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한국 로펌의 국제화 전진기지, 싱가포르
[리걸타임즈 커버스토리] 한국 로펌의 국제화 전진기지, 싱가포르
  • 기사출고 2024.03.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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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기업 투자 확대에 로펌 진출 러시

싱가포르 대법원에서 멀지 않은 6 Battery Road의 Standard Chartered Bank Building. 싱가포르의 주요 로펌 중 하나인 TSMP Corporation 외에 미국 로펌 Sidley Austin과 Shearman & Sterling, '국제중재 전문'으로 유명한 Three Crowns 등 국제 로펌 여러 곳이 입주하고 있는, 로펌들이 사무소 입지로 선호하는 빌딩이다. 입주사를 안내하는 1층 명판에서 한국 로펌 두 곳도 확인된다. 한국 로펌 중 가장 먼저 싱가포르 사무소를 연 법무법인 피터앤김과 김앤장 법률사무소 싱가포르 사무소가 순서대로 17층과 29층에 위치하고 있다. 2013년 1월 싱가포르 사무소를 오픈한 일본 로펌 Nagashima Ohno & Tsunematsu도 이 빌딩 41층에 사무소가 있다.

아세안 중 최대 투자대상국 싱가포르

동남아의 허브이자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많이 들어선 싱가포르에 한국 로펌들이 잇따라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며 진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7억명에 육박하는 아세안(ASEAN) 10개국 투자의 관문에 해당하는 나라인데다 미중 갈등으로 동남아가 중국의 '대안 투자처'로 각광을 받으면서 아시아의 법률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기업의 싱가포르 투자, 동남아 투자도 확대일로에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세안 국가 중 한국의 최대 투자대상국이었던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감소해 싱가포르에 최대 투자대상국 지위를 내어주었으며,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의 허브인 싱가포르에 한국 로펌들이 잇따라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며 진출하고 있다. 법무법인 피터앤김, 바른,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 세종 등 지금까지 모두 5곳이 싱가포르 사무소를 열어 변호사가 상주하는 가운데 두 세 곳이 더 싱가포르 사무소 개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리걸타임즈(http://www.legaltimes.co.kr)
◇동남아의 허브인 싱가포르에 한국 로펌들이 잇따라 현지사무소를 개설하며 진출하고 있다. 법무법인 피터앤김, 바른,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태평양, 세종 등 지금까지 모두 5곳이 싱가포르 사무소를 열어 변호사가 상주하는 가운데 두 세 곳이 더 싱가포르 사무소 개설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로펌의 싱가포르 진출은 법무법인 피터앤김과 법무법인 바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2020년부터 본격화되었다. 피터앤김이 2020년 3월 정식 등록을 마치고 4월 본격 출범한 데 이어 그해 9월 법무법인 바른도 싱가포르 법인 설립인가를 받아 이전부터 싱가포르에 상주해 온 오희정 뉴욕주 변호사를 투입했다.

피터앤김은 2020년 10월 국제중재 경력만 15년이 넘는 이승민 변호사가 대표로 부임해 싱가포르에서 진행되는 국제중재 사건 등 다양한 분쟁 케이스에 이름을 올리며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은 물론 두바이까지 업무반경을 확대하고 있다. 이승민 대표가 지휘하는 피터앤김 싱가포르 사무소엔 한국변호사 2명과 외국변호사 8명 등 모두 10명의 변호사가 상주하고 있다. 한국 로펌의 싱가포르 사무소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피터앤김, 변호사 10명 상주

이승민 변호사는 "회사법 사안 등에 대한 기업자문 업무에선 현지법 즉, 싱가포르법에 대한 자문을 할 수 없지만, 국제중재 업무는 어디서나 어느 국제중재기관에서나 변호사 자격국에 대한 제한 없이 변론 등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며 "피터앤김은 한국 당사자는 물론 제3국의 기업이나 정부를 대리하는 국제 로펌(International Law Firm)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앤장도 2020년 9월 싱가포르 법인 설립인가를 받았으나 코로나19 팬데믹에 인테리어 공사 등이 늦어지며 정식 업무는 2021년 들어 본격화되었다. 기업지배구조와 경영권 분쟁, 외국인투자, 공정거래 등 회사법 분야의 다양한 사안에 풍부한 경험을 갖춘 박마리 변호사와 김앤장에서만 25년 넘게 자문경력이 쌓인 최경선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등 3명의 변호사가 싱가포르 사무소에 상주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마리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입소 전 NYU 로스쿨에서 LL.M. 학위를 취득하고 뉴욕주 변호사 자격까지 갖춘 국제통으로, 김앤장 싱가포르 사무소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메타버스와 블록체인, 디지털 자산 등 TMT 분야의 업무에도 밝다. 박 변호사는 Visiting Scholar로 하버드 로스쿨에서도 공부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아시아 문명박물관에서 사무소 개소 2주년 기념식과 세미나를 개최한 법무법인 태평양 싱가포르 사무소는 오래된 동남아 전문가인 양은용 변호사가 이끌고 있다. 싱가포르 변호사이자 호주변호사 자격도 보유한 에반테오(Evan Teo) 변호사가 양 변호사와 함께 상주하고 있으며, 태평양 싱가포르 사무소는 오픈 2주년을 맞아 지난해 가을 싱가포르의 밀레니아 타워(Millenia Tower)로 확장, 이전했다.

베트남의 호치민에서도 상주하며 현지에 진출한 여러 한국 기업 등을 상대로 자문한 적이 있는 양은용 변호사는 "베트남에 있을 땐 한국 기업들이 현지에 투자하고 M&A를 하고 공장 세우는 일 등을 변호사로서 지원하고 자문했다면, 싱가포르에선 고객의 요청이나 한국변호사로서 수행하는 일이 훨씬 다양한 것 같다"며 "그동안 동남아 일을 많이 해온 제 입장에선 동남아 어느 지역이든 2시간 범위에서 출장을 다녀올 수 있는 싱가포르에서 자유롭게 오가며 여러 업무를 챙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자가 밀레니아 타워의 태평양 싱가포르 사무소를 찾은 다음 날 양 변호사는 1주일 일정으로 서울로 출장을 떠났다.

오희정 변호사, 현지 로펌서도 근무

법무법인 바른의 오희정 변호사도 기자가 싱가포르를 방문한 2월 하순 일본과 대만 출장 중이어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다. 교통의 요지인 싱가포르에 상주하는 한국 로펌의 변호사들은 서울을 포함해 아시아 각국을 오가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스턴 컬리지를 거쳐 텍사스대 오스틴 로스쿨(J.D.)을 졸업한 오 변호사는 바른에 합류하기 전인 2016년부터 싱가포르에 외국변호사로 등록하고, 싱가포르 현지 로펌에서 코리아 데스크로 활동해 싱가포르 사정에 정통하다. 싱가포르 펀드의 국내 배터리 업체 인수 자문,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의 베트남 시장 진출 및 싱가포르에서의 자금조달에 관한 자문 등을 수행했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마리, 이승민, 양은용 변호사, 최경선, 오희정, 신경한 외국변호사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마리, 이승민, 양은용 변호사, 최경선, 오희정, 신경한 외국변호사

한국 로펌 중 가장 최근에 싱가포르 사무소를 개설한 로펌은 약 1년 전인 2023년 봄 문을 연 법무법인 세종이다. 지난해 4월 4일 저녁 170년 전통의 싱가포르 크리켓 클럽(Singapore Cricket Club)에서 오종한 대표변호사 등 세종의 지휘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싱가포르 사무소 개소식을 열고 한국 로펌 중 다섯 번째로 싱가포르에 깃발을 올렸다.

싱가포르 사무소 대표는 하버드 로스쿨(J.D.) 출신의 신경한 뉴욕주 변호사가 맡고 있다. 그는 싱가포르 부임 전 세종의 호치민 사무소에서도 근무한 동남아 전문가로,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인 부인과 함께 가족이 모두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싱가포르 Raffles Place의 Republic Plaza 35층의 세종 싱가포르 사무소에서 만난 신경한 변호사는 "서울 본사는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세종의 동남아시아 업무그룹과 유기적으로 협업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투자와 동남아 진출에 관련된 자문은 물론 M&A, 부동산 거래, 펀드와 자산관리, 국제중재 등 싱가포르 사무소에서 자문하는 사안이 매우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 상주하는 변호사들의 면면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로펌 싱가포르 사무소에서의 업무는 한국 기업의 싱가포르나 동남아 투자, 동남아에서의 사업에 관련된 자문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제중재기관 중 하나인 싱가포르국제중재센터(SIAC)를 비롯해 싱가포르를 중재지로 진행되는 여러 국제중재기관의 국제중재 사건 등 분쟁사건의 수행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중재 전문, 국제분쟁 전문' 피터앤김 싱가포르 사무소가 대표적인 경우로, 피터앤김은 국제중재 등 분쟁사건만 취급하는데도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로펌 중 가장 많은 10명의 변호사가 상주하고 있다. 이승민 대표는 "피터앤김 싱가포르 사무소에선 한국 기업 등이 관련된 사건은 물론 외국 기업이나 외국 정부를 대리해 또 다른 외국 기업이나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상사중재(comercial arbitration)나 투자자중재(ISDS)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피터앤김 싱가포르 사무소는 한국 국제중재 서비스의 수출기지이기도 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국 로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 건설사들의 싱가포르나 동남아 진출에 관련된 자문과 분쟁해결, 금융, 유통,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등 다양한 업종에서 싱가포르 사무소에 자문이 의뢰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韓 기업 투자처 부상

싱가포르는 한국 로펌이 해외사무소를 개설한 해외 거점도시 중에선 후발 지역에 속한다. 한국 로펌들은 먼저 중국의 북경과 상하이에 사무소를 열어 진출했고, 이어 베트남의 호치민과 하노이로 달려갔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동남아 시장이 한국 기업의 새로운 투자처로 부각되며 싱가포르가 한국 로펌의 또 다른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무소 개설 순서로 따져 한국 로펌의 싱가포르 사무소가 로펌마다 대여섯 번째 해외사무소가 된다. 그러나 싱가포르 사무소를 중국, 베트남에 이어 추가로 개설된 또 하나의 한국 로펌 해외사무소 정도로 생각한다면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싱가포르 현지를 찾은 기자에게 싱가포르 사무소는 한국 로펌들이 국제화를 본격 추진하는 전진기지로 다가왔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기업들이 아세안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곳이고,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에서 싱가포르에 지역 총괄회사를 설립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변 아세안 국가로 진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전 세계의 주요 금융기관도 대부분 나와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의 허브이며, 한국과 일본 로펌은 물론 영미의 수많은 국제 로펌이 사무소를 개설하고 변호사가 상주하는 글로벌 법률 허브이기도 하다. 태평양 싱가포르 사무소의 양은용 변호사는 "싱가포르에는 글로벌 기업이든 금융회사든 로펌이든 거의 다 사무실이 있고, 싱가포르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본국의 회사나 로펌에서 나름 잘 나가는 중요 인물인 경우가 많다"며 "싱가포르는 원래 예정하지 않았던 비즈니스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확장성이 있는 도시 같다"고 표현했다.

현지법 자문은 하지 않아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로펌들은 현지법 자문은 하지 않는다. 베트남 변호사들을 채용해 베트남법에 대해서도 자문하는 호치민이나 하노이 사무소와는 다르다. 하지만 현지법 자문을 하지 않아도 할 일이 많고, 한국 기업의 동남아 진출이나 싱가포르 등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인바운드 업무를 커버하며 법률자문의 밸류를 높이는 한국 로펌 국제화의 현장이 싱가포르다.

영미의 국제 로펌들이 그들의 클라이언트를 따라 싱가포르에 사무소를 개설했듯이 한국 로펌들도 한국 기업을 따라 동남아의 허브, 싱가포르에 진출하고 있다. 싱가포르 진출을 추진하는 한국 기업의 확대 속에 싱가포르 진출을 타진하는 한국 로펌들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국 로펌 관계자들은 한국 로펌 두 세 곳이 더 싱가포르 사무소 개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