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관청이 조세포탈로 기소된 처분사유가 아닌 다른 사유로 당초의 과세처분을 취소한 경우에도 조세채무의 성립을 전제로 한 조세포탈죄는 성립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2월 30일 1,300여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된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상고심(2018도14753)에서 이같이 판시, 회계장부 조작을 통한 법인세 포탈 혐의 중 일부를 무죄로 판단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다만,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일부 위법배당(상법 위반) 혐의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2008~2013년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해 16억여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경가법상 횡령) 등으로 함께 기소된 아들 조현준 회장은 상고가 기각되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김앤장과 법무법인 태평양이 1심부터 조 명예회장과 조현준 회장 등을 변호했다.
대법원은 "조세포탈죄는 납세의무자가 국가에 대하여 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일정액의 조세채무를 포탈한 것을 범죄로 보아 형벌을 과하는 것으로서, 조세포탈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세법이 정한 과세요건이 충족되어 조세채권이 성립하여야만 되는 것이므로, 세법이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납세의무를 지도록 정한 과세요건이 구비되지 않는 한 조세채무가 성립하지 않음은 물론 조세포탈죄도 성립할 여지가 없고, 또한 과세관청이 조세심판원의 결정에 따라 당초 부과처분을 취소하였다면 그 부과처분은 처분 시에 소급하여 효력을 잃게 되어 원칙적으로 그에 따른 납세의무가 없어진다"며 "이러한 법리는 조세포탈로 공소제기된 처분사유가 아닌 다른 사유로 과세관청이 당초 부과처분을 취소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에도 조세채무의 성립을 전제로 한 조세포탈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효성은 2008 사업연도에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 51,496,474,805원과 투자주식처분손실 188,452,000,000원을 손금에 산입하여 약 1,279억원 상당의 결손금이 발생하였음을 전제로 법인세를 0원으로 신고했으나, 과세관청은 2013년 11월 1일 효성에 대하여 위와 같은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와 투자주식처분손실을 포함한 합계 약 2,554억원을 손금불산입하고 2008 사업연도 법인세 과세표준을 약 1,265억원으로 산정하여 2008 사업연도 법인세 25,806,891,260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이 2017년 7월 24일 이러한 과세관청의 효성에 대한 2008 사업연도 법인세 부과처분 중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를 손금불산입한 부분은 적법하지만 투자주식처분손실을 손금불산입한 부분은 위법하므로, 투자주식처분손실을 다시 손금에 산입하라는 취지로 결정하였고, 과세관청이 조세심판원의 위와 같은 결정에 따라 투자주식처분손실 188,452,000,000원을 다시 손금에 산입한 결과,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 51,496,474,805원을 손금불산입하더라도, 투자주식처분손실을 포함한 2008 사업연도의 손금 총액이 같은 사업연도의 익금 총액을 초과함에 따라 결손금이 발생, 효성의 2008 사업연도 법인세 과세표준은 음수가 되고 그에 기초하여 산정한 같은 사업연도 법인세액은 0원이 되어 이러한 이유로 과세관청이 효성에 대한 2008 사업연도 법인세 부과처분 전부를 취소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와 투자주식처분손실을 모두 손금불산입한 당초의 법인세 부과처분만을 고려하여, 피고인 조석래 등이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를 손금에 산입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효성의 2008 사업연도 법인세 128억 7400만원을 포탈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선고, 대법원에서 쟁점이 된 것이다.
대법원은 "과세관청은 조세포탈로 공소제기된 처분사유인 가공 기계장치 감가상각비가 아니라 다른 사유인 투자주식처분손실을 손금산입하여 2008 사업연도의 법인세액을 0원으로 산정한 후 효성에 대한 2008 사업연도 법인세 부과처분 전부를 취소하였으므로, 그 부과처분은 처분 시에 소급하여 효력을 잃게 되어 그에 따른 납세의무가 없어진다"며 "따라서 해당 조세채무의 성립을 전제로 한 효성의 2008 사업연도 법인세에 대한 조세포탈죄도 성립할 수 없으므로, 원심판결 중 유죄로 인정된 피고인 조석래 등에 대한 회계장부 조작을 통한 효성의 2008 사업연도 법인세 포탈 부분은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원심으로서는 효성의 2003, 2004, 2007 사업연도 법인세 포탈 부분에 대하여도 피고인 조석래 등이 주장하는 사유들이 해당 사업연도의 법인세 납세의무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판단한 다음, 조세포탈죄의 성립 여부와 포탈세액의 범위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회사가 해당 사업연도말까지 적립한 자본준비금을 같은 사업연도에 관한 이익배당의 재원으로 삼는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어 허용되지 않고, 따라서 설령 회사의 이사 등이 이익배당 당시 자본준비금이 적립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위법배당죄의 고의를 부정할 수도 없다"며 "효성의 2007 사업연도에 관한 이익배당은 상법 제625조 제3호에서 정한 위법배당에 해당하고, 2007 사업연도말에 적립된 자본준비금은 위와 같은 위법배당 여부를 결정하는 데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고 판시, 2007 사업연도에 대한 위법 배당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과 달리 유죄로 보았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