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에 따라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도 친자식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특히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라면,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하여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여전히 남편의 친자식이라고 보았다. 부부가 동거하지 않는 등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민법상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는 취지의 36년 전 대법원 판례를 유지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10월 23일 무정자증의 남편인 A씨가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해달라"며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하고, A씨의 청구를 각하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무정자증으로 부인과의 사이에 자녀가 생기지 않자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자녀를 갖기로 했다. 이후 부인은 1993년경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AID)을 통하여 자녀를 출산했고, A씨는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이후 A씨의 부인은 1997년경 혼외 관계를 통해 자녀를 출산했고, A씨는 이 자녀도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A씨 부부는 그러나 2013년경 부부갈등으로 협의이혼을 신청했다가 취하했고, 그후 이혼소송을 하면서 상호간 이혼조정이 성립되었다. 두 자녀는 이 과정에서 부모님이 다투면서 자신들이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낸 사건이다. 1심 소송과정에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A씨와 두 자녀 사이에는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가 A씨의 청구를 각하하자 A씨가 상고했다.
민법 844조 1항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친생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에는 '친생부인의 소'와 '친생자관계부존 재확인의 소' 2가지가 있다. 친생부인의 소는 친생자로 추정되는 자녀에 대한 것으로서, 2년의 제소기간 제한이 있는 반면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는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는 자녀에 대한 것으로서, 제소기간의 제한이 없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녀와의 친생자관계를 부정하고자 하는 경우, 친생자로 추정되는 자녀에 대하여는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 친생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는 불가하며, 이 경우 친생부인의 소는 제소기간 2년의 제한이 있으므로, 반드시 '친생 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 만일 2년의 제소기간이 경과하였다면, 제소기간을 규정한 취지상 더 이상 친생부인 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 반사적 효과로) 설령 친생자 가 아님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친생자관계는 그대로 확정되게 된다.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는 자녀에 대하여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에 의하여 친생자관계를 부정할 수 있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는 제소기간의 제한이 없으므로, '친생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하였더라도 얼마든지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결국 이 사건은 두 자녀에게 친생추정이 미치는가에 대한 것인데, 대법원은 친생추정이 미친다고 보고 따라서 친생자관계 부존재확인소송은 부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먼저 아내가 혼인 중 남편의 동의에 따라 제3자의 정자를 제공받아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친생추정 규정이 적용되어 출생한 자녀가 남편의 자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친생추정 규정은 문언상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의 적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고, 헌법은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호하고 있는데, 인공수정 자녀를 둘러싼 가족관계도 이러한 헌법에 기초하여 형성된 것이므로 다른 자녀와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되며,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는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도 유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자녀의 복리 관점에서도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자녀의 복리는 친자관계의 성립 · 유지에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자녀의 복리를 지속적으로 책임지는 부모에게 인공수정 자녀와의 신분관계를 귀속시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부모가 자녀의 발전을 위한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하여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더라도 친생추정이 미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은 혈연관계의 존부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고(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임), 혼인 중 아내가 임신하여 출산한 자녀가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친생추정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자녀의 법적 지위를 신속히 안정시켜 법적 지위의 공백을 방지하고자 하는 친생추정 규정 본래의 입법 취지에 반하며, 혈연관계 없이 형성된 가족관계도 헌법과 민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족관계에 해당하고 이러한 가족관계가 오랜 기간 유지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숙해지고 견고해졌다면 그에 대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는 것은 민법 규정의 문언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친생추정 규정을 친자관계의 설정과 관련된 기본 규정으로 삼고 있는 민법의 취지와 체계에 반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혈연관계 유무나 그에 대한 인식은 친생부인의 소를 이유 있게 하는 근거나 제소기간의 기산점 기준으로서 친생부인의 소를 통해 친생추정을 번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유이지, 친생추정이 처음부터 미치지 않도록 하는 사유는 아니라며,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을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 전제사실로 보는 것은 원고적격과 제소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는 친생부인의 소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으로 민법 해석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