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더라도 회사를 위해 사용했다면 업무상횡령죄가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월 14일 특경가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선박 부품 제조업체인 B사 대표 김 모(60)씨에 대한 상고심(2017도19568)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횡령 혐의는 무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법무법인 지평이 상고심에서 김씨를 변호했다.
김씨는 거래처에 부품대금을 허위 또는 과다계상하여 지급한 후 부가가치세를 공제한 돈을 자신이 관리하는 부인 명의 계좌로 입금받는 방법으로 2006년 2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모두 277회에 걸쳐 비자금 8억 2100여만원을 조성하여 접대비 등으로 소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가 횡령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자 김씨가 상고했다.
김씨는 "부외자금은 사실상 회사의 영업 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전액 회사를 위해 사용됐다"며 "불법영득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먼저 비자금 계좌가 김씨의 부인 명의로 개설되었으나, 이 계좌는 김씨가 실질적으로 주식 전부를 소유하고 있는 B사의 비자금과 관련된 용도로만 사용되었고, B사의 경리담당직원에 의하여 관리되었으며, 김씨뿐 아니라 거래업체들에 대한 세금계산서 발급 및 수취를 담당하는 임원이나 영업팀장들도 비자금 조성 과정에 관여하여 그 조성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B사의 경리담당직원은 수사 초기부터 '피고인 김씨의 지시에 따라 돈을 인출하여 주곤 하였는데, 그 돈이 영업상 선원들에 대한 접대비로 사용되었다'고 진술하여 왔고, 원심 법정에서는 '선원들에 대한 접대비, 현금으로 사용되어 회계처리하기 곤란한 해외출장경비, 골프나 유흥업소에서의 접대비, 그 밖의 각종 영업비로 사용되었다'고 하여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게 진술하여 왔다"며 "피고인이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개인적 용도로 착복할 목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여 그 조성행위 자체로써 불법영득의 의사가 실현되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비자금 계좌에 입금된 전체 금액 2,325,492,543원에 비하여 원심이 인정한 피고인 김씨 명의의 개인 예금 및 대여금 등 개인적인 용도로 지출된 금원은 358,092,403원에 불과하여 비자금 전부가 피고인 김씨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데, 원심은 이와 달리 김씨가 주장하는 용도로 비자금이 사용되었다는 객관적 증빙자료가 없고, 김씨가 주장하는 사용처 중 거래처에 대한 접대비, 수고비 명목의 금원 지출은 배임증재에 해당할 여지가 많으며, 이는 회사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배임증재 상대방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이나 기타 다른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비자금 821,374,309원 중 358,092,403원은 피고인 개인 명의 정기예금이나 피고인의 지인에 대한 대여금 등 개인용도로 사용되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피고인에게 비자금 조성에 관한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말았다"며 "원심의 판단에는 비자금 조성에 관한 업무상횡령죄의 불법영득의사 및 이에 대한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김씨가 거래업체나 선원들에 대하여 접대비를 사용한 것과 관련하여 배임증재죄 등의 처벌을 받은 적은 없다.
대법원은 이에 앞서 "법인의 운영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의 자금을 이용하여 비자금을 조성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법인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법인의 운영자 또는 관리자가 법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법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거나 개인적인 용도로 착복할 목적으로 법인의 자금을 빼내어 별도로 비자금을 조성하였다면 그 조성행위 자체로써 불법영득의 의사가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그 행위자에게 법인의 자금을 빼내어 착복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법인의 성격과 비자금의 조성 동기, 방법, 규모, 기간, 비자금의 보관방법 및 실제 사용용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