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 우울증이 악화되어 자살한 경우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4년 6월 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전차대대 화포 정비병으로 복무하던 A씨는 약 1년 뒤인 2015년 5월 24일 혹한기훈련 포상휴가를 나왔다가 부대복귀일인 5월 27일 오전 11시 25분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A씨의 어머니가 경북북부보훈지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을 신청했으나, 'A씨의 사망이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하였다거나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 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자해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대상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처분을 하자 "과도한 신체적 ·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아들의 사망은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며 주위적으로 국가유공자 비해당결정의 취소를, 예비적으로 보훈보상대상자 비해당결정의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월 13일 A씨의 어머니가 경북북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2017두47885)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이담이 원고를 대리했다.
항소심 판결에 따르면, A씨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서 중학교 2학년 때 단체생활 부적응, 대인기피 성향으로 약 1개월 사이에 3회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업문제로 부모와 마찰 후 순간 자살생각을 하였으나 구체적인 계획과 행동을 옮기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A씨는 입대 직후인 2014년 6월 11일 실시된 육군훈련소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정신질환 관련 문제가 시사되므로 정밀진단이 요구되며, 군 복무 중 사고로 인한 조기전역이 예측된다. 사고예측 위험 유형 자살 및 정신장애'라는 판정을 받았으나, 2014년 6월 25일 및 2014년 7월 6일 실시된 육군훈련소 군생활적응 검사에서는 '현재 군생활 적응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다. 양호' 판정을 받은 뒤 소속부대로 전입하여 C급 배려병사(신병 전입시 일정기간 배려병사로 지정)로 관리되었다.
A씨는 2015년 5월 1일 실시된 적성적응도 검사결과에서 '군 생활에 부적응이나 사고 가능성이 예측되며 즉각적인 전문가 지원 및 도움이 필요하다. 자살, 군탈, 적응장애가 예측된다. 자살생각, 학교생활문제, 품행문제, 가족관계 갈등, 대인관계문제에 대하여 면담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소속 부대에서는 A씨가 중학교 때 정신과 치료 트라우마가 있어 병영생활전문상담관과의 면담을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상담관 상담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지 않도록 하였고, 가족과 연계하여 관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후 포상휴가를 나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A씨가 사망하기 전 남긴 유서에는 "군 생활한지 거의 1년이 다 되가는데 너무 힘들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한심하게 보고, 답답하게 보고, 그 동안 참을대로 참았고, 울기도 울었고,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지쳤다. 겉으로 괜찮은 척 좋은 척 하는데 이젠 한계다. 초반에 어리버리해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 간부나 위 선임들이 하라는 대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 정비관의 변덕스러운 성격도 싫고 다른 정비 간부들에게 피해 주고 그러는 것도 싫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듯이 피해 줄 바엔 내가 떠나야지 가족들한테 죄송합니다. 먼저 가게 돼서……"라고 기재되어 있다. 1심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소속중대 상관으로부터 각종 장비 및 훈련지시, 위험지역에 있었다는 이유로 수회에 질책을 받았으나, 간부나 선임병으로부터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자료는 없다.
대법원은 "A씨가 자살 직전 극심한 직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충분하므로, A씨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A씨의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며 "그런데도 A씨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등에 관하여 좀 더 면밀하게 따져보지 아니하고, A씨의 사망과 직무수행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한 원심에는 보훈보상자법상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 "군인 등이 복무 중 자살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도 보훈보상자법 제2조 제1항의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데도 그 사망이 자살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훈보상자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며 "또한 직무수행과 자살로 인한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증명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군인 등이 직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우울증 등 질병이 발생하거나 직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우울증 등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과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자살자가 담당한 직무의 내용 · 성질 · 업무의 양과 강도, 우울증 등 질병의 발병 경위 및 일반적인 증상, 자살자의 연령, 신체적 · 심리적 상황 및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가 국가유공자법상 순직군경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이 부분에선 항소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