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자 검사가 항소한 후 항소심 증인을 미리 불러내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조서를 만들었다면 이 조서는 물론 같은 취지의 법정 증언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1월 28일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브로커 이동율(67)씨에 대한 상고심(2013도6825)에서 이같이 판시, 징역 1년 6월과 추징금 4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박현상 변호사가 상고심에서 이씨를 변호했다.
이씨는 2007년 8월경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양재 화물터미널 복합개발 사업'의 시행자인 파이시티의 대표이사 A씨에게 사업의 인허가를 받도록 도와준 경비 명목의 금원을 요구하여 1억원을 송금받은 것을 비롯하여, 2008년 5월까지 총 6회에 걸쳐 A씨로부터 사업의 인허가 청탁 비용 명목으로 5억 5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기소됐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고향 후배인 이씨는 2004년경 A씨에게 '최씨 등을 통하여 사업 인허가를 받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의하여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위 돈에 관한 자유로운 처분권한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단순 전달자'로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A씨로부터 받은 5억 5000만원 가운데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이후 받은 4억원은 최씨에게 지급할 돈이라기보다는 이씨가 알아서 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수수하였다고 보아 이씨에게 징역 1년 6월과 추징금 4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같은 판단엔 이씨에게 돈을 준 A씨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A씨를 항소심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었던 검찰은 항소심 1회 공판기일 하루 전 그를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조서를 받았다. 이씨가 돈의 단순 전달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보강하기 위한 것으로, A씨는 검찰에서 "대선이 끝난 이후에는 최씨가 아닌 이씨에게 금원을 지급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물론 A씨는 1심 판결 전인 제4회 검찰 신문 떄부터 이렇게 진술했으나 항소심 공판 하루 전에 있었던 5회 검찰 신문에선 같은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항소심 법정에서도 마찬가지의 진술을 했다.
검사는 A씨를 상대로 5회 검찰 진술조서를 작성할 당시 이씨에 대한 1심 판결과 변호인의 의견서를 보여 주고 A씨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을 알려달라고 하였으나, 곧 있을 항소심에서 A씨에 대해 증인신문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지는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가 원심판결 선고 후에 A씨를 다시 소환하여 조사한 것은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A씨가 당심 법정에서 한 진술은 증거법칙상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그 내용도 (이씨에 대한) 기소 전에 이루어진 A씨에 대한 4회 검찰 신문 내용과 그 실질에 있어서 같은 것이므로, 그러한 이유만으로 A씨의 당심 법정에서의 진술을 쉽게 배척할 것은 아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A씨의 진술조서와 항소심 법정진술 모두 증거로 쓸 수 없다며 항소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1심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검사가 항소한 후, 수사기관이 항소심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특별한 사정 없이 미리 수사기관에 소환하여 작성한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것"이라며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후 참고인을 소환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기재한 진술조서를 작성하여 이를 공판절차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한다면,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검사가 수사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당사자주의 · 공판중심주의 · 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 참고인이 나중에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위 진술조서의 성립의 진정을 인정하고 피고인 측에 반대신문의 기회가 부여된다 하더라도 위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라며 "위 참고인이 법정에서 위와 같이 증거능력이 없는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진술을 한 경우, 그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하여 유죄의 증거로 삼을 것인지는 증인신문 전 수사기관에서 진술조서가 작성된 경위와 그것이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심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자 검사가 항소를 한 후 항소심 공판기일에서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수사기관에 소환하여 일방적으로 진술조서를 작성하였고, 그 내용 또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며, 진술조서를 작성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이 진술조서를 증거로 할 수 있음에 동의하지 않은 이 사건에서 이를 증거로 허용하면 당사자주의 · 공판중심주의 · 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A씨의 항소심 법정진술에 대해서도, "A씨에 대하여 진술조서가 작성될 당시와 법정진술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A씨에 대한 매우 중한 형사사건으로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가 제기되어 징역형이 선고되었다"며 "A씨가 원심 법정에서 진술하기 전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진술조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영향을 받아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맞추기 위하여 진술을 변경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