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이 6월 10일부터 매주 목요일 총 10회 예정으로 '광장 공정거래그룹 웨비나 시리즈'를 개최하고 있다. 공정거래제도 도입 40주년을 맞아 많은 변화가 진행, 예상되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주요 이슈를 점검,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 7월 8일엔 "공정거래 민사소송"을 주제로, 7월 15일엔 "공정거래 관련 검찰수사 동향 및 대응"을 주제로 웨비나가 진행되었다. 해당 발표내용을 차례대로 요약, 소개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 집행수단은 행정적 수단(시정명령 · 과징금 등 행정처분) 및 형사적 수단(징역 · 벌금 등 형사처벌) 등 공적 집행수단에 주로 의존하여 왔다. 그러나 공정거래 사건의 증가 추세 등을 고려할 때 경쟁당국의 행정적 수단 및 형사적 수단만으로는 위 사건들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어렵다는 비판, 공적 집행을 통해 위반행위자에 대한 징벌이 가능할 수는 있어도 피해자가 입은 손해가 직접적으로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비판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민사적 구제수단 중 하나인 손해배상소송을 더욱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었으며, 실제로 장차 공정거래 손해배상소송이 다음과 같은 4가지 측면에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한 손해액 인정 제도
우선 현행 공정거래법 제57조에 의하면,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된 것은 인정되나, 그 손해액을 입증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해당 사실의 성질상 극히 곤란한 경우에는, 법원이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기초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은 손해가 발생하였음에도 손해액 인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가 기각되는 부당함을 완화하기 위하여 2004년 개정 공정거래법에서 도입된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실제 재판에서는 그동안 자주 활용되지는 않았고, 법원은 원고가 계량경제학적 분석방법에 따른 감정을 통해 손해액을 확실하게 입증한 경우에만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계량경제학적 방법에 한하지 않아
그런데 최근 경질유 담합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 2016. 11. 24. 선고 2014다81511 판결은 "원고들이 나름의 가상경쟁가격 또는 초과가격 산정 방법만을 주장하면서 상당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가상 경쟁가격 또는 초과가격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면, 원심으로서는 원고들에게 적극적으로 석명권을 행사하여 그러한 가상 경쟁가격 또는 초과가격에 관한 증명을 촉구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직권으로라도 상당한 가상 경쟁가격이나 초과가격을 심리 · 판단하였어야 한다"고 하면서 "상당한 가상 경쟁가격을 산정하는 방법으로는 계량경제학적 방법에 한하지 않고, 합리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한, 담합으로 인한 초과가격에 대한 통계자료, 유사사건에서 인정된 손해액의 규모, 사업자가 위반행위로 취득한 이익의 규모 등을 고려하여 산정하는 방법, 담합기간 중에 담합에 가담하지 않은 정유사들의 공급가격과 담합 피고들의 공급가격을 비교하여 산정하는 방법, 국내 경유 소매가격이 MOPS 가격에 연동된다면 원고 측 보고서의 산정 결과에 일정한 조정을 하는 방법 등이 고려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 이후 하급심에서도 반드시 계량경제학적 분석방법에 의하여 가상 경쟁가격 및 손해액을 산정하지 않고, 당사자 간 협의를 거쳐 손해액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산정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향후 공정거래법 제57조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경우, 피해자의 손해액 입증 부담이 상당히 경감될 수 있으므로, 손해배상소송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 공정거래법 제56조 제4항이 시행됨에 따라 2019. 9. 19. 이후 최초로 발생하는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위반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실손해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2019. 9. 19. 이후 최초로 발생하는 위반행위가 적발된 사례가 많지 않고, 3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배 손배 청구 활성화 예상
그러나 장차 대부분의 공정거래 손해배상소송은 3배 손해배상을 구하는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며(실제로 하도급법과 관련하여서는 2013. 5. 28.부터 3배 손해배상 제도가 시행되었고, 이후로 다수의 3배 손해배상 소송들이 제기되었다), 이 경우 실제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서 더 나아가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피해자들이 더욱 활발하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공정거래 손해배상소송에서는 피해자는 민사소송법상의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위반행위자가 가지는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반행위자가 해당 문서가 영업비밀에 속하는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는 이유로 문서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 등 민사소송법상의 문서제출명령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21. 12. 30.부터 시행되는 개정 공정거래법에서는 자료제출명령제가 도입되었다(제111조). 이에 의하면, 담합 및 불공정거래행위(부당한 지원행위 제외)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은 위반행위자에게 손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의 산정에 필요한 자료(자진신고와 관련된 자료는 제외됨)를 제출하라고 명할 수 있다. 이 때 손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의 산정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소지자가 해당 자료의 제출을 거절할 수 없다.
법원은 당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제출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자료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예를 들어 계약서에 기재된 당사자, 거래내역에 관한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고, 특히 자료의 제출을 신청한 당사자가 자료의 기재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주장하기에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고 자료로 증명할 사실을 다른 증거로 증명하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경우에는 그 당사자가 자료의 기재로 증명하려는 사실에 관한 주장(예를 들어 구체적인 손해액에 관한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피해자 증거수집도 용이해져
위와 같은 자료제출명령제 시행에 따라 피해자의 증거수집이 보다 용이해짐에 따라 손해배상소송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끝으로 현재 집단소송제 도입에 관한 입법 논의를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공정거래 분야에서 집단소송이 시행되지 아니하여, 일반 소비자(피해자)들이 승소 가능성도 불확실하고, 설사 소송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배상받을 수 있는 손해의 액수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스스로 오랜 시간을 들이고 거액의 소송비용을 지출해가면서까지 위반행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예를 들어 담합)로 인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의 숫자가 수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을 수 있고, 기업에 비하여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높으므로, 현재 증권 분야에만 도입되어 있는 집단소송제도를 공정거래 분야에도 도입하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실제로 법무부는 2020. 9. 28. 집단소송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으며, 현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다수의 집단소송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수의 집단소송법안 국회 계류 중
그동안 공정거래 분야 집단소송 관련 입법 논의는 이번 21대 국회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가 무산된 바 있다. 이번 21대 국회 초반에는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얻어 공정거래 분야 집단소송법안이 곧 통과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나, 현재로서는 여당이 2021년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 패배하였고,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인 등 국회에서의 입법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불명확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과연 공정거래 분야 집단소송제가 도입될 것인지 여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었을 때 opt in 방식(참가신청형 방식)이 될 것인지, 아니면 opt out 방식(제외신고형 방식)이 될 것인지 등 그 구체적인 내용이 확실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만약 집단소송제가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될 경우에는 손해배상소송이 매우 활발하게 제기되고, 공정거래법 사적 집행에도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현행 공정거래법 제57조 상의 손해액 인정 제도의 활성화, 2019. 9. 19.부터 시행된 3배 손해배상 제도, 2021. 12. 30.부터 시행되는 자료제출명령제, 현재 입법 논의 중인 집단소송제는 공정거래 손해배상소송을 활성화하고, 현재 공적 집행에 집중된 우리나라 공정거래 실무에도 매우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에 해당하므로, 향후 이와 관련된 실무 동향 및 입법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병기 변호사(법무법인 광장, byongki.chung@leek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