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금융회사인 케플러 쉐브레는 2021년 9월 고객인 프랑스 자산운용사로부터 이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A펀드 계좌의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에 대한 매도주문 지시를 받았으나, 직원의 실수로 이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또 다른 펀드인 C펀드의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를 매도해 달라고 B증권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C펀드에는 SK하이닉스 주식이 없었다.
최종 체결 물량은 29,771주
그 결과 B증권은 한국거래소에 SK하이닉스 주식 41,919주에 대한 공매도 주문을 제출했다. 매도주문 물량도 29,771주가 아닌 41,919주였다. 최종적으론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에 대해 공매도계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공매도를 했다는 이유로 실제로 매도된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가 아닌 41,919주에 대한 매도주문 금액인 4,450,148,000원을 기준금액으로 과징금을 산정해 케플러에 과징금 10억 6,300만원을 부과하자 케플러가 과징금 취소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김정중 부장판사)는 그러나 8월 23일 "공매도는 위법이지만, 실제로 체결된 금액이 아닌 매도주문 수량 전체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10억 6,300만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2023구합81664).
재판부는 먼저 "자본시장법 제180조 제1항 본문은 '누구든지 상장증권에 대하여 공매도를 하거나 그 위탁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금지되는 행위에 대한 수범자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며 "따라서 누구든지 위법한 공매도를 위탁하는 경우 이는 과징금 부과대상이 될 수 있고, 그 행위자가 한국거래소의 회원과 매매거래계좌 설정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어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에 대해 공매도계약이 체결된 것은 원고가 B증권에 SK하이닉스 주식의 매도에 관한 법률행위나 사무의 처리를 위탁한데 따른 것으로 원고가 B증권에 SK하이닉스 주식의 매도를 위탁하였다고 볼 수 있다"며 "원고는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공매도를 위탁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 처분사유의 존재를 인정했다. 케플러는 재판에서 "자본시장법은 공매도 위반의 주체를 '공매도를 하거나 그 위탁 또는 수탁을 한 자'로 명시하고 있는데 원고는 고객의 주문을 B증권에 단순 전달한 사자에 불과하고, 이 사건 주식의 매도주문을 제출한 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원고는 B증권에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의 매도를 위탁하였을 뿐, 41,919주의 매도를 위탁한 사실이 없고, 자본시장조사 업무규정은 기본과징금 산정의 기준금액을 자본시장법 제180조를 위반한 공매도 주문금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원고가 위반한 행위는 SK하이닉스 주식 29,771주의 매도를 위탁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원고의 위와 같은 위탁에 따라 B증권이 위 주식 수를 초과하여 매도주문을 할 것이라는 점을 원고가 예측할 수 있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본과징금 산정의 기준금액은 원고가 공매도를 위탁한 부분에 관한 주문금액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증선위가 41,919주에 대한 매도주문 금액인 4,450,148,000원을 기준금액으로 과징금을 산정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피고는 B증권이 한 SK하이닉스 주식 41,919주에 대한 매도주문 금액인 4,450,148,000원을 과징금 처분의 기준금액으로 정하고, 여기에 과징금 부과비율 30%를 적용하여 기본과징금을 1,335,044,400원(=4,450,148,000원×30%)으로 정한 다음, 매도주문 후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 감경율 70%를 적용하여 산정한 금액 272,041,245원(= 1,295,434,500원×30%×70%)을 공제한 1,063,003,155원에서 10만원 미만의 금액을 절사한 1,063,000,000원을 원고에 대한 과징금으로 정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공매도를 위탁할 당시 B증권이 SK하이닉스 주식 41,919주에 대한 매도주문을 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지적하고, "원고의 담당직원이 공매도를 위탁하게 된 이유는 A펀드의 등록번호를 전자시스템에 오기한 과실에 따른 것으로 SK하이닉스 주식의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공매도를 위탁하는 등 공매도를 규제하는 취지를 잠탈하려던 것은 아니며, 공매도를 통해 원고가 얻게 된 이익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공매도에 따라 결제불이행이 발생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화우가 케플러를, 증선위는 법무법인 바른이 대리했다.
판결문 전문은 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 참조.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