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가계약금을 받은 후 매수인의 본계약 체결요구를 거절하고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했다면 그것으로 거래는 종결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매수인으로서는 가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으로서는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가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A씨는, 2020년 9월경 이 건물 1층 점포에 대한 임대차 중개를 한 경험이 있는 공인중개사 B씨에게 매도 희망가를 34억원 정도로 하여 건물 매도에 관한 중개를 의뢰했다. 건물관리용역업체인 C사는 향후 회사 사옥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2020년 9월 4일경 공인중개사 D씨에게 연락하여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규모 4~5층, 매매대금 30~40억원 정도의 건물 물색을 의뢰했다. B씨는 A씨의 건물에 대하여 '매매가 35억원, 임대현황 보증금 1억원, 월세 770만원'으로 된 매물 정보를 부동산 거래사이트에 올렸고, 이 매물 정보를 접하게 된 D씨는 C사에 휴대전화로 이 매물 정보를 전달했다.
B씨가 9월 10일 매물 정보에 기재한 35억원을 기초로 매수인측 중개인인 D씨와 가격협상을 해 잠정적으로 '매매대금은 34억 7,000만원, 계약금은 3억원으로 하고 당일 계약금 일부 입금하고 남은 금액은 계약시 입금, 1차 중도금 2억 7,000만원 2020. 10. 8. 입금, 잔금 29억 2020. 10. 30. 지급한다'는 매매조건에 합의했고, A씨와 C사도 이에 동의했다. C사는 같은 날 계약금의 일부금으로 1억원을 A씨에게 송금했다. 그러나 A씨는 이틀 후인 9월 12일 B씨에게 전화를 걸어 '건물을 매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하며, B씨가 위약금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1억원에 1억원을 더 주고 해약하겠다'고 이야기한 뒤, B씨로부터 전달받은 C사의 계좌로 2억원을 송금했다. A씨는 이후 C사를 상대로 "매매계약과 관련하여 매수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계약금액, 중도금, 잔금, 임대차의 처리 문제 등 계약의 중요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사실도 없다"며 "따라서 매매계약은 성립되지 않아 부존재하므로, C사에 지급한 2억원 중 C사가 지급했던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1억원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라"는 소송(2020가단5257671)을 냈다. 이에 C사도 "계약금의 일부로 1억원을 지급하였으므로, 매매계약은 당사자의 합의로 유효하게 성립되었다"며 A씨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액 2억 3,000만원에서 1억원을 뺀 1억 3,0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하라는 맞소송(2021가단5046267)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김상근 판사는 11월 23일 "매매계약이 부존재한다거나 원고와 피고 사이에 아무런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원고의 본소청구를 기각했다.
김 판사는 "원고와 피고는 서로 상대방의 인적사항을 모르고 있었지만, 각자의 공인중개사를 통하여 부동산 매매조건에 관한 진행상황을 보고 받아 매매조건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매매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매매대금 총액에 대하여는 각자의 중개인을 통하여 최종적 · 확정적인 의사합치에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이 사건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한 1억원은 해약금 또는 위약금으로서의 성질을 가진 가계약금으로서 위 금원의 지급으로써 가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원고와 피고 사이에 '원고가 지급받은 1억원의 배액을 상환함으로써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으로 하는 의사의 합치가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A씨가 B씨에게 가계약금의 배액인 2억원을 지급함으로써 거래는 종결되었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이에 앞서 가계약금의 법적 성질과 관련, "가계약의 효력에 대한 문제는 가계약에 관한 당사자들의 의사합치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관한 해석의 문제라 할 수 있는데, 편의상 거래에서 가계약이 빈번하게 발생되는 매매계약을 대상으로 상정할 경우 당사자들이 가계약에 이른 경위, 수수되는 가계약금의 액수와 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 계약의 중요 사항에 대하여 협의되거나 의사합치에 이른 내용 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가계약금이 해약금 또는 위약금으로서의 성질을 갖는 경우, 이는 가계약을 통하여 매수인에게 다른 사람에 우선하여 본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우선적 협상권을 부여하고, 매도인은 이를 수인하여야 하는 법적구속력을 부여하는 데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와 같은 가계약에 있어서는 본계약을 체결할지 여부를 결정할 기간은 비교적 단기간으로 정해지고, 매수인은 그 기간 내에 본계약의 체결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와 같은 특성상, 매도인은 매수인의 본계약 체결 요구에 구속되므로 합리적인 이유도 없으면서 아무런 부담도 없이 매수인의 본계약 체결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고, 이러한 경우 매도인은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나서야 비로소 가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 반면 매수인은 매매계약 협상 및 체결요구권을 가지는 대신 매수인이 매매계약의 체결을 포기하는 경우 매수인은 가계약금의 반환청구권 역시 포기하여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이는 매수인에게 계약체결을 위한 요구권을 부여함으로써 매도인이 부담하는 법률적인 지위의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와 같은 성질의 가계약에서 매수인으로서는 가계약금을 포기하고, 매도인으로서는 가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고 가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피고의 반소청구에 대해, "원고와 피고 사이에 부동산 매매에 관하여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부동산에 관한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고, 피고가 지급한 1억원도 부동산 매매계약의 계약금 일부로 지급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그렇다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부동산 매매계약이 체결되었음을 전제로 한 피고의 반소청구는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