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에서 다른 집회가 열리지 못하도록 기업에서 직원들을 동원해 개최하는 이른바 '알박기 집회'는 법이 보장해야 할 집회가 아니므로 이를 방해했더라도 집회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알박기 집회는 주로 대기업이 자사에 대한 항의성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장소를 선점할 목적으로 이용된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0월 25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집회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 모(43)씨에 대한 상고심(2018도12651)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유성기업 범시민대책위' 회원인 고씨는 2016년 5월 17일 오후 1시 15분쯤부터 오후 5시쯤까지 서울 서초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인 '성숙한 집회문화 만들기' 집회를 방해하고 경찰의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당시 현대차 본사 앞에서는 현대차 보안관리팀 보안 담당자인 A씨 등 현대차 직원 100여명이, 현대차 보안관리팀장인 B씨가 약 한 달 전인 4월 18일경 서초경찰서에 신고한 '기업 ·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숙한 집회문화 만들기'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씨 등 유성기업 범대위 회원 30여명이 이 장소에서 '현대차 집중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실시하겠다고 주장하며 현대차 직원들의 집회를 일시 중단시키고, 다른 집회 참가자들을 옆으로 밀어 붙이면서 그 자리로 들어간 후 연좌하여 구호를 제창하고 자유발언을 하거나 노동가를 송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약 4시간 동안 집회를 방해하고, 오후 2시 57분쯤부터 오후 4시 32분쯤까지 서초경찰서 경비과장으로부터 3회 이상 적법한 해산명령을 받고도 불응해 고씨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집시법 3조 1항은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심 재판부는 "서초경찰서에 신고된 '기업 ·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성숙한 집회문화 만들기' 집회(집회문화 집회)의 주최자 B씨는 현대차 보안관리팀장이고, 연락책임자 겸 질서유지인 A씨는 현대차 보안관리팀 물리보안(경비업무 포함) 담당자인데, A씨조차도 집회문화 집회의 참가예정단체로 신고된 '국가 및 기업 경쟁력 발전 연구 모임'의 구성원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이 모임은 집회문화 집회를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는바, 실존하는 단체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집회문화 집회에 참가하는 현대차 직원들의 인식도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인 것이라기보다 소속 근로자로서 회사의 경비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인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따라서 "집회문화 집회는 헌법과 집시법이 최대한 보장하려고 하는 집회라기보다는 현대차의 경비업무의 일환으로 보아야 하고, 동일한 장소에서 그 장소와 밀접한 내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집회를 개최하고자 하는 타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장소 선택의 자유를 배제 또는 제한하면서까지 보장할 가치가 있는 집회라고 할 수는 없다"며 "비록 집회문화 집회가 집시법에 따라 먼저 신고가 되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동일한 장소에서 집회를 개최 · 참가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계에서는 집시법 3조 1항에 의해 '방해'가 금지되는 '평화적인 집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씨 등 범대위 회원들이 집회문화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에서 기자회견 집회를 개최 · 참가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개별적인 폭행죄 등 별도의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가 있어서 이를 처벌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곧바로 집시법 3조 1항 위반의 죄를 구성한다고 할 수는 없으며, 달리 피고인들이 집시법에 의한 보호가치 있는 집회를 방해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 부분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으며, 대법원도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