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판단 중요…자백 · 화해 등 전략 도출"
업무분야별로 부침이 없지 않았지만, 기업변호사들의 활약이 돋보인 2019년이었다. 리걸타임즈가 M&A, 증권 · 금융, 조세, 노동, 테크놀로지, 부동산, 지식재산권, 국제통상 등 주요 업무 분야별로 올 한해 탁월한 성과를 거둔 '2019 올해의 변호사(Lawyer of the Year)' 17명을 선정, 그들의 활약상과 내년도 전망을 조명한다. 편집자
올해 송무 분야에서 가장 활약한 변호사가 누구일까. 리걸타임즈가 만난 사람은 법무법인 화우의 김유범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 등 각급 법원의 판사를 역임하고, 지방법원에 부장판사로 부임하는 대신 고등법원 사건만 전담하는 고법판사를 지원해 고법판사로만 구성되는 서울고법 대등재판부에서 4년간 항소심 재판을 담당했던 판사 출신 변호사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것은 지금부터 3년 10개월 전인 2016년 2월이다.
2016년 2월 화우 합류
형사, 민사, 상사, 행정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업분쟁의 해결사로 활약하고 있는 그의 2019년 성과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분야는 구속영장 청구사건에서의 방어. 김 변호사는 어린이가 글로벌 회사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먹고 용혈성요독증후군에 감염되었다고 수사가 시작되어 이 회사의 햄버거에 패티(patty) 즉, 쟁반 모양의 다진 고기를 공급하는 협력업체의 대표, 공장장, 병원균 검사 담당 과장 등 3명에 대해 청구된 영장을 기각시키고, 재청구된 영장도 기각시켜 불구속기소된 상태에서 변호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또 K2 전차 기술의 터키 수출과 관련, 터키의 무기 중개상으로부터 미화 약 7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육군준장에 대한 영장청구도 재청구까지 기각시켰으며, 성능검사를 받으면서 실제 운행 때와 다르게 배기가스 배출량을 임의조절해 인증을 통과했다는 혐의(대기환경보전법 위반)로 기소되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박동훈 폭스바겐아우디코리아 전 대표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시킨 사람도 김유범 변호사다.
사안마다, 피의자마다 구체적인 사정이 다르겠지만, 구속영장 심사에서 효과적으로 변호해 구속의 위험으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하는 비법이 뭘까. 김 변호사의 조언은 의외로 간단했다. 죄가 인정된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죄를 인정하라는 것. 자백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죄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당연히 혐의를 부인하되, 핵심적인 부분 한, 두 가지 쟁점만 추려 법관이 이해하기 쉽게 변호에 나선다고 소개했다.물론 무조건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백이냐 아니냐의 결정 이전에 김 변호사의 엄격한 판단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김 변호사는 "이러한 판단과 전략적 선택이 구속이냐 아니냐의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공범 등에 연락 금물
한 가지 더 김 변호사가 구속의 위험에 처한 피의자에게 꼭 당부하는 한마디는 김 변호사를 만난 이후로는 공모관계나 범죄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과 말을 맞추거나 전화 등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는 것. 김 변호사는 "남의 휴대폰을 빌려서 하든, 간접적으로 연락하든 지금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며 "검찰에서 귀신같이 찾아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영장심사에서 주장하게 되고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메시지나 통화기록 삭제 등 핸드폰에 손대는 것도 피해야한다는 게 다양한 사건의 피의자를 구속 위험에서 방어한 김 변호사의 조언이다.
김 변호사는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시중은행 부행장을 항소심부터 변호해 지난 6월 서울북부지법 항소부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시멘트 분량을 줄여 레미콘을 공급한 레미콘 배합비율 사기 사건에선 배합비율을 약속대로 지켜서는 레미콘 업체에서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인데다가 안정성엔 문제가 없고, 레미콘을 공급받은 대부분의 건설사들의 탄원서를 받아 제출해 12월 초 기소된 레미콘 업체 임직원 5명 모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냈다.
이 외에도 현재 1심이 진행 중인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 대표 사건 등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건의 변호인 란을 들춰보면 김 변호사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도 방어
김 변호사가 변론을 맡아 승소한 민, 상사 케이스론 한진칼을 대리해 올 초 그레이스홀딩스가 제기한 이사선임 등 주주제안 가처분을 서울고법 항고심에서 기각시켜 확정시킨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가장 먼저 소개된다. 강성부펀드라 불리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산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 발행주식 총수의 3%를 넘게 보유했으나, 6개월 보유기간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한 점을 지적해 승기를 잡은 것으로, 김 변호사는 서울고법 판사 시절 주주제안의 요건이 문제 된 비슷한 사건에서 상세하게 판결을 쓴 적도 있다고 했다.
또 건설사가 분양하는 아파트에 분양대금을 대출해준 신협을 대리해 비록 채권 발생의 원인관계가 회생절차 개시 이전에 존재하지만, 채권 자체는 회생절차 개시 후에 발생한 경우 회생채권으로 보아선 안 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내는 등 소송의 종류를 불문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김 변호사가 중시하는 소송 전략 중 하나는 첫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판단에 따라 화해를 할 것인지, 다툰다면 영업을 계속하며 다툴 것인지 등 해당 사안에 맞는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 분쟁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으로, 기업분쟁에선 이러한 전략적 고려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관들, 외부 평가 받고 절차 관련 사법불신 막아야"=판사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심의관으로 근무하며 고법판사 제도 등을 기안하기도 했던 김유범 변호사는 법관 평가나 사법신뢰 등 사법부의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얘기했다. 우선 민, 형사 등 모든 재판에 있어서 소송절차를 잘 숙지한 후 소송법에 맞는 절차 진행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게 그가 법원에 바라는 가장 큰 주문이다. 김 변호사는 "재판이라는 게 적어도 어느 한쪽은 패소하게 마련이고, 패소자는 대체로 판결에 대해 불만과 의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실체 판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사법불신은 어쩔 수 없는 사법부의 운명이라고 해야겠지만, 절차 진행에 대한 불만으로 인한 사법불신은 사법부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며 "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르면서도 유연한 재판진행을 할 때 사법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또 "법관은 변협 등 외부의 평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사법서비스의 수요자 입장에서 판단해야지, 공급자 입장에서 평가를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리걸타임즈 김진원 기자(jwkim@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