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용역업체를 바꿔가며 대한석탄공사 광업소에서 7년 넘게 일해온 근로자가 선탄작업 중 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3개월 넘게 병원비와 임금을 받으며 출근하지 않다가 다시 출근했으나 다른 용역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한 경우 부당해고로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근로자에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된다는 판결이며, 용역업체에선 '작업 중 다친 부위의 통증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동료 근로자들의 사실확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의사 소견서 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제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6월 3일 선탄관리업체 대표 A씨가 "B씨에 대한 고용승계 거부를 부당해고로 판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노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20두45308)에서 이같이 판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가 피고보조참가했다.
태백시에서 선탄관리업 등을 하는 A씨는 2018년 3월 29일 대한석탄공사의 광업소와 계약기간을 2018년 4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하는 선탄관리작업 용역계약을 맺고, 기존의 다른 용역업체 소속으로 이 광업소에서 근무하던 18명의 근로자들 중 B씨를 제외한 17명과 새롭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이 근로자들이 기존과 동일한 내용의 근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더 이상 선탄작업을 못하게 된 B씨가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를 신청, 강원지노위가 'A씨는 B씨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가 있는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부함으로써 B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인용하였고, A씨가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으나 동일한 이유로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이에 앞서 2009년 10월부터 대한석탄공사의 광업소에서 일해 온 B씨는 2017년 12월 13일 선탄작업 중 손가락 골절상을 입고, 당시 소속 용역업체와 산업재해 발생 신고를 하지 않는 대신 공상으로 처리하고 완치될 때까지 병원비와 임금을 지급받기로 한 후 12월 14일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그 후 B씨는 2018년 3월경 당시 소속 업체로부터 '앞으로 용역업체가 변경될 예정이니 일단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아 2018년 3월 29일과 30일 각 출근하여 근무했다. B씨는 2018년 4월 2일 광업소의 선탄작업장에 출근하였고, A씨 업체의 관리실장이 B씨에게 의사의 소견서 제출을 요구, '일상 직업 복귀에 지장이 없는 상태'라는 내용의 의사 소견서를 제출했다. 관리실장이 이번에는 '다친 손가락에 관해 A씨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달라고 요구, B씨가 이와 같은 내용의 각서와 인감증명서를 제출했으나, A씨가 4월 9일 B씨를 대체할 새로운 근로자를 채용했다. B씨는 4월 11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요양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1심을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B씨는 2009. 10. 1. 대한석탄공사 광업소와 선탄관리작업 용역계약을 체결한 업체에 입사한 후 여러 차례 회사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근로기간의 단절 없이 고용관계의 승계를 인정받아 계속 근무하였고, 특히 B씨는 2015년 A씨의 업체에 고용승계 되어 근무한 적도 있으므로 원고가 B씨와 기존 용역업체 사이의 고용관계를 승계하리라는 정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원고가 B씨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해 정상 업무수행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은 B씨를 부당히 해고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특히 "참가인(B씨)이 2018. 4. 3. 발급받아 A씨 업체에 제출한 의사 소견서에는 '일상 작업 복귀에 지장 없는 상태로 사료됨'이라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는데, A씨 업체 근로자 3인이 작성한 각 사실확인서의 기재는, '참가인이 2018. 3. 29.부터 이틀간 광업소에 출근하였으나 작업 중 다친 부위의 통증으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는 내용"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①위 각 사실확인서에는 일률적인 내용이 부동문자로 인쇄되어 있어 근로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②위 각 사실확인서는 참가인의 구제신청 이후 원고의 부탁에 따라 작성된 것인 점 등에 비추어, 위 각 사실확인서의 기재는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참가인의 부상 회복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주관적 의심만을 바탕으로 참가인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이므로, 거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는 서울고법에 항소하며 "참가인은 광업소와 근로기간을 2018. 1. 1.부터 2018. 3. 31.까지로 정한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광업소 측이 참가인 외의 다른 근로자들과 체결한 계약서에는 사용자가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근로계약이 기간만료로 종료된다고 기재되어 있고, 달리 광업소가 근로자들에게 계약을 갱신하겠다고 확약한 적도 없으므로, 참가인에게는 위 근로계약의 갱신기대권이 없고, 따라서 참가인의 근로관계는 2018. 3. 31. 기간만료로 당연히 종료되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에도 예컨대 단기의 근로계약이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하여 갱신됨으로써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 등 계약서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기간을 정한 목적과 채용 당시 계속근로의사 등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근무기간의 장단 및 갱신 횟수, 동종의 근로계약 체결방식에 관한 관행 그리고 근로자보호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계약서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7. 9. 7. 선고 2005두16901 판결 참조)"고 지적하고, ①참가인을 비롯한 광업소의 근로자들은 2009년경부터 용역업체의 변경과 무관하게 광업소에서 계속 근무하며 여러 차례 근로계약을 갱신하여 왔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그 과정에서 참가인은 유사한 내용의 근로조건으로 근로계약을 계속 체결하여 왔고, 특히 용역업체가 변경되었음에도 이에 관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기도 하였던 점, ③원고 역시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서 '광업소 근로자들의 고용승계를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관행적으로 고용승계를 해왔다'고 진술하였던 점 등을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광업소와 참가인 사이에서 작성된 근로계약서에서 정한 기간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고, 참가인은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인 참가인(B)은 새로운 용역업체인 원고에게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정당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참가인이 고용승계를 요구하였음에도 원고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절한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참가인에게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고, 거기에 고용승계의무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도급업체가 사업장 내 업무의 일부를 기간을 정하여 다른 업체(용역업체)에 위탁하고, 용역업체가 위탁받은 용역업무의 수행을 위해 해당 용역계약의 종료 시점까지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하여 왔는데, 해당 용역업체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새로운 용역업체가 해당 업무를 위탁받아 도급업체와 사이에 용역계약을 체결한 경우, 새로운 용역업체가 종전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하여 새로운 근로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는 그에 따라 새로운 용역업체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전제하고, "이와 같이 근로자에게 고용승계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근로자가 고용승계를 원하였는데도 새로운 용역업체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