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스크러버 설비 유지 보수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루프스 발병…업무상 재해"
[산재]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스크러버 설비 유지 보수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루프스 발병…업무상 재해"
  • 기사출고 2024.12.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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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유해물질 노출 부정 어려워"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희귀병 질환과 관련, 산재 인정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윤상일 판사는 10월 17일 협력업체 소속으로 경기 화성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스크러버 설비의 유지 보수 업무를 담당해온 20대 근로자가 자가면역질환인 루프스에 걸린 것과 관련, 업무상 재해를 인정, "요양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2023구단64150). 2017년 7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장비인 스크러버 등을 생산하는 유니셈 소속으로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스크러버 설비의 유지 보수를 담당한 A씨는 일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인, 그의 나이 26세 때인 2019년 1월경부터 탈모, 알레르기성 피부염, 망상 등의 증상을 겪었고 2020년 7월 전신 홍반성 루프스 진단을 받았다. 이에 A씨가 "협소한 작업 공간 등으로 인해 스크러버 유지보수 업무 수행 중 보호구가 벗겨지는 일이 잦아 유해화학물질에 빈번하게 노출되었고, 육체적 ·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상병이 발병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질병 생긴 근로자 건강 · 신체조건으로 판단

윤 판사는 먼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가 정하는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질병으로 인정하려면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에 있다"며 "여기에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 ·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산업재해의 발생원인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이 될 만한 물질이 있었는지, 발병 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 근무한 기간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경험칙과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이때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윤 판사는 이 사안과 관련, "이 사건 상병의 역학적 특징에 비추어 볼 때, 성별로 보나 연령으로 보나 원고에게 상병이 발병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고, 게다가 원고는 이 사건 상병에 관한 가족력이 없고 아직까지 관련 유전적 요인의 존재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관련성을 추정할 만한 질병으로 진료 받은 이력도 없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원고가 이 사건 회사(삼성전자 협력업체) 입사 전 지에스리테일, 일반 음식점 등에서 공산품 진열, 재고 관리, 고객 응대 등 유해물질 노출과 거리가 먼 업무만을 수행하였던 것까지 아울러 보면, 이 사건 회사에서의 업무가 상병 발병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다양한 유해물질이 사용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원고가 제출한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및 물질안전보건자료에 의하더라도 분명하다"며 "유해물질 노출량이 어느 정도였는지와는 별개로, 원고가 취급한 설비, 작업 방법, 작업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윤 판사에 따르면, 원고가 취급한 스크러버 설비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나 화학물질 등을 흡착 또는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제거하는 장비이다. 그리고 원고가 담당한 스크러버 유지 보수 업무는 보호구를 착용한 상태에서 ①스크러버 상부 배관을 분리하고 내부에 생성된 파우더를 제거한 다음, ②설비의 온도를 50도 이하로 낮추고 탱크 내 폐수를 중화한 다음 적제된 폐수를 포집하고, ③손과 면포를 이용하여 탱크 내부의 물기를 빨아내고 부산물을 긁어내는 등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윤 판사는 또 "위 작업은 상당히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작업 시의 설비 온도나 보호구 착용으로 인한 발한, 폐수 등 액체 상태의 폐기물 취급 등으로 인해, 원고의 주장대로 보호구 이탈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또한 작업 과정에서의 보호구 이탈 및 그로 인한 폐기물, 부산물 등의 피부 노출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윤 판사는 "이 사건 상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원고의 청구는 이유 있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또 10월 23일 충북 청주에 있는 SK키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부신암에 걸린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 근로복지공단에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