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미국 제재 대상' 이란 멜라트은행 예금 반환 거절 가능
[민사] '미국 제재 대상' 이란 멜라트은행 예금 반환 거절 가능
  • 기사출고 2024.10.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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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SDN 지정은 중대한 사정변경"
"의무 이행케 하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해"

우리은행이 미국의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이란의 멜라트은행에 대해 예금 반환을 거절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허준서 부장판사)는 8월 29일 멜라트은행이 "우리은행의 예금계좌에 예치된 펀드 자금 202억여원의 예금을 반환하고, 위 예금에 대해 상법과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지연손해금도 지급하라"며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2023가합87561)에서 멜라트은행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민법 제2조 제1항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결(2021. 10. 28. 선고 2017다224302 판결)에 따르면, 계약이 성립된 이후에 사정변경이 생기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내용에 따른 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재판부는 "피고가 이 사건 펀드 자금을 원고가 지정하는 계좌로 이체하거나 이 사건 펀드의 만기 연장 요청에 응할 경우, 미국의 이란금융제재규정(Iranian Financial Sanctions Regulations, IFSR 규정) 등에 근거한 특별제재대상자(Specially Designated Nationals, SDN)로 지정된 원고와 중요한 거래를 하거나 원고의 중요한 거래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 판단되어, 미국으로부터 IFSR 규정 등에 근거하여 미국 내 계좌의 개설이나 유지,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별도의 경제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고, 피고마저 SDN 명단에 등재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며 "미국과 미국의 달러화가 국내와 세계 경제, 국제 거래에서 갖는 중요도 및 은행업을 영위하는 피고의 외환 업무나 신용도에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금융기관인 피고가 미국과의 거래가 차단되고 계좌가 동결되는 등의 경제제재를 받게 되는 경우 입게 될 타격과 피해는 중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는 이란의 준군사조직의 주된 자금원으로 위 조직의 국내외 공격을 촉진한다고 지목된 은행에 수억 달러를 제공하여 SDN으로 지정된바, 여기에는 원고의 귀책사유가 있다 보이고, 향후 SDN 지정에서 해제되거나 특별 거래 허가를 받으면 피고로부터 이 사건 예금계좌에 예치된 예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며 "피고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원고에 대한 미국의 제재라는 비상한 곤란 내지 중대한 사정변경으로 말미암아, 미국 규정이 국내에 적용되지 않아도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응할 경우 미국 내 피고의 자산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로 존립에 영향을 받을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므로, 피고에게 현 상태에서 원고에 대한 채무의 이행을 기대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불가능하고, 원고의 이행요구를 관철하는 것은 공평의 원칙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결국 원고의 SDN 지정이라는 피고의 지배범위 밖의 중대한 사정변경으로 인하여 피고로 하여금 원고에게 예금 반환 의무를 이행케 하는 것은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 대하여 그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멜라트은행은 이에 대해 "피고가 과거에도 SDN으로 지정된 원고와 거래를 하였으나 실제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고, 대한민국 정부도 원고를 제재하지 않았으며, 피고는 원고와 거래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이 사건 예금계좌로 저리의 이자는 지급하고 있는바, 원고의 요구에 응하더라도 피고가 미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위험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은 원고와 피고 간의 거래가 미국의 제재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점, 오히려 미국은 수년 전의 거래 행위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하여 거래일로부터 상당 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재를 부과하는 경우도 있는 점, 실제 피고는 미국으로부터 이란 등과의 거래에 대하여 미국의 해외자산통제국과 뉴욕주의 금융감독국, 검찰 등의 조사를 받고 일부 경고 조치를 받았으며, 2022년 기준 피고에 대하여 종결되지 않은 채 진행 중인 사건도 존재하는 점, 대한민국 정부의 원고의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 여부와 미국 차원의 피고에 대한 제재는 관련성이 희박한 점, 피고는 원고의 이자 인출을 허용하지 않고 원고가 항의한 대로 자유예금에 적용되는 상대적으로 소액의 이자를 이 사건 예금계좌에 입금처리 하였을 뿐이므로 이를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응하는 것과 같게 평가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제재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멜라트은행이 2018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우리은행으로부터 매수한 펀드 자금 총 202억여원이 만기 도래에 따라 멜라트은행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환급되었다. 그러나 멜라트은행이 2018년 10월 16일 이란의 준군사조직을 지원한 기업들에 대한 제재조치의 일환으로 미국의 IFSR 규정 등에 따라 특별제재대상자(SDN)로 지정되자, 우리은행은 다음날인 10월 17일 '이란 관련 제재대상 지정'을 이유로 펀드 자금이 환급된 예금계좌를 비롯하여 우리은행에 개설된 멜라트은행 명의의 계좌에 대한 지급을 금지하는 동결 조치를 취했다.

법무법인 KL 파트너스가 멜라트은행을, 우리은행은 법무법인 율촌이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