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체에서 만들거나 수입한 멸균장갑과 밴드, 거즈 등의 외약외품의 포장을 뜯어 재포장한 후 새로 제작한 것처럼 명칭과 유효기간을 임의로 기재해 판매한 경우 약사법 위반일까. 대법원은 원래 제품의 성상 등의 변질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미신고 의약외품 제조 · 판매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6월 15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재난대비제품개발 · 판매업체인 N사 대표 임 모(48)씨와 N사에 대한 상고심(2016도20406)에서 미신고 의약외품 제조와 판매 혐의도 유죄라는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임씨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조업신고를 하지 않고 2009년 4월 이천시 마장면에 있는 N사 사업장에서 다른 의약외품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제조 내지 수입한 멸균장갑 1쌍씩의 포장을 개봉한 후, 이 장갑 5쌍씩을 N사 사업장에서 별도로 제작한 단상자(구급함용 박스)에 넣어 새롭게 포장하고, 다시 이를 N사 사업장에서 별도로 제작한 응급키트에 넣어 마치 N사 사업장에서 제조한 것처럼 명칭, 사용상의 주의사항, 유효기한 등을 임의로 기재하는 방법으로 멸균장갑을 제조하고, 단가 671원에 36개를 거래업체에 판매했다. 임씨는 이런 방법으로 2009년 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같은 방법으로 멸균장갑과 멸균밴드, 멸균거즈 등 1억 2800여만원 상당의 의약외품 23개 품목을 제조한 후 항공사, 도매업체, 소비자 등에게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면봉이나 붕대, 밴드 등의 명칭과 규격, 제조국, 유효기간 등을 거짓으로 적은 의약외품 974개를 판매할 목적으로 저장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N사는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임씨가 멸균장갑과 밴드 등의 상품을 뜯어 재포장한 후 판매한 행위가 미신고 의약외품 제조와 판매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약사법 31조 4항은 "의약외품의 제조를 업으로 하려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기준에 따라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제조업신고를 하여야 하며, 품목별로 품목허가를 받거나 품목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대법원은 "약사법상 의약외품의 제조를 신고사항으로 하고, 품목별로 허가를 받게 하는 등 제조 · 판매에 관한 엄격한 법적규제를 하는 이유는 의약외품의 직 · 간접적인 약리작용으로 사람 또는 동물 등의 건강에 대한 적극적인 위험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과 의약외품의 명칭, 제조업자, 제조연월일, 성분 등을 의약외품의 포장 등에 표시하도록 하여 의약외품의 품질, 유효성 및 안전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의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전제하고, "의약외품의 포장을 제거하고 재포장한 경우가 의약외품의 제조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제품의 성분과 외관, 제조시설과 방법, 제품 포장의 표시 내용, 판매할 때의 설명과 선전내용, 사회 일반인의 인식가능성 등을 고려하되, 재포장 과정에서 원래 제품의 변질가능성이나 제품명, 제조연월일 등 재포장 표시에 의하여 원래 제품과의 동일성이 상실되어 별개의 제품으로 오인할 가능성 등도 함께 참작하여 제조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제품의 경우에는 멸균제품이 아니고 그 제조업체가 정부인증 우수의약품 적격업체가 아님에도 이를 표시하거나 콘택트렌즈 세정용 제품을 상처소독용 제품으로 표시하는 등 원래 제품의 용도, 품질, 유효기간, 제품명 등을 허위로 기재하였고, 피고인 회사의 작업장 등의 상태에 비추어 봉함된 포장을 뜯거나 개별 포장도 되지 않은 제품의 포장 단계에서 감염 등으로 인하여 원래 제품의 성상 등의 변질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위와 같은 사정을 보았을 때 피고인 회사를 제조업체로 오인하거나 원래의 제품과의 동일성을 상실하여 별개의 제품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의 재포장행위는 의약외품 제조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임씨의 행위는 미신고 의약외품 제조와 판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항소심을 맡은 수원지법은 장갑 등의 개봉과 포장 과정에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의약품 등이 첨가되지 않았고 그 제품의 성상이나 용법 등이 변경되지 않아 의약외품의 제조행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임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N사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