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빙빙 탈세사건을 폭로했던 전 CCTV 아나운서 추이용위안(崔永元)이 이번에는 '섬북천억광업권분쟁'과 관련한 최고법원의 비리를 폭로했다. 섬북천억광업권분쟁은 분쟁규모가 엄청날뿐 아니라(1천억 위안은 한화로 약 16조원임), 섬서성고급법원(원고승소)–최고법원(파기환송)–섬서성고급법원(원고패소)–최고법원(파기자판, 원고승소)을 거치면서 1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고, 작년 초에 최고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오고 1년이 지났는데 아직 집행이 되지 않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섬서성 국토청장, 지질광업국장, 부국장 등 낙마한 고위공무원들이 적지 않고, 올해 1월 15일에는 섬서성 성위서기를 지낸 자오정용까지 조사를 받았다.
작년 초 최종판결 나와
2018년 12월 26일, 추이용위안은 웨이보에 "섬북천억광업권사건의 기록을 도난당했으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다"라는 제목으로 사건기록 도난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최고법원은 "이 사건 2심 기록은 이미 2018년 9월 26일에 기록보존되었으며", "기록이 분실되었다는 것은 유언비어"라는 첫 반응을 내놓았다.
추이용위안은 다시 증거사진 4장과 함께, 주심재판관이 왕린칭(王林淸)이라고 공개하고 상세한 도난과정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사건기록을 도대체 잃어버렸다는 것인가 아니라는 것인가? 분실했다는 것인가 도난당했다는 것인가? 외부인이 훔쳐간 것인가, 내부인의 소행인가? 외부인의 소행이면 왜 신고하지 않았는가? 내부인의 소행이면 도대체 무슨 의도인가? 누가 시켰는가? 무슨 목적인가? 기록이 없어졌는데 왜 간부들은 조급해하지도 않는가? 왜 즉시 유언비어라고 발표했는가? 그리고 다음날에는 다시 분실했다고 하는가?"
관련 증거들이 드러나자, 최고법원은 추이용위안이 제시한 사진에 나오는 2장은 사건기록이 맞으며, 사건기록 분실과 관련하여 현재 조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히면서, 추이용위안을 비롯하여 관련 정보를 가진 사람들의 제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주심재판관, 증거 동영상 남겨
그 후 사건기록 분실 당시 최고법원의 주심재판관이었던 왕린칭이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은 사람들을 더욱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는 첫머리에 이 동영상을 녹화하는 이유에 대하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불측의 사태를 막기 위하여, 일정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고법원의 재판관이 목숨을 잃을 것까지 걱정해서 증거 동영상을 남겨야 했다는데서 사건의 심각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현재 실종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설에는 최고검찰원이 사건 조사를 위해 연행해갔다고 한다.
동영상에서 왕린칭은 2016년 11월경 기록을 보기 위하여 사무실 캐비닛을 열었더니 사건기록중 2심 기록의 정본 1부와 부본 1부가 사라졌다고 했다. 주심재판관으로서 이는 면직당할 수도 있는 큰일이라고 생각하여 즉시 재판장에게 보고했는데, 재판장은 비교적 담담했고, 사무실과 입구에 위치한 감시카메라 2대의 녹화본을 확인해보니 둘 다 고장이 나 녹화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분실 사건과 관련하여 그 후 최고법원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분실된 사건기록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을까? 나중에 사건기록이 돌아오긴 했으나, 종전의 기록에 편철되어 있던 문서들이 상당수 사라졌다고 한다. 사라진 문서중에는 최고법원 원장 저우창과 부원장 시샤오밍이 사건과 관련하여 2심법원(섬서성고급법원)에 보낸 지시사항 메모들이 있었다고 한다.
추이용위안이 공개한 사진중 2장은 '기밀' 표시가 된 '상황보고'인데, 하나는 저우창이 "이 사건의 관련 처리 상황은 엄격히 기밀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시샤오밍이 "저우원장의 지시를 받아, 본건은 소송의 심리를 중지한다. 재정서는 내가 이미 서명하여 보냈다. 관련 인원에게 저우원장의 지시에 따라 사건 관련 상황을 알리고 엄격히 기밀을 유지하라"고 지시하였다는 내용이다. 시샤오밍 부원장은 2004년 최고법원 부원장에 올랐는데, 1996년부터 2015년 사이에 업무처리와 관련하여 1.14억 위안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7년 2월 천진고급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지금 수감중이다.
판결 후 재판업무에서 배제
또한 주심재판관인 왕린칭은 최고법원 원장인 저우창으로부터 섬북천억광업권사건과 관련하여 두 차례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이전에 한 번 파기환송한 바 있기 때문에 민사소송법규상 파기자판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 사건에 관하여 계약을 해지한다는 판결을 내릴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주장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판결할 수 없기 때문에 역시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판결을 내린 후 왕린칭은 재판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섬북천억광업권사건의 분쟁대상은 섬서성 위린시(楡林市) 헝산현(橫山縣) 보로정전(波羅井田)에 위치한 약 279.23㎡에 매장된 석탄에 대한 탐사권 및 채광권이다. 2002년 7월, 국유기업인 서안지질광산탐사개발원유한공사("서안탐사원")는 섬서성국토청에 신청하여 탐사권을 취득했다. 초보적인 탐사결과 매장량은 20억톤으로, 호황때의 시가로 계산하면 3800억 위안에 달한다. 물론 당시만 하더라도 서안탐사원은 광업권의 가치가 이렇게 엄청나게 오를 줄은 몰랐다.
3800억 위안 석탄 채광권이 분쟁대상
서안탐사원이 자금부족으로 탐사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자오파치(趙發琦)는 위린카이치라이(凱奇萊)에너지투자유한공사("카이치라이")를 설립하여 2003년 8월 25일 서안탐사원과 2000여자에 달하는 합작탐사계약서를 체결했다(서안탐사원은 실제로 2004년 2월 19일에 체결하면서 일자를 소급하여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계약에서 카이치라이와 서안탐사원은 탐사권의 가치를 1500만 위안으로 계산하여, 카이치라이가 1200만 위안을 내기로 했다. 즉 80:20의 비율로 비용을 부담하고, 향후 수익도 80:20으로 나누기로 약정했다. 계약에는 탐사를 마친 후, 쌍방이 지분비율대로 회사를 설립하여 공동개발하거나, 혹은 협상을 통해 서안탐사원이 권익을 카이치라이에 양도한 후 카이치라이가 단독으로 개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섬서성정부는 2003년 10월 20일, 제21차회의기요를 통해 석탄광산의 광업권을 양수받으려면 반드시 석탄 관련 전방산업에 투자하여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로 인해 서안탐사원은 자오파치가 석탄 관련 전방산업에 대한 투자프로젝트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계약 이행을 거절했다. 2005년 10월경, 메탄올-올레핀프로젝트에 165억 위안을 투자하겠다는 홍콩이예(益業)투자집단유한공사("홍콩이예")가 나타나자, 위린시정부는 홍콩이예와 메탄올-올레핀프로젝트합작계약을 체결하고, 섬서성발개위는 보로정전 석탄광산을 홍콩이예프로젝트에 제공하기로 결정하며, 몇 달 후 서안탐사원은 홍콩이예와 보로정전 석탄광산에 대한 지질프로젝트합작탐사계약서를 체결했다. 이렇게 하여 동일한 광산프로젝트에 대하여 이중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카이치라이, 계약 이행 청구소 내
카이치라이는 법원에 계약 이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계약의 성격이 공동탐사계약인지, 채광권양도계약인지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이 섬서성정부의 제21차회의기요에 위반하여 무효인지 여부이다.
첫째, 계약의 성격과 관련하여 카이치라이는 본건 계약은 공동탐사계약이고 다만 부수적으로 향후 채광권을 양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주장했고, 서안탐사원은 본건 계약은 실질적으로 채광권을 양도하는 것인데, 채광권 양도에 필요한 정부 인허가나 등록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최고법원은 본건 계약의 성격은 공동탐사계약이며, 공동탐사를 마친 후에 채광권을 공동설립한 회사에 양도하거나 카이치라이에 양도하기로 한 것이므로 계약이 유효하다고 보았다.
둘째, 계약이 섬서성정부의 제21차회의기요에 위반하여 무효인지에 관하여, 서안탐사원은 계약 체결시 쌍방은 섬서성정부의 문건에 위반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체결 일자를 소급한 것이고, 계약내용이 제21차회의기요에 위반하므로 무효라고 주장했으나, 카이치라이는 계약 체결 일자는 섬서성정부 문건이 나오기 전이며, 설사 그 후라 하더라도 섬서정정부의 제21차회의기요는 정책일 뿐, 강행법규가 아니므로 계약이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고법원은 카이치라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섬서성정부의 정책은 강행법규가 아니므로 위반하더라도 계약 무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저우용캉이 사건 당시 정법위서기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후에 최고법원 원장 저우창 이외에 얼마나 많은 인물이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하여도 말들이 많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섬서성 성위서기를 지낸 자오정용은 이미 조사를 받고 있는데, 현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인 자오러지(趙樂際)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섬서성 성위서기를 지낸 바 있다. 그리고 사건 당시 공안, 법원, 검찰을 지휘하는 최고권력자인 정법위서기는 이미 감옥에 들어간 저우용캉(周永康)이었다. 한편 전인대는 최고인민법원 원장의 임면권을 가진 기관인데, 1월말에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이번 회의에서 저우창 원장의 거취가 결정될지 여부도 관심사이다.
김종길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jgkim@donginlaw.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