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첫돌을 맞은 유럽통합특허법원(UPC)의 출범 이후 침해소송 등의 사건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한 해 동안 UPC의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UPC inspection proceedings)에 관하여 다섯 건의 결정이 내려졌다. 본 절차가 국경을 초월한 증거조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UPC의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는 향후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시자 사업장에서도 조사 가능
UPC와 독일법원 모두 특허소송에서 원고는 자신이 주장하는 사실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여 법원을 설득해야 한다. 만약 시중에서 증거 제품을 구매하고 이를 분석할 수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제품이 특수 의료기기나 전문기계 또는 입수하기 어려운 B2B 제품처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경우, 또는 해당 공정이 상대방 공장에서만 시행되는 경우에는 증거 수집에 한계가 있다. 이러한 경우 독일과 UPC에서는 제품이나 공정을 조사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로 전문가 증거조사를 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시자의 사업장이나 무역박람회 부스에서 제품이나 공정을 조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특허권자는 특허침해를 입증하는 데 꼭 필요한 증거를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UPC의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는 기존의 독일 제도와 유사하면서도 몇 가지 주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본 글에서는 두 절차를 개략적으로 비교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1. 독일의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
독일의 전문가 증거조사 제도는, 독립증거절차 제도(독일 민사소송법 제485조)와 가처분(독일 특허법 제140c조 제3항 및 민사소송법 제935~945조)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전자는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특허침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후자는 피신청인으로 하여금 사업장에서 증거조사에 협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증거조사가 이루어지려면 증거조사 신청서에서 특허 또는 실용신안 침해의 충분한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즉, 침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임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해야 한다.
신청인은 법원에 왜 증거조사가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거나 공개된 자료 검색 등을 통해 침해 제품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비례성 충족해야
또 증거조사는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나는(disproportionate) 경우가 아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침해의 가능성이 매우 낮음에도 증거조사 중에 상대방의 고가의 기계를 파괴해야 하는 경우 비례성 요건을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가처분에서는 신청인이 관련 지식을 얻은 후 한 달 이내에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한다(소위 "긴급성 요건"). 만하임,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같은 일부 지방법원에서는, 증거조사 명령도 가처분의 일종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긴급성 요건을 요구한다. 반면 뒤셀도르프, 뮌헨, 베를린과 같은 다른 지방법원에서는 그렇지 않아 법원들마다 실무에 차이가 있다.
뒤셀도르프, 뮌헨, 베를린의 법원들이 긴급성을 요하지 않는 이유는, 본 증거조사제도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가처분 등에 근거하기는 하지만, 이는 특유의 독자적인 법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어서, 일반적인 가처분 사건에서 요구되는 긴급성 요건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피고가 해당 특허를 침해하였는지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증거 수집 수단이 허용된다. 따라서 이는 실무에서 매우 유용하다. 즉, i)피신청인 제품의 샘플 확보, ii)공정을 수행하는 기계 또는 제품의 사진 및 비디오 촬영, iii)문서 및 데이터(예컨대 작업 설명서, 기술도면, 입찰절차 문서, 제안서 또는 소스 코드)의 복사 등이 가능하다.
신청인이 전문가 제안 가능
독일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에서 신청인 측의 가장 큰 장점은, 증거조사를 수행하고 침해 의견서를 작성할 전문가를 신청인이 제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신청인의 제안을 따르며 제안된 전문가를 임명한다. 전문가는 매우 전문적인 기술 분야에서의 권위자가 될 수도 있고, 또는 폭넓은 기술 지식과 특허법 지식을 가진 변리사가 될 수도 있다.
증거조사 여부 결정은 일반적으로 신청일로부터 1~10일 내에 내려진다. 증거조사 신청이 인용되어 신청인에게 증거조사 결정이 송달되면 한 달 이내에 법원이 임명한 전문가가 증거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ex-parte 방식으로 진행
증거조사는 상대방의 참여 없이 이른바 ex-parte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피고는 실제 증거조사 당일에야 증거조사가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신청인이 증거조사에 참석할 수 없으나, 신청인의 변리사와 변호사는 참석할 수 있다. 법원은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신청인 측 대리인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한다. 집행관도 증거조사에 동행하지만, 그의 역할은 증거조사 명령을 공식적으로 송달하고 증거조사가 진행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필요시 경찰의 도움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한다.
증거조사가 끝난 후, 전문가는 침해의견을 포함한 의견서를 작성한다. 이 전문가 의견서는 법원, 피신청인과 그의 변호사, 신청인의 변호사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의견서가 신청인에게 어느 범위로 공개될지를 심리한다. 법원은 의견서를 전부 공개하거나 또는 그 일부를 가리고 공개할 수 있다. 공개 정도는 피고의 영업비밀 주장 및 특허침해 확인 가능성을 감안하여 결정된다.
전문가 의견서의 공개범위 결정까지의 기간을 포함한 총 절차는 사건의 복잡성과 문제 되는 영업비밀의 양에 따라 3~12개월 정도 소요된다(만약 불복하면 항고 단계에서 보통 3개월 정도 소요).
최종 전문가 의견서는 법정에서 제출된 증거와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독일 민사소송법 제493조 제1항). 전문가 의견서는 전문가 증거로 간주되며, 이후 본안 절차에서 완전한 증거로 인정된다(동법 제402조).
독일법에 따르면 증거조사 절차가 끝난 후 본안소송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본안소송을 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법원이나 같은 피고를 상대로 할 필요는 없다. 즉, 침해품을 가진 제3자(예: 고객)에 대해 관할 법원에서 증거조사를 진행하고, 본안소송은 제조사나 유통업자를 상대로 다른 지역의 법원이나 심지어 해외에서 제기할 수 있다.
2. UPC의 전문가 증거조사 절차
UPC는 증거보전(preserve evidence)과 증거조사(inspection)에 관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통합특허법원법(UPCA) 제60조와 소송절차 규칙(Rules of Procedure, "RoP") 제192~199조에 규정되어 있다. UPCA와 RoP상 증거보전과 증거조사는 서로 다른 용어로 규정되어 있지만, 본 제도를 간략히 설명하기 위해 편의상 양자를 모두 "증거조사"로 통칭하여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UPC의 증거조사에 필요한 주요 요건은 위에서 설명한 독일에서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특허침해에 대한 합리적인 증거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며, 이 증거조사 절차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되어야 하고, 또한 비례성에도 부합해야 한다.
3달 후 신청 허용
한편 UPC 증거조사에 관한 긴급성 요건이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RoP 제194조 제2항의(a)). 다만, 이와 관련하여 UPCA나 RoP는 증거조사 신청이 이루어져야 하는 정확한 기간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긴급성 요건의 구체적인 시기적 범위는 법원의 판례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한 사례에서, 신청인이 세 달 후에 신청한 증거조사에 대해 긴급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했는데, 다만 사건을 처리하는 데 불합리한 지연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독일법원의 절차와 마찬가지로 신청서에는 어떤 증거수집 수단이 필요한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포함되어야 한다(RoP 제196조 제1항). 앞서 설명한 독일법원의 절차와 마찬가지로 UPC에서도 증거를 수집하는 수단이 폭넓게 허용된다.
독일법원에서와 마찬가지로, UPC는 며칠 내로 증거조사 실시 여부에 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결정을 ex-parte로 진행하길 원한다면 신청인은 피신청인을 참여시키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피신청인을 심리에 참여시키는 inter-parte 절차로 진행할지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달렸다.
5건 모두 ex-parte 절차로 진행
증거조사의 가장 큰 장점은 깜짝 효과(surprise effect)인데, 만약 법원이 증거조사에 관한 결정을 inter-parte로 진행할 경우 증거가 미리 은닉될 우려가 있을 것이다. UPC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어서, UPC에서 지금까지 다룬 다섯 개의 증거조사 사건 모두 ex-parte 절차로 진행되었다.
신청인이 독일법원에서처럼 특정 기술 전문가를 제안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밀라노와 파리 법원은 법원이 가지고 있는 특허 전문가 리스트로부터 전문가를 선정했으며, 그 이유로 전문성, 독립성 및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선정된 전문가가 증거조사를 수행할 때 집행관과 신청인의 법률대리인이 동행할 수 있으나, 신청인은 증거조사에 참석할 수 없다.
UPC에서는 전문가가 상세한 침해 의견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는 관찰한 사실에 대한 보고서와 증거조사 중에 획득한 모든 문서 및 데이터를 제공하면 된다. 따라서 절차를 상당히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 보고서와 데이터가 증거조사 실시 후 7일 이내에 제출될 수 있다.
법원은 먼저 전문가 보고서와 확보된 증거를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특정인에게만 공개하도록 결정할 수 있으며(RoP 제196조 제1항), 민감한 영업비밀을 보고서에서 삭제할지 여부에 대해 의견을 진술하도록 할 수 있다.
증거조사 후 본안소송 필수
UPC 증거조사에선, 증거조사 후 본안소송을 제기해야 한다(RoP 제198조, UPCA 제60조 제8항). RoP에서 정한 기한 내에 본안소송이 제기되지 않으면, 피고의 요청에 따라 증거조사 결정이 취소될 수 있다(RoP 제196조 제4항). 전문가가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경우, 이러한 기한이 연장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며, 관련 사건이 항소 법원에 계류 중이다.
증거조사 절차에서 얻은 정보는 일반적으로 UPC 본안소송에만 사용될 수 있다(RoP 제196조 제2항). 신청인이 해당 증거를 다른 법원의 소송에서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법원에 이를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Andreas Kabisch 독일변호사(Meissner Bolte), 황의철 변리사(김앤장 법률사무소)
*Andreas Kabisch 독일변호사는 독일 유수의 IP 로펌인 Meissner Bolte에 재직중이며, 특허침해, 증거조사, 라이선싱을 비롯하여 IP 제반 분야에서 법률자문을 제공한다.