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BOTOX)'는 글로벌 제약회사 Allergan Inc.(이하, '알레간')가 개발한 주름 치료 등에 사용되는 주사제의 상표명이다. 보툴리눔 독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이 주사제는 최초에 안검경련 등 근긴장 이상 치료에 사용될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보툴리눔 독소가 주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용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보톡스'는 피부 미용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국내외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고, 여러 경쟁사들의 주사제 제품 개발, 출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툴리눔 독소 주사제의 대명사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쟁사들 제품으로는 디스포트, 메디톡신, 이노톡스, 코어톡스, 제오민, 나보타 등이 있다.
각종 모방 상표의 등장
우리나라에서는 1990. 12. 말부터 약사법 등에 의해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가 전면 금지되어 있고, 전문의약품 광고 금지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 집행되고 있다. 이러한 법적 제한에 따라 알레간은 '보톡스' 제품을 적극적으로 광고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보톡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많은 모방 상표들이 등장하였고, 이는 특히 전문의약품은 아니나 기능성 제품을 표방하는 코슈메디컬('cosmetic+medical'을 의미하는 신조어) 화장품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이들 코슈메디컬 화장품 회사들은 '보톡스'가 연상되거나 이와 유사한 갖가지 상표들을 자사의 화장품의 제품명으로 네이밍하거나 "바르는 보톡스"와 같이 광고하는 등 '보톡스'의 명성에 편승하기 위한 전략을 펴갔다.
알레간은 이처럼 '보톡스'를 연상시켜 출처의 오인, 혼동 가능성이 있거나 '보톡스'의 명성에 부당하게 편승하는 행위를 하는 업체들에 대하여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바탕으로 경고장 발송, 각종 이의신청, 심판 및 소송 등을 진행하여 자신의 권리를 지켜왔다. 알레간은 또한 자사의 상표를 적극적으로 광고할 수 없는 법적 한계 속에서도, 병원에 홍보물 배부, 언론사 공고문 게재, '보톡스'가 보통명사인 것처럼 잘못 등재된 '보톡스'에 관한 온라인 사전 내용 수정 요청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보톡스'가 알레간의 상표임을 알리며 '보톡스' 상표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
'보톡스 vs 보노톡스'
이번에 소개하는 사례(특허법원 2021. 2. 4. 선고 2020허6088/2020허6071 판결,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1후10282/2021후10275 판결) 역시 알레간이 '보톡스'를 연상시키는 화장품 상표에 대하여 그 무효를 구한 사안이다. 알레간은 2019년 특허심판원에 ㈜보노톡스가 화장품 상표로 등록한 영문 "BOTONOX" 및 국문 "보노톡스" 상표들(이하 통칭하여, '보노톡스')에 대하여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11호 내지 제13호를 근거로 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알레간은 '보노톡스'가 주지, 저명한 '보톡스'와 유사하고 양 상표의 지정상품이 '화장품'과 '의약품'으로 밀접한 경제적 연관성도 있으므로 '보노톡스'가 화장품의 상표로 사용될 경우 일반 수요자에게 '보톡스'를 쉽게 연상시켜 출처의 오인, 혼동의 염려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또한 '보노톡스'가 '보톡스'를 부정한 목적으로 모방한 상표라고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특허심판원은 알레간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노톡스'는 수요자들에게 저명한 '보톡스' 상표를 쉽게 연상케하여 출처의 혼동을 일으키게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허심판원 이어 특허법원 승소
㈜보노톡스는 이에 불복하여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보톡스'가 주름 치료용 주사제의 상표로서 널리 알려지다 못해, '아스피린'이나 '불닭'과 같은 상표처럼 해당 상품 분야에서 보통명칭화 되었으며, 이에 따라 알레간은 식별력을 상실한 '보톡스'에 대하여 독점권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즉, '보노톡스'는 식별력이 없는 '보톡스'와의 관계에서 일반 수요자들로 하여금 상품의 출처에 오인,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없으므로 그 등록을 무효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보노톡스의 논리였다. 그러나 특허법원 역시 '보톡스'의 저명성을 인정하고 양 상표의 혼동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특허심판원과 마찬가지로 알레간의 손을 들어주었다.
저명상표 vs 보통명칭
㈜보노톡스는 상당한 분량의 인터넷 기사, 소비자 및 병원의 블로그와 일반인들이 참여하여 올릴 수 있는 인터넷 사전 및 일부 인터넷 백과사전 자료 등을 제출하면서 '보톡스'가 보통 명칭화 되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맹렬히 주장하였다.
상표의 보통명칭화 여부 판단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일찍이, "상품의 보통명칭이라 함은 상품의 일반적 명칭으로서 그 지정상품을 취급하는 거래계에서 당해 업자와 일반 수요자 사이에 그 상품을 지칭하는 것으로 실제로 사용되고 인식되어 있는 일반적인 명칭, 약칭, 속칭 등으로서 특정인의 업무와 관련된 상품이라고 인식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고(대법원 1997. 10. 10. 선고 97후594 판결, 2002. 11. 26. 선고 2001후2283 판결 등), 이와 같은 상품의 보통명칭은 특정 종류의 상품의 명칭으로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자타상품의 식별력이 없어 특정인에게 이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부당하고 누구라도 자유롭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6876 판결 등)"고 설시하면서도, "어느 상표가 지정상품의 보통명칭화 내지 관용하는 상표가 되었는가의 여부는 그 나라에 있어서 당해 상품의 거래실정에 따라 이를 결정하여야 하고, 상표권자의 이익 및 상표에 화체되어 있는 영업상의 신용에 의한 일반 수요자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를 인정해야 할 만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는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하며(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후414 등), 보통명칭이 되기 위하여서는 단지 일반소비자가 이를 보통명칭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거래계에서 그 명칭이 특정 상품의 일반명칭으로서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실이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대법원 1987. 12. 22. 선고 85후130 판결 등)"고 판시한 바 있다.
알레간은 ㈜보노톡스의 보통명칭화 주장에 대하여, 그동안 선례들에서 법원이 구체적으로 언급한 보통명칭화 여부의 판단 기준들, 즉 "상표권자의 선사용상표 독점 사용 기간, 상표권자의 선사용상표 보호를 위한 노력, 선사용상표를 대체할 명칭이 존재하는지 여부 및 경쟁업체들의 사용 현황, 다른 경쟁업자들에게 상표권자의 선사용상표 사용을 금지하게 하는 것이 해당 경쟁업자들의 시장 진입을 금지하는 결과를 낳게 하여 상표권자에게 시장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게 하고 경쟁을 제한하게 하는 것인지 여부, 상표권자의 이익 희생의 타당성 여부, 선사용상표에 화체되어 있는 영업상 신용에 의한 일반 수요자의 이익 희생의 타당성 여부"와 같은 기준들을 구체적 개별적으로 살펴보면서 해당 기준들을 적용하여 보아도 '보톡스'를 보통명칭화 되었다고 인정할 타당성을 찾을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마사이워킹', '모시메리', '딱풀' 등이 보통명칭화 되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일반 수요자들 또는 일부 언론 보도에서 해당 상표를 보통명칭처럼 사용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보통명칭화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거래업계나 일반 수요자들이 널리 해당 상표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저명에 가까운 정도의 상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한 사건들도 적극 인용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8. 12. 24. 선고 2008나49105 판결, 대법원 1992. 1. 21. 선고 91후882 판결, 특허법원 2001. 3. 8. 선고 99허7568 판결).
공익적 관점도 강조
특히 알레간은 '보톡스'의 상품인 주름 치료용 주사제는 1g만으로도 100만명 이상을 살상할 수 있는 치명적 독소인 보툴리눔균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경독소로서 제조, 판매를 위해서는 반드시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알레간과 경쟁사들 각 주사제 제품들의 투여량, 사용 허가 범위 등이 모두 다름을 설명하면서, 이처럼 치명적인 독소를 주성분으로 하여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직결된 전문의약품의 상표인 '보톡스'의 보통명칭화 여부의 판단은 매우 신중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즉, 상표권자의 사익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공익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도 '보톡스'를 섣불리 주름치료용 주사제의 보통명칭으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을 재판부에 적극 어필했다.
'보톡스'는 알레간의 저명상표
이러한 알레간의 주장에 대해 특허법원은, '보톡스'가 여러 사전에 상표명으로 등재되어 있는 점, 일부 신문기사 등에서 '보톡스'를 보통명칭처럼 사용하였다고 하여 실제 거래계나 일반 소비자들이 '보톡스'를 보통명칭으로 사용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신문들에서는 '보톡스'를 보통명칭처럼 사용하지 아니하고 이를 대신하여 '보툴리눔 톡신', '보툴리눔 톡신 제제' 등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 점, 식품의약품안전처 간행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자료에서 '보톡스'를 상표명으로 표기한 점, 약사법에 따라 전문의약품인 '보톡스' 제품의 광고가 불가능한 국내 의료법의 체계 안에서 '보톡스'의 보통명칭화를 막기 위하여 알레간이 다수의 안내자료, 홍보물 등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해 온 점, '보톡스'와 유사한 상표들에 대해 이의신청, 무효심판, 소송 등을 여러 차례 제기하여 온 점을 모두 인정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보톡스'가 '보노톡스'의 출원 당시 거래계에서 관련 업자나 일반 수요자들 사이에 보통명칭이나 관용 표장으로 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보톡스'의 국내외 매출액, 광고액 및 시장 점유율 등을 더불어 고려해 보면 '보톡스'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저명상표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보노톡스는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 또한 특허법원의 판단을 지지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으며, '보노톡스' 상표 등록은 최종 무효가 되었다.
대법, 보노톡스 상고 기각
본 판결은, '보톡스'의 저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판결로서, '보톡스'를 둘러싸고 오랜 기간 제기되어 온 '보통명칭화' 이슈를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판결이다. 특히 식별력이 강했던 상표도 상표 관리를 잘못하면 언제든 식별력이 없어질 수 있고, 저명상표 역시 상표 보호를 위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함을 재확인해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민정 변호사 · 지민경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minjung.park@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