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진행중인 2월 말 중국에서는 '샤오잔 사건' 혹은 '227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터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2월 24일 'MeiLeDiDiDi'라는 인터넷 작가가 시나닷컴의 웨이보에 '하타(下墮)'라는 동인소설의 제12, 13장을 올렸다. 이는 동인소설 사이트인 AO3, LOFTER에도 올라갔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샤오잔과 왕이보(王一博). 고등학생인 왕이보는 잔잔(贊贊)이라는 성매매 여성을 사랑하며 그녀를 샤오잔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런데 13장에서 샤오잔이 실제는 여장남자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일개집백(一個執白)이라는 화가가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소설의 샤오잔은 실제 연예인 샤오잔의 얼굴을 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여장남자 묘사에 분노
샤오잔의 팬들은 이 소설에서 자신들의 우상을 여장남자로 묘사한 것이 모욕이라 느끼고 분노하여, 2월 26일 저녁 18시 05분부터, '음란물로부터 미성년자 보호'를 기치로 내걸고 작자 및 동인소설, 동인소설을싣는 웹사이트 AO3를 비롯한 수십개의 사이트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어떤 사람들은 샤오잔 팬들의 이러한 행위를 이렇게 비유했다. "한 수퍼마켓에서 술을 팔고 있는데, 미성년자들이 술을 사서 마실 수 없게 하기 위하여 그 슈퍼마켓으로 쳐들어가 술이란 술은 모조리 깨트려버렸을 뿐아니라, 가게까지 문 닫게 만들었다."
이들은 또 작자의 신원을 알아내서 그녀가 다니는 대학에 징계를 요구하고, 관련 글을 마구잡이로 신고하고, 정부기관에 무더기로 전화를 걸어 해당 웹사이트를 차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통상적으로 팬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아이돌을 나쁘게 평하는 글에 대하여 악플을 다는 등으로 공격하는 경우는 많지만, 동일한 유형의 글 전부, 혹은 웹사이트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샤오잔의 팬들의 전투력이 너무 강하고 초반의 전투에서 너무 쉽게 승리를 거두다보니 스스로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창작자유' 내걸고 반격
2월 27일, 샤오잔 팬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분노한 동인문화애호가를 비롯한 네티즌들이 '창작자유'를 기치로 내걸고 반샤오잔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스스로 이를 '227 대단결'이라고 불렀다. 이후 쌍방은 인터넷상에서 치고받으며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으나, 2월 28일 17시 09분 LOFTER의 샤오잔 팬 사이트가 반샤오잔 진영에 점령되고, 점점 반샤오잔 진영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월 29일부터 해외사이트인 AO3의 접속이 중국 정부에 의해 정식 차단되자, 보금자리를 잃게 된 동인문화권을 비롯한 반샤오잔 진영은 더욱 분노하여 샤오잔이 출연한 모든 작품들에 최저평점을 주고, 악플을 달고, 샤오잔이 광고모델을 하고 있는 각종 브랜드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반샤오잔 우세에 샤오잔 팬들 사과성명
결국 2월 29일 샤오잔 팬들 중 리더급들이 사과성명을 내고, "우리가 잘못한 것이고 샤오잔은 잘못이 없다. 우리는 미워해도 샤오잔은 미워하지 말라"고 간청하고, 3월 1일에는 샤오잔 측이 공식적으로 사과성명을 내서, "특수한 시기에 시회공공자원을 점용해서 심심한 유감과 사의를 표한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중국내에서 극성 팬문화의 문제점을 부각시켰을 뿐 아니라, 동인소설의 법적 문제도 이슈로 만들었다. 최고인민검찰원의 기관지인 검찰일보는 쑨양의 도핑거부사건에 대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판결 이후 "쑨양의 행위는 '무지(無知)'와 '무시(無視)' 때문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린바 있는데, 샤오잔 사건과 관련해서도 "샤오잔 사건: 시비곡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팬들의 기호에 따라 동인문화를 훼손할 수는 없다" 등 5편의 글을 연이어 실었다. 이것만 보아도 샤오잔 사건이 얼마나 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는지 알 수 있다.
샤오잔 사건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를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샤오잔에 대하여 알아보면, 그는 2019년에 인기를 끈 드라마 '진정령(陳情令)'에 출연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 왕이보는 그 드라마에서 샤오잔과 케미가 맞는 브로맨스 커플로 출연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이 진정령도 '마도조사'라는 인터넷소설의 동인작품이라는 것이다. 샤오페이샤(小飛俠)라 불리는 샤오잔은 팬이 2400만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가장 인기 있는 남자 연예인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2019년 광고모델 중 영향력 4위로 에스티로더, OLAY, 피아제, 멍뉴(우유), 버드와이저, 비달사순, OPPO, 온라인게임 소오강호, Crest칫솔 등의 광고모델인데, 그중 일부는 광고모델이 이미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으며, 새로 찍은 광고는 내보내지도 못하고 있다.
오리지널 동인작품 · 2차 창작 동인작품
동인작품은 일본어의 '도진(同人)'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기존 작품(애니메이션, 드라마, 소설, 영화, 만화 등)의 인물, 배경 등을 이용하여 창작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오리지널 동인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2차 창작 동인작품이다. 전자는 원작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인 것이고, 후자는 원작의 내용과 인물의 기초 위에서 2차 창작을 하는 것이다. 샤오잔 사건에서의 '하타'는 전자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죽지 않고 10년을 더 살았다면'이라는 가정하에서 쓴 삼국지 속편 같은 경우는 후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AO3의 풀네임(full name)은 Archive of Our Own으로 나오미 노빅이라는 판타지소설 여작가가 만든 웹사이트다. 현재 500만편이 넘는 전 세계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동인계의 노아의 방주'라고도 불리는 사이트이다.
이전에 중국에서 동인작품이 법적문제를 일으킨 것은 2번 있었는데, 모두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金庸)과 관련되어 있다.
2004년 주성치의 영화 '쿵푸'에는 김용소설의 주인공과 무공의 이름을 사용했다. 양과(楊過), 소룡녀(小龍女), 신조협려(神雕俠侶), 구양신공(九陽神功), 일양지(一陽指),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등이 사용되었다.
주성치는 스스로 김용에게 판권료를 지급하겠다고 했고, 김용은 웃으면서 "모두 6곳에 사용했으니 하나당 1만 위안으로 계산해서 6만 위안을 자선기구에 내라"고 요구했다. 결국 주성치는 6만 위안을 남아시아 쓰나미재난구호금으로 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동인작품이 원작자에 대하여 대가를 지급한 최초의 케이스가 될 것이다.
2016년에는 장난(江南)이라는 작가가 '차간적소년(此間的少年)'이라는 소설을 내놓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명칭은 김용의 소설 '사조영웅전', '소오강호', '천룡팔부'의 등장인물과 동일했다. 김용은 장난과 출판사의 행위가 그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행위를 했다고 보고 법원에 제소했다.
법원, 부정경쟁행위 성립 인정
법원의 판단은 이러했다. 첫째, 저작권 침해는 성립되지 않는다. 장난의 소설은 명칭은 빌렸지만 내용은 김용소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로운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둘째, 부정경쟁행위는 성립된다고 보고 출판금지와 손해배상을 명했다.
그렇다면, 이번 '하타'의 경우 어떤 법적인 문제가 있을까? 첫째, 성명권, 명예권에 대한 침해가 성립할까? 중국의 법률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성명권과 명예권에 대한 침해를 인정하는 견해도 있고, 성명권에 대하여는 인정하나 명예권에 대하여는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고, 둘 다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으나, 대체로 권리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AO3의 클라우디아 레바자가 '삼련생활주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AO3를 방문하는 유저들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비록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살아있거나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이지만, 그 내용은 허구라는 것을. 이런 작품은 진인소설(RPF, Real Person Fiction)로 분류하며, AO3와 다른 웹사이트에 이런 작품은 수천수만이 있다."
둘째, 상품화권에 대한 침해가 성립할까?
미국에서 인정되는 상품화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허구적인 캐릭터의 상품화권이고, 둘째는 실제 인물의 상품화권이다. 전자는 캐릭터권으로 불리며 문학작품 및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상품화하는 권리를 말한다. 후자는 공개권으로 정계, 연예계의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상업광고에 수권하여 사용하게 하는 권리를 가리킨다.
장난 사건에서 캐릭터권 불인정
그러나 중국 법원은 김용이 장난을 제소한 사건에서 캐릭터권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동인소설 하타가 샤오잔의 상품화권을 침해하였다고 법원에서 인정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부정경쟁행위를 구성할 것인가?
김용이 장난을 제소한 사건에서 비록 저작권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부정경쟁행위는 인정된 바 있다. 그렇다면 하타의 경우에도 부정경쟁행위로 인정될 수 있을까? 하타의 작자는 사업자도 아니고, 양자간에는 경쟁관계도 없다. 부정경쟁행위로 인정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