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대학이 운영하는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하던 대학생이 넘어지면서 안전펜스에 충돌해 하지마비 등의 장애를 입었다. 법원은 얇은 안전매트를 설치하는 등 아이스링크를 부실 관리한 대학 측에 60%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부(재판장 김형훈 부장판사)는 4월 25일 서울 월계동에 있는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관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하다가 넘어져 다친 기 모씨(사고 당시 22세)씨가 이 아이스링크를 관리 · 운영하는 학교법인 광운학원과 동해문화예술관 관장 유 모씨, 시설책임자 한 모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7가합521268)에서 피고들의 책임을 60% 인정, "피고들은 연대하여 7억 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강릉원주대 4학년에 재학중이던 기씨는 2013년 3월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관 아이스링크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자격대회를 대비해 스케이트 훈련을 하던 중 다른 선수와의 충돌을 피하다가 넘어지면서 아이스링크 상단 코너에 설치된 안전펜스에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흉추 손상으로 인한 하지마비 등의 상해를 입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기씨가 18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 아이스링크의 내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약 164m 길이의 안전펜스는 높이 1m, 두께 5~7mm의 화이트보드 2장이 약 15cm의 빈 공간을 두고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사고 당시 펜스를 따라 아이스링크의 안쪽으로 높이 1m, 길이 2m, 두께 20cm의 매트가 82개 정도 부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매트들은 1998년에 도입된 것으로 2005년과 2011년에 커버가 교체되었을 뿐이고, 내부 완충재는 사고 당시까지 15년 동안 교체되지 않았다. 안전성 검사 역시 실시된 적이 없었다. 아이스링크가 보유하고 있던 매트의 총수는 90개 정도. 펜스를 따라 1개씩 총 82개를 부착하고 나면 8개 정도의 매트 여분만 남게 되어 전체 구간에 매트를 2겹으로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기씨가 충돌한 안전펜스에도 매트가 1개만 부착되어 있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시행 중이던 국제빙상연맹(ISU)의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패딩(안전매트)과 선수의 안전 규정에 의하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를 위하여 아이스링크에 고정시킨 안전매트의 최소 사양은 높이 120cm, 길이 200cm, 두께 40∼60cm이고, 이동 가능한 자립형 안전매트의 최소 사양은 높이 120cm, 길이 200cm, 두께 60∼110cm"라고 지적하고, "(안전펜스에 부착되어 있던) 매트는 원고와 같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이용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아이스링크의 안전장치로 사용되기에는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부터 선수들의 신체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하자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고, 사고 당시 아이스링크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던 유씨와 아이스링크의 시설책임자로서 시설관리 실무를 총괄하고 있었던 한씨, 그리고 아이스링크의 관리 운영 주체인 광운학원은 매트에 이와 같은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매트를 안전한 것으로 교체하기 위한 어떠한 실효성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국내대회 개최사 ISU 규정에 의거하여 두께가 40cm 이상인 안전매트를 아이스링크 둘레에 설치하고 있다. 사고 당시 다른 아이스링크에 설치된 안전매트의 두께도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의 경우 47cm, 목동아이스링크의 경우 50cm, 고양 어울림누리 아이스링크의 경우 45cm였다. 기씨가 사고를 당하기 전인 2013년 1월경에도 이 아이스링크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훈련을 하던 선수가 넘어지면서 안전펜스에 충돌하여 다리 부분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당시 선수와 학부모 등이 안전펜스를 구성하고 있는 매트의 두께가 다른 곳보다 얇고 충격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광운학원 측에 안전매트의 교체를 요구하였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아이스링크의 이용자가 안전펜스에 충돌하더라도 충격을 흡수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춘 매트를 아이스링크에 비치하여 펜스에 설치되도록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여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매트만을 아이스링크에 비치하여 펜스에 설치되도록 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고, "나아가 광운학원의 경우 체육시설법에 따른 안전기준 준수의무 위반, 아이스링크 대관계약에 따른 부수의무인 안전시설유지와 안전배려 의무 위반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고들은 유씨와 한씨는 매트를 교체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사고 당시에도 원고 등이 매트를 한 겹으로 설치하였으므로 안전펜스의 시설 미비로 인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사고 발생 전에 매트를 교체할 권한이 있었음에도 이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매트의 위험성, 교체의 필요 및 시급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위한 적절한 조치(광운학원에 대한 신속한 예산배정 요청 등)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등이 스스로의 판단 하에 매트를 한 겹으로 설치했다 하더라도 이를 과실상계의 사유로 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아이스링크를 관리하는 피고들의 과실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안전펜스에 충돌한 것 외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을 만한 다른 충격을 받은 사정이 존재하지 않은다"며 피고들의 안전펜스 관리 소홀로 인한 과실과 사고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했다. 결국 피고들에게는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어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안전매트를 아이스링크에 비치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통상적인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매트만을 아이스링크에 비치하여 펜스에 설치한 과실이 인정되고 위와 같은 과실로 인하여 원고에게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가 발생 · 확대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 광운학원에 대해서는 유씨,한의 사용자로서의 책임, 공작물책임도 인정됐다.
재판부는 다만, 매트를 펜스에 한 겹으로 부착한 것은 원고 등이었던 점, 원고 등으로서는 펜스에 부착하고 남은 매트 여분 8개 정도를 펜스의 코너 부분에 추가로 설치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원고 등이 펜스의 코너 부분에 매트를 추가로 설치하지 않은 것은 주행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점, 원고 등이 여분의 매트를 펜스의 코너 부분에 설치하였다면 사고로 인한 원고의 부상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을 가능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등을 감안해 피고들의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