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계정으로 잘못 이체된 다른 사람의 비트코인을 사용했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2월 16일 자신의 계정으로 잘못 이체된 다른 사람의 199.999비트코인을 사용했다가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2020도9789)에서 이같이 판시, 징역 1년 6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민후가 A씨를 변호했다.
14억 8,700여만원어치 다른 계정으로 옮겨
A씨는 2018년 6월 20일경 알 수 없는 경위로 자신의 가상화폐 계정에 이체된 그리스인 소유의 199.999비트코인(BTC) 중 14억 8,700여만원 상당의 199.994비트코인을 자신의 2개의 다른 계정으로 옮긴 뒤 그중 일부를 환전해 생활비와 유흥비, 대출금 변제, 가상화폐 매매대금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은 이체받은 비트코인을 신의칙에 근거하여 소유자에게 반환하기 위해 그대로 보관하는 등 피해자의 재산을 보호하고 관리할 임무를 부담하므로 배임죄의 주체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인정하자 A씨가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 시스템의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가상자산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가상자산을 이체받은 자는 가상자산의 권리자 등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는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고 이러한 사정만으로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사람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고 피고인은 어떠한 경위로 비트코인을 이체 받은 것인지 불분명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는 주체가 피해자인지 아니면 거래소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직접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사람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같이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경우에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신임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가상자산은 국가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블록체인 등 암호화된 분산원장에 의하여 부여된 경제적인 가치가 디지털로 표상된 정보로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나, 가상자산은 보관되었던 전자지갑의 주소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고, 거래 내역이 분산 기록되어 있어 다른 계좌로 보낼 때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자산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은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고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하면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 · 처분한 경우 이를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착오송금 시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판례(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참조)를 유추하여 신의칙을 근거로 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지적하고, "비트코인이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피해자로부터 피고인 명의의 전자지갑으로 이체되었더라도 피고인이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이상, 피고인을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