, 예술분야 교류를 통해 관계를 지속하는 한편 양국 대학생 및 청년세대간 인적 교류를 확대하는 등 '조용한 교류'를 통해 훗날을 도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한 러시아연방 명예총영사인 법무법인 바른의 정헌 고문은 세미나 총평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거래장애 해결을 위해 법률적 판단과 병행해 현지 사정에 정통한 네트워크를 통한 정무적 자문이 유효할 수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전쟁으로 러시아와의 거래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기회요소도 있는 만큼 냉정하게 사태 추이를 보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바른은 모스크바 소재 러시아 로펌들과 협력관계를 맺고 의뢰인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리걸타임즈 이은재 기자(eunjae@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