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분쟁에서, 특허권자가 특허 출원 전에 스스로 공지시킨 기술에 의해 자신의 특허권이 소멸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이러한 이유로 특허가 무효가 된 사례가 있기에 소개한다.
대상사건에서 대법원은 특허권자 A사의 "액화 천연 가스 연료의 공급을 위한 장치 및 방법"에 관한 특허(이하, '대상특허')의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한 특허법원에 불복한 A사의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였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후10701 판결). 이에 앞서 특허심판원은 대상특허의 일부 청구항 발명에 대해 진보성을 인정하였으나, 특허법원은 특허법원 단계에서 새롭게 제출된 선행발명에 의해 해당 발명의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하였다(특허법원 2021. 7. 8. 선고 2020허1012 판결). 특허법원에서 새롭게 제출된 선행발명은 대상특허의 출원 전 A사가 공개한 논문이었다. 이하 본고에서는 대상사건의 사실관계 및 승패의 결정요소를 소개하고,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기로 한다.
대상특허
액화 천연 가스("LNG")를 운반하는 LNG선은, LNG를 약 -162℃의 극저온으로 액화시켜 LNG 저장 탱크 내에 저장하는데, 일부 LNG는 LNG 저장 탱크 내에서 증발하여 기체("boil-off gas", 이하 "BOG")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BOG가 LNG 저장 탱크 내 누적되는 경우 저장 탱크의 내압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종래에는 LNG 저장 탱크로부터 BOG를 추출하여 가스 연소 유닛("GCU")으로 연소시켜 버리거나 재액화시켜 저장 탱크로 회수하는 방법으로 LNG 저장 탱크 내 BOG를 처리하였다. 대상특허 발명은 LNG 저장 탱크 내의 BOG를 LNG선의 엔진 연료로 활용하기 위해, LNG 저장 탱크로부터 추출한 BOG를 고압 압축시켜 엔진으로 공급하도록 구성된 압축기에 관한 것이다.
B사는 대상특허에 대해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였고, 특허심판원은 일부 종속 청구항 발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발명은 무효라고 심결하였다. 이에 대하여 B사는 유효라고 판단 받은 청구항에 대해 무효 판단을 구하는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B사가 선행문헌 찾아 제출
특허법원에서 B사는 A사 자신이 특허출원 전에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논문을 새로운 선행문헌("선행발명 1")으로 제출하였다. 선행발명 1이 제출되자 A사는 정정심판을 청구하였으나, 이 정정심판에서 특허심판원은 선행발명 1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심결을 내렸다. A사는 정정심판 심결에 불복하는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특허법원은, 무효심판과 정정심판에 대한 심결취소소송에서 대상특허는 선행발명 1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되어 특허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A사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두 사건의 상고를 모두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였다.
특허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무효심판의 원심결이 취소됨에 따라, 특허심판원은 무효사건을 다시 심리하여 취소판결 전 원심판에서 정정된 모든 청구항 발명을 무효로 한다는 심결을 하였고, A사는 불복하지 않아 대상특허의 무효가 확정되었다.
승패의 결정요소
B사가 심결취소소송에서 제출한 새로운 선행발명 1이 승패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선행발명 1은 A사 스스로가 대상특허의 우선일보다 약 15개월 전에 개최된 국제 컨퍼런스의 논문집을 통해 공개한 논문이었다. 선행발명 1은 LNG 수송선을 위한 연료가스 공급시스템의 설계 및 설비를 소개한 것으로서, 대상특허 발명의 구성을 대부분 그대로 개시하고 있었다. 다만, 대상특허 발명은 엔진으로 공급하고 남은 초과 BOG를 압축기로부터 추출하여 재액화시켜 LNG 저장탱크로 회수하기 위해, '귀환 파이프가 압축기 유입부와 역류 방지용 밸브 사이의 제1 압축단의 하류측에 설치'하는 구성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선행발명 1에는 (i)유입부와 역류방지용 밸브 사이인 제1 압축 스테이지의 토출 측에 GCU로 연결되는 분기관이 설치된 도면이 도시되어 있고('기본컨셉'), 또한 (ii)이에 대한 '대체컨셉'으로서 압축기와 재액화 설비를 조합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개시가 있으나, 압축기와 재액화 설비 조합의 구체적인 구조가 명시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대상 특허발명과 차이가 있었다.
특허법원은 현출된 증거자료들을 통해, 초과 BOG를 GCU로 태워서 처리하는 구성과 재액화 설비를 통해 재액화시켜 처리하는 구성은 대상특허 출원 당시 통상의 기술자가 초과 BOG를 처리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사항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위 선행발명 1에 개시된 대체컨셉은 기본컨셉의 GCU를 재액화 설비로 대체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따라서 대상특허 발명이 선행발명 1에 의해 진보성이 부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시사점
특허법은 특허출원 전 출원 발명이 공지된 사정이 있더라도, 소정의 요건을 갖춘 경우 당해 공지를 공지된 것으로 보지 않는 제도, 소위 '공지예외 적용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특허법 제30조).
출원인은 특허출원 전에 해당 발명을 공지시켰더라도, 공지일부터 12개월(소위 'grace period') 이내 특허출원을 하면서, 특허출원서에 공지예외주장의 취지를 적어 출원하고 출원일부터 30일 이내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해당 공지는 없었던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2015년 개정법에 따르면 특허출원시에 공지예외주장을 하지 않았더라도, 특허출원을 보정할 수 있는 기간 또는 특허결정 또는 특허등록을 결정하는 심결의 등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 기간에, 공지예외주장의 취지를 적은 서류를 제출하면 공지예외적용을 받을 수 있다.
'grace period' 도과 후 출원
대상사건에서 특허권자 A사는 출원 전 선행발명 1을 공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상특허를 출원하면서 공지예외주장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위 grace period가 도과된 후에 대상특허를 출원하였기 때문에 애초에 공지예외주장을 할 수 없었다. 지식재산에 관한 사내의 전략 부재 내지는 관리 소홀로 인해 귀중한 특허권이 무효되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를 교훈 삼아, 특허출원인은 특허출원 전 자기공지에 대하여 유의할 필요가 있고, 부득이 출원 전 공지가 된 경우라면 빠른 시일 내 특허출원을 하면서 공지예외적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김종석 · 이시열 변호사, 정연태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jongseok.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