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2011년쯤부터 고등학교 동창인 B가 자신 명의 통장(계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카드나 비밀번호 등을 양도했고, B는 이를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투자에 이용했다. 당시 B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A는 2016년 개설한 자신 명의의 C사 계좌(이 사건 계좌)도 B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B는 이 계좌를 이용해 D 등 제3자로부터 돈을 지급받았다. D는 '해외선물거래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매월 2%의 이자를 지급해 주겠다는' B의 말에 2020년 7월 7일부터 2021년 7월 9일까지 약 1년 동안 A 명의의 C사 계좌에 1억 2,000만원을 송금했다. B는 이 돈도 해외선물 투자에 사용하고,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D에게 A를 사칭해 반환약정을 했다. 이후 D는 B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A를 상대로 B의 기망행위에 대한 공동불법행위자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상고심(2024다238316)을 맡은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그러나 8월 1일 A의 책임을 50% 인정해 "A는 D에게 6,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민사상 방조책임은 과실에 의한 방조도 인정하는 등 형사상 방조죄보다는 넓게 인정되기는 하나, 방조에 의한 불법행위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먼저 "원고(D)는 해외선물거래에 투자하면 원금을 보장하고 매월 2%의 이자를 지급해 주겠다는 B에게 속아 위 돈을 송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같은 내용으로 B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위 형사사건은 B의 소재불명으로 현재 수사중지(피의자중지) 상태이고, 달리 B가 원고를 기망하였다고 볼 뚜렷한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는 2016년경 이 사건 계좌를 개설하여 고등학교 동창인 B에게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거래에 필요한 통장, 현금카드, 비밀번호 등을 교부하였고, 당시 B는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할 수 없어 피고에게 주식투자용 증권계좌 개설을 부탁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장기간 이 사건 계좌를 주식선물 투자에 사용해 왔다"며 "피고(A)가 B에게 이 사건 계좌 사용을 허락한 이후 그 이용 현황을 확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나, 이러한 점만으로 피고가 B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피고와 B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동창 관계이고, 피고는 2011년부터 B에게 이 사건 계좌 외에도 다른 2개의 계좌를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접근매체를 제공해 주었는데, 피고가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대가를 받았다고 볼만한 자료는 없다. 2021년 말까지는 B가 위 계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그 밖에 피고가 이 사건 계좌 관련 접근매체를 양도함으로써 B의 입출금 및 주식투자 거래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넘어서, 이 사건 계좌를 통하여 투자 사기와 같이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과 이 사건 계좌가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며 "그런데도 피고가 원고에게 공동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공동불법행위책임 내지 불법행위와 손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종전 대법원 판결(2016. 5. 12. 선고 2015다234985 판결 등)을 인용,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율평이 1심부터 A를 대리했다.
리걸타임즈 김덕성 기자(dsconf@lega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