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치의 612배가 넘는 유해물질이 검출된 아기욕조 제조사가 소비자들에게 위자료를 물게 되었다. 서울고법 민사4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는 2월 8일 소비자 160명이 아기욕조 제조사인 대현화학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항소심(2022나2026418)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1심을 취소하고, "대현화학공업은 원고들에게 1인당 위자료 1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은 아기욕조를 구매하여 직접 사용한 만 13세 이하의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들이다.
대현화학공업은 2019년 8월경 배수구 물마개의 소재를 친환경 PVC로 하여 아기욕조의 시제품을 제조한 뒤, 위 시제품의 검사를 의뢰하여 이상이 없다는 시험성적서를 발급받았다. 대현화학공업은 그러나 두 달 후인 2019년 10월경부터 배수구 물마개의 소재를 일반 PVC로 변경하여 제조했는데, 이에 관한 검사는 받지 않았다. 대현화학공업은 이처럼 물마개의 소재가 변경된 아기욕조를 2019년 10월 11일부터 다이소에 납품하고, 자체적으로도 온라인 등을 통해 판매했다. 이 아기욕조의 구매가격은 개당 5,000원 정도였다.
국가기술표준원이 2020년 10월 이 아기욕조의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 배수구 물마개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인 다이아이소노닐 프탈레이트(Diisononyl phthalate, DINP)가 기준치(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총합 0.1% 이하)를 612.5배 초과해 검출되었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간 손상과 생식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는 유해화학물질로, 국가기술표준원은 대현화학공업에 아기욕조의 수거 · 교환 등을 명령했다. 원고들은 대현화학공업을 상대로 각 5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피고는 친환경 PVC를 물마개의 소재로 사용하여 제조한 욕조 시제품에 관하여 적합 판정을 받은 후, 친환경 PVC가 아닌 일반 PVC를 물마개 소재로 사용하여 욕조를 제조하였고 이에 관하여 별도의 공급자적합성확인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마치 공급자적합성확인을 거친 것처럼 욕조에 표시하였다"고 지적하고, "피고의 이러한 행위는 어린이제품 안전 특별법(어린이제품법) 제25조, 제26조를 위반한 것으로서 표시광고법 제3조 제1항 제1호의 '거짓의 표시 · 광고 행위'에 해당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욕조에는 어린이제품법상의 공급자적합성확인표시(KC마크, Korea Certification mark)가 되어 있었으므로, 자녀인 원고들을 위하여 욕조를 구매하는 부모인 원고들로서는 욕조가 어린이제품법상의 안전기준을 준수한 제품일 것으로 신뢰하였을 것이고, 그 욕조를 사용한 자녀인 원고들의 신체 등에 실제로 위해한 것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어린이제품법상의 안전기준에서 정한 기준치를 상당히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함유된 제품이라는 점을 알았더라면 이를 구매하지 않았을 것임이 분명하다"며 "부모인 원고들은 결과적으로 피고의 거짓 공급자적합성확인표시를 신뢰하여 욕조를 구매한 후 자녀인 원고들의 목욕에 사용하게 하였고, 자녀인 원고들은 위와 같이 안전기준을 600배 이상이나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함유된 물마개가 부착된 욕조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신체가 유해물질이 일부 용해된 목욕물이나 물마개 자체와 직접 접촉함으로써 유해물질에 노출되었다"고 밝혔다. 또 "부모인 원고들은 자녀인 원고들을 유해물질에 노출시켰다는 자책감은 물론, 자녀인 원고들이 이로 인해 성장과정에서 신체장애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겪었고, 자녀인 원고들은 어린이제품법의 보호법익 주체로서 위와 같이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되었고, 그들이 조만간 인지능력을 갖추게 됨에 따라 이에 관한 정신적 고통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위자료 액수를 1인당 10만원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다만, "DINP는 물에 대한 용해도가 상당히 낮고, 통상 목욕을 하는 물 환경에 방출하여 보아도 검출량이 기준치 미만이며, 경구 · 경피 노출에 대한 전이량도 기준치 미만 또는 검출 한계치 미만인 사실, 물품의 생산 과정에서 DINP를 분진의 형태로 흡입하거나 직접 노출되는 등의 방법이 아닌 한, DINP가 물 마개에 함유되어 있다가 목욕 과정에서 방출되는 방법으로는 신체에 위해를 가하기 어려운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들이 배수구 물마개에 함유된 DINP로 인하여 생명 ·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피고가 제조물 책임법 제3조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원고들의 제조물 책임법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책임만 인정한 것이다.
하희봉 변호사가 원고들을 대리했다. 대현화학공업은 법무법인 지평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