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동료 교사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려고 녹음했다면 정당행위에 해당,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1부(재판장 강화석 부장판사)는 7월 10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중학교 교사 A씨가 "음성권 침해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같은 학교 동료 교사 B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2018나68478)에서 A씨의 항소를 기각,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3학년 담당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B씨는 자신이 담임을 맡은 3학년 학생들의 학교 행사 참여와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자 2017년 7월 12일 오후 5시 40분쯤 이 행사를 주관하던 1학년 담당교사 C씨에게 전화하여 이야기했으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1학년 교무실로 찾아갔다.
B씨가 1학년 교무실에 들어가자 1학년 담당교사이던 A씨는 B씨를 향해 다소 다급한 어조로 반복하여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했고, B씨는 이에 대응하지 않은 채 C씨의 옆자리에 앉아 C씨와 학생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화를 했다. A씨가 계속하여 B씨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치자, B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A씨의 음성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A씨는 B씨가 녹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B씨의 스마트폰을 빼앗았고, 스마트폰을 돌려달라는 B씨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음날까지 돌려주지 않았다. 이후 B씨를 상대로 "음성권을 침해했다"며 7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했다. 한편 이 사건으로 A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벌금 30만원의 유죄판결이 선고된 가운데 현재 항소심 계속 중에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10조 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윤리 또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녹음자의 비밀녹음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는 C씨와 대화하던 중 원고가 계속하여 대화에 끼어들며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고 소리치자 녹음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원고의 음성이 비밀리에 녹음된 부분은 약 23초에 불과하며, 그중 절반 이상은 피고와 C씨가 대화하는 부분"이라며 "피고는 이 사건 이전부터 원고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고, 종전에도 원고가 피고에게 고성을 지르는 일이 있어 원고에 대하여 피해의식이 있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건 당시 원고가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며 계속하여 소리치자, 원고의 행동을 제지하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녹음을 하게 된 것으로 보여 필요성과 긴급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녹음된 원고의 음성은 원고의 내밀한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피고에게 교무실에서 나가라는 취지의 내용 뿐이고, 그 발언도 공개된 장소인 교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는바, 원고의 음성권 침해 정도가 미약하고, 원고의 내밀한 비밀영역을 침해한 것도 아니다"고 지적하고, "피고의 녹음행위로 원고의 음성권이 다소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B씨의 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B씨가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이 소송과 관련해 법원에 제출하거나 형사사건의 수사를 위해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한 점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