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한 경우 단순 강간이 아닌 강간상해죄가 성립할까. 강간상해의 경우 강간보다 법정형이 훨씬 높다.
A(여 · 범행 당시 27세)는 과거 연인관계였던 B(42)로부터 '평소 알고 지내던 C(여 · 29) 및 A와 함께 성관계를 하고 싶다. C를 만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2019년 11월 22일 오전 1시 30분쯤 김해시 어방동에 있는 주점에서 C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C에게 "술 깨는 약이다. 언니 먹어"라고 말하면서 미리 준비한, 자신이 처방받아 복용하던 향정신성의약품 성분이 함유된 신경안정제를 숙취해소음료와 함께 건네주어 C로 하여금 마시게 했다. A와 C도 자매처럼 지내온 사이였다. 이어 C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같은 날 오전 2시쯤 C와 함께 모텔로 이동한 뒤 C가 객실에서 약기운에 의해 침대에 누워 의식을 잃자 B에게 연락하여 모텔 객실로 오도록 하여 C를 성폭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와 B는 B가 C를 성폭행하는 모습 등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합동하여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로 하여금 의식을 잃게 하는 등의 상해를 가하였다며 강간 등 상해 혐의로 기소했다.
창원지법 형사4부(재판장 이헌 부장판사)는 8월 20일 성폭력처벌법상 특수준강간상해와 카메라 등 이용촬영,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를 적용, B에게 징역 6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 아동 · 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 각 10년, A에게 징역 3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 아동 · 청소년 관련기관 등과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 각 5년을 선고했다(2020고합34).
B와 변호인은 재판에서 "피해자가 피고인들의 행동이나 말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당시 피해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고,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술에 취해서 잠이 든 것에 불과하고 피고인 A가 건넨 수면제의 영향으로 상해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강간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수면제와 같은 약물을 투약하여 피해자를 일시적으로 수면 또는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게 한 경우에도 약물로 인하여 피해자의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었다면 자연적으로 의식을 회복하거나 외부적으로 드러난 상처가 없더라도 이는 강간치상죄나 강제추행치상죄에서 말하는 상해에 해당하고,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한 후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거나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후, "피해자는 피고인들이 공모한 후 피고인 A가 건넨 약물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거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등 건강상태가 불량하게 변경되고 생활기능에 장애가 초래되는 상해를 입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었거나 부분적으로 기억을 상실하였거나 약간의 의식이 있음에도 소리를 낼 수 없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은 단순한 음주의 영향이 아니라 위 약물들의 영향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의 양형과 관련, "피해자에 대한 중한 범죄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였음에도 피고인 B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범행을 모의하고 실천하였고, 오랫동안 자매처럼 지낸 친분을 범행에 이용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정신적 충격과 배신감을 주었으며, 비정상적인 성행위에 참여하면서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하여 수치심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B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왜곡된 성적 욕망이 이 범행의 주된 원인으로, 연인관계에 있던 피고인 A에게 범행에 가담할 것을 요구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하였고, 술과 약물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심신상실에 이르게 한 후, 피고인 A와 합동하여 피해자를 간음하고 그 장면을 촬영한 일련의 범행 수법이 매우 위험천만하고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